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변경이 가능한 생명: 백 투 더 퓨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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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변경이 가능한 생명: 백 투 더 퓨쳐1
  • 강신익
  • 승인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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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줄기세포 연구의 담론구조③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대체적 흐름은 여전히 "유전자가 모든 형질을 결정한다"는 단순논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나 각계의 반응을 보면 온통 장밋빛 전망으로 넘쳐나는데, 그런 전망 속에는 역시 생명현상을 미리 짜여진 하나의 계획으로 보는 사유의 양식이 전제되어 있다.

생명의 계획은 모두 유전체에 들어있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열어야 할 자물쇠가 여럿 있는데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그 중 몇 개를 열었다는 식이다. 마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과도 같은 논리구조다.

그렇다면 보물 또는 최종적인 해결책은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생명공학은 보물찾기에 불과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보물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막다른 골목과 파멸에 이르는 낭떠러지를 함께 가진 아주 위험한 길이라는 점 또한 강조해야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열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면 다른 사람이 먼저 그 보물을 차지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자들과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예상되는 각종 위험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이 점이 지금의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가지지 못한 덕성인 듯 하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연구와 논의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태도나 덕성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담론의 구조와 사유의 양식이다.

나는 체세포핵이식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연구자들은 파라켈수스에서 크리스티아누스와 하르트소커에 이르는 연금술사 또는 과학자들이 발생시키거나 발견한 극미인(極微人; homunculus)의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줄기세포는 현대판 극미인(결정된 생명)인 셈이다.

강신익(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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