노신의 흔적, 아육왕사에 담긴 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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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의 흔적, 아육왕사에 담긴 불심
  • 김광수
  • 승인 2016.07.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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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중국기행⑦] 녕파, 아육왕사, 소흥

상해에서 시작된 김광수 원장의 중국 여행은 어느덧 소흥에 이르렀다. 김 원장은 중국 문학의 거장 노신의 흔적, 중국인들의 불심이 담긴 아육왕사, 육유와 당완의 애절한 사랑을 통해 중국 문화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

 

노신은 잘 아시다시피 중국 근대화를 이끈 신문화운동의 기수다. 과거의 낡은 중국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신문명을 받아들이고, 구 지배 질서를 타파하여 잠든 중국을 일깨운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는 13세에 가문의 몰락을 겪고,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의술을 배우고자 센다이 의전에 입학했으나 중도퇴학했다. 이유는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후 그는 북경으로 돌아와서 진독수, 호적 등과 함께 '신청년' 잡지를 발행하며 중국 신문화 운동을 이끌었다. 이 신청년은 훗날 공산당의 공식 기관지가 되기도 했다.

내가 묵은 유스호스텔은 노신의 옛 집인 '노신고거'가 지역 내에 있다.

▲유스호스텔 내부

유스호스텔은 내부를 잘 가꿔 놓았다. 중국식 집에서 잔다는 기분이 난다. 다른 빈관에서는 느낄 수 없다. 노신 관련 유적들을 보고 집을 나섰다.

▲노신 관련 유적
▲노신 집 앞을 흐르는 수로.
▲오래된 서옥(책방)
▲노신이 나고 자란 집. 노신고거
▲소흥은 또한 천하명주 황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이 소흥황주의 오리지널 고향이라는 뜻.
▲민족의 척량, 민족의 척추골과 대들보가 되어라. 강택민의 글씨다.
▲옛 노양을 재현해 놓은 그림과 모형들.
▲수려한 소흥의 거리 모습

오늘은 녕파를 가는 날이다. 그러나 나는 아침 일찍 시내버스 첫차를 타고 소흥 고속철도 역으로 향했다.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였다. 전날 상해의 홍챠오역에서 기차표를 끊지 못해서 기차를 놓치고 말았는데,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재 중국의 기차표는 한국에서 ctrip.com 이나 elong.com으로 구매를 할 수 있다.하지만 실제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다시 중국 기차역에 가서, 예매를 했다는 예매번호를 들고 기차를 탈 수 있는 표를 받아야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기차표를 17장 샀는데(이틀에 한번은 기차를 타는 셈이다) 기차를 탈 때마다 그런 봉변을 당하면 큰일이다. 여행은 다 망치고 기차표 사는 데 시간을 다 빼앗겨버릴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소흥역에서 모든 기차표를 다 끊어버리자(받아버리자)는 것이다.

소흥 역은 그래도 다른 도시 역보다는 한적할 것이고, 새벽같이 가서 16장의 기차표를 다 끊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표 파는 사람이 한꺼번에 16장을 다 해 줄 수도 있고, 줄이 길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기차시간이 임박하거나, 혹은 그러기 싫다면 나는 16장을 모두 교환할 수 없다.

나는 기차표를 받을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받자는 심정으로 새벽 첫 버스(중국은 6시 지나야 온다)를 타고 소흥 고속철도역으로 갔다. 물론 여기도 새로 지어서 크다. 우리나라 KTX역을 새로 지은 것과 같다.

▲사람의 크기를 보면 이 소흥 역도 결코 작은 역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당히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일찍 온다고 왔는데도 창구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중국인들의 새치기는 유명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새치기는 여전하다. 내 앞에서도 여러 사람이 새치기 했다. 한번은 나도 참다못해 안 되는 중국어로 소리 지르기도 했다(파이뚜이! 파이뚜이!).

한 사람이 끈질기게 염치도 없이 계속 다른 사람 앞서서 창구에 돈을 내밀고 표를 사려고 했다. 여러번 씩이나. 그 사람이 너무 그러니까 표 파는 사람도 그 사람을 밉게 보았던지 뭐라고 막하고 끝까지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다. 괜찮은 아저씨다.

내 차례가 와서, 얼른 프린트로 출력한 예약 종이를 열 여섯 장 내밀고, 쌩글쌩글 웃으며 “저기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했는데요. 좀 많아서요(물론 중국말로 했다. 잘 했는지는 모르겠고).”

그 사람은 이렇게 물끄러미 보더니, 첫 장을 보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씨가 잘 안 보이는지, 상을 찡그리고 예약번호를 한참 찾아보더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마음이 조마조마 하던지..

첫장 출력. 둘째 장도 입력 후 엔터..!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입력해 나가신다. (이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존대말을 써야겠다. 근데 좀 비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그가 한 장 한 장 입력할 때마다 그의 철도청 제복은 왜 그렇게 멋있게 보이던지. 그는 정말 예리하고 총명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러더니, 14장까지 출력한 연후에(야, 14장은 했다!) 다음 장을 한참 쳐다본다. 예약번호를 못 찾는 모양이다.

14장이라도 만족하자. 성공한 셈이다.  흡족하게 기차표 14장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아침 만두를 비교적 풍족하게 비싼 것으로 먹었다. 이제 시외버스 터미날로 이동. 녕파행 버스를 탄다. 두 시간 후 녕파 시외버스 터미널(꽁쟈오쳐잔, 公交車站)에 도착했다.

