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연구와 윤리] 과정으로서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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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연구와 윤리] 과정으로서의 생명
  • 강신익
  • 승인 200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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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줄기세포 연구의 담론구조②

20세기의 생식의학과 발생학은 생식세포의 감수분열과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한 배수체의 형성이라는 설명으로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자 속의 극미인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 인간 생명의 발생과정은 부모로부터 반씩 물려받은 염색체 속의 유전체(genome)가 만들어내는 한편의 오케스트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오케스트라에는 유전체라는 악보만 있을 뿐 지휘자가 없다.

생명은 악보인 유전체와 그것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연주자인 생명단위들(리보좀, 미토콘드리아 등 세포내 소기관과 그들 사이를 기능적으로 연결해 주는 RNA, DNA, 단백질 등) 사이의 무한에 가까운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할 뿐 정해진 계획에 따라 '제작'되지 않는다.

생명은 중세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명확한 경계를 가지는 '실체'가 아니라 무한한 관계 속에 변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실체로서의 생명에는 크기의 증가라는 양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지만, 과정으로서의 생명현상에서는 무한한 상호작용 속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질적 변환이 핵심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생물 종(species)이 고정된 형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축적된 돌연변이들이 자연 선택된 결과라는 진화론의 사유양식이 자리하고 있다. 생물 종의 경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개별 생명체의 발생과정 또한 이와 유사한 전환의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진화론과 발생학을 종합한 새로운 생물학(진화-발생 생물학; Evo-Devo)이 출현한다. 이는 수 백 만 년에 이르는 진화적 시간과 몇 달에 지나지 않는 발생의 시간을 종합하는 기획이다.

이런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다양한 생물체의 유전정보들이 모이고 생물체의 발생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분자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양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유전정보)들이 축적됨에 따라 예상치 않았던 사실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생물 종간의 외형상의 차이와 표현 형질의 다양성에 비해 유전형의 변이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2000년대 초에 발표된 인간유전체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애초에 인간의 유전체에는 적어도 10만개의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지로는 그 1/3에 불과한 3만개 정도만이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은, 모든 형질의 변이는 유전형의 변이로 설명되며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20세기 유전학의 예상과는 크게 빗나간 것이었다. 새로운 형질이 유전자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유전형보다도 훨씬 다양한 표현형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직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완전히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적어도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하나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단순도식(중심가설)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강신익(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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