▲녕파 시외버스터미널

도착하니 날씨가 제법 덥다. 여기서 어떻게 아육왕사를 간다? 지도에 보면 아육왕사가 시내에서 더 가깝기 때문에 아육왕사를 먼저 가게 된다. 버스 노선이 무지하게 많다.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있나.

일단 지도를 사고, 지도 파는 아줌마한테 물어보기도 하다가, 한참을 기다려서 버스가 오길래 바로 탔다.

▲천주교회당. 유서깊은 곳이라고 한다.

녕파는 일찍부터 서양인들에게 개방됐다. 녕파는 바닷가이다. 저 멀리 무역항의 배와 크레인 같은 것들이 보인다.

시골로 들어서려 하는데, 이제 버스를 타면 어디서 내려야 할지가 문제다, 대충 지도를 보고 거리를 잡아 소요시간을 짐작한다.

그러니까, 지도를 미리 사야한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길을 지도에다가 표시한다. 한 가지 정말 다행인 것은 안내 자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건 나에게는 정말 큰 다행이다.

그렇게 해서 아육왕사를 버스타고 가는데. 짐작대로 상당한 교외에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라도 상당히 멀리 교외로 나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타서 만원버스가 됐다. 이제 내리는 것이 걱정이다. 내려야 할 데를 잘 모르는데, 비좁아서 얼른 내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문 쪽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어느덧 내리는 데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거 큰일이다. 앞뒤가 사람들로 꽉 막혔다. 때가 되어, 그래도 내려야지. 이때는 용감할 수밖에 없다. “내려요(쌰처!, 쌰처!)”를 외치고 뒷문 쪽으로 내리려고 사람들을 비집으니 사람들이 원성을 한다(중국 버스는 앞문 타기, 뒷문 내리기를 지킨다).

그때 뒷문 쪽 여자가 내게 “앞문으로 내려요(치옌볜!)” 하고 소리친다.

“아, 앞문으로 내려도 되는구나(나는 앞문 쪽이 있었다)” 하고 앞문으로 내리려는데, 운전수가 “뒷문! (허우비옌!)” 해 버린다. 앞문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오래 걸려서 뒷문으로 내렸다. 그런데 내 뒤로 웬 여자 둘이 내리는데, 내게 “앞문으로 내려요(치옌볜!)”하고 소리친 여자다. 같은 케이스였던 것이다.

때는 열두시. 나무도 없고, 더운 열기가 훅 끼쳐온다.

절이, 아육왕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충 방향을 잡아 걸어가는데, 땡볕에 무척 덥다.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옆으로는 거대한 트럭 들이 씽씽 지나간다. 산업도로변인가보다.

그런데, (인적이 없는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여자. 아까 버스에서 같이 내린 여자들이다. 하나는 40대, 한 사람은 할머니. 두 사람은 나를 앞질러서 간다. 가는 방향이 같다. 저 사람들도 아육왕사를 가는지 물었다.

어디서 왔냐니까 북경에서 왔단다. 북경? 북경이 예서 어딘데? 그렇게 멀리? 그런데 그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다. 그저 수수한 아낙네들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둘이서, 그것도 어머니와 딸이나 며느리, 둘이서 그 먼 길을 온 것이다. 정말 중국 사람들, 신앙심이 살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할머니)는 더위와 땡볕에도 나보다 앞서서 그냥 묵묵히절을 향해서 걷는 것이다. 너는 뭐하냐. 저런 할머니도 저렇게 당당하게 걸어가는데, 너는 이까짓 더위도 못 참아서 그러냐..

▲할머니와 딸 (며느리)이 땡볕에 씩씩하게 걷는다.
▲나타나는 아육왕사
▲할머니는 불전에 놓을 쌀과 향을 사신다.

할머니는 불전과 향로마다 찾아다니시면서 향을 피우신다. 북경에서 상해 밑에 녕파까지 딸(며느리?)을 앞세우고 저런 차림으로 순례길을 나오신 할머니는 감동 그 자체다.

▲부조인데, 부처님께서 마부 찬다카와, 칸타카라는 말을 타고서 야밤에 출가하시는 모습이시다.
▲이건 유명한 부처님의 열반 광경이다. 땅을 치고 슬피 우는 제자들을 보라. 그리고 부처님의 편안한 얼굴을.
▲대웅보전. 저멀리 북경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 따님도.
▲아육왕사 불사리탑
▲응진전 = 나한전
▲종루

천동사는 인근인데 아쉽게도 보지 못한다. 가까워도 택시 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허허벌판에 택시는 없다. 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한적한 시외라서 시내 들어가는 버스조차 한참을 기다려서야 탈 수 있었다.

아쉽지만 천동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한다. 다시 녕파 꽁쟈오처짠에서 버스를 타고 소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좀 안됐는데, 빨리 움직이면 노신이나 심원(沈園) 생가 둘 중 하나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곳 모두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다. 재촉하여 심원을 가보기로 했다.

▲육유(陸遊)와 당완(唐琬)

심원은 심씨댁 정원인데, 당나라 시인 육유(陸遊)와 당완(唐琬)의 러브스토리의 무대이다. 둘은 외사촌간. 당연히 문제가 많은 관계다. 결국 그 사랑은 맺어지지 못하나, 나중에 이 둘은 심원에서 재회해 진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져,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심원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사려고 하는데 바로 내 차례에서 문이 닫혔다. 할 수 없이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심원 앞의 수로. 이 배는 돈을 내면 태워준다. 밤에는 연변에 등불을 켜고 뱃놀이 한다.
▲심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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