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의 진단서와 전문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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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진단서와 전문가 정신
  • 강신익
  • 승인 2016.11.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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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내용에 대해 언급한 딸 백민주화씨의 페이스북 게시글 ⓒ백민주화 페이스북

1987년 1월 어느 날, 중앙대학교 병원에 근무 중이던 오연상 교수는 경찰의 특별조사시설이던 남영동 대공 분실에 불려갔다. 조사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7~8명의 수사관이 한 청년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진찰 결과 청년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복부는 부풀고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 오 교수는 즉시 물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알아차렸다.

경찰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 치료 중 사망한 것으로 꾸미려 했다. 하지만 그 의도를 간파한 오 교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절대로 받아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결국 사체는 경찰병원에 안치됐다. 이 사실이 바깥 세상에 알려질 것이 두려운 경찰은 오 교수를 밀착 감시했지만, 오 교수는 화장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이후에도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경찰의 거짓말과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지만 오 교수는 끝까지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와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담당 검사가 정치권력의 눈치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든지 축소 은폐의 공범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던 최환 검사는 여전히 쇼크에 의한 사망이라고 우기는 경찰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아도 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의 열망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공인이며 프로페셔널인 검사의 본분에 충실했다.

경찰은 사체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영장에도 불구하고 사체를 내놓지 않으려 했고, 부검 이후에도 부검의에게 사인을 ‘심장 쇼크사’로 할 것을 종용했다. 이 사건이 제대로 조명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부검을 담당한 의사 황적준 박사의 양심과 소신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일기장에 기록했고 이것은 수사와 재판의 중요 단서가 됐다. 결국 내무부 장관과 치안본부장이 해임되고 고문 경관 두 명이 구속됐다. 그리고 그렇게 숨을 거둔 박종철은 몇 달 뒤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농민과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직수로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리고 두개골 골절과 경막하출혈로 의식을 잃고 수술을 받은 지 31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동안 어떠한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커녕 경찰 수뇌의 입에 발린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가족과 농민단체 회원들은 2015년 11월 18일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경찰청장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어떤 조사도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가 숨지자 사인이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적힌 사망진단서가 발부됐다.
 
진단서에 면허번호와 이름을 올린 레지던트는 “진실만을 깨달으려 하세요”라는 글을 남기고 잠적했고 진단서를 그렇게 쓰도록 지시한 백선하 교수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여전히 병사가 맞는다고 우긴다. 이 사건을 조사한 특별위원회는 백 교수가 틀렸다고 확인하면서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백 교수 개인에게 돌리려 한다. 전국의 의과대학생들이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고 보수적인 대한의사협회마저도 사인이 외인사라는 ‘상식’을 확인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진단서 작성의 당사자인 ㄱ 의사와 백 교수는 아무 말이 없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을 어떻게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 교수만 모를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아직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을까? 직수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과 수많은 증인이 있는데 왜 검찰과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며 백 교수는 어째서 의사국가고사에도 나오는 문제의 오답을 고집하고 있는가?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도 살아있던 상식이 민주화된 대명천지에서는 왜 꼬리를 감추고 있는가? 박종철 사건이 있은 지 28년이 지났는데 왜 지금은 오연상 교수와 최환 검사와 황적준 박사가 나타나지 않는가?

이 모든 의문을 이 짧은 글에서 모두 풀 수는 없다. 다만 프로페셔널리즘이라 불리는 전문직 윤리의 관점에서 지금까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 진단서는 부원장 및 과장과 상의하기는 했지만 레지던트인 ㄱ 의사가 작성하고 서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장의 직인이 찍힌 문서이다. 그런데 책임 공방에는 공식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개인과 기관 두 당사자가 모두 빠져있다. ㄱ 의사는 잠적했고 특별위원회는 책임을 백 교수 개인에게 떠넘긴다. 공식적으로는 아무 권한도 의무도 없는 백선하 교수가 전면에 나서 있는 형국이다. 프로페셔널 개인의 의지와 결단도 없고 전문직인 의사의 공익적 가치와 권위를 지키려는 노력도 없다. ㄱ 의사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이 진단서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지만 그 내용은 자신의 뜻과 같지 않다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레지던트는 스승인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조직의 구성원이지만, 동시에 면허를 받은 의사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은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의사 개인은 면허를 받은 독립된 행위자(professional agent)이며 자신이 소속된 의사직(medical profession)의 명예와 권위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ㄱ 의사는 자신과 의사직의 명예를 걸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교수와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모두가 우상으로 받들던 황우석 교수의 연구부정행위를 끝까지 밝혀낸 당시의 연구원이고 지금은 교수가 된 제보자 류영준 의사를 그 본보기로 삼으면 좋겠다.

둘째로 의사전문직의 얼굴인 서울대학교병원과 의사협회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다행히 대한의사협회는 그 진단서가 협회가 제정한 지침을 위반했음을 분명히 했지만, 진단서의 발행기관인 서울대학교병원은 백선하 교수와 특별위원회 뒤에 숨어 있는 형국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며 대한의사협회는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을 위반한 의사와 병원에 대한 조사와 교육, 징계 등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의사 개인과 의사직 전체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정신이다.

 전문가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부하뇌동하는 대중을 낳는다. 가족이 적극적 치료를 거부한 것이 사인을 병사로 기재한 이유라는 백선하 전문가의 궤변에 편승한 극우 단체가 고인의 자녀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는 황당한 소식이 전해진다. 물대포로 고인을 쓰러트린 경찰에 대해서는 침묵하던 그들이다. 전문가 정신이 무너지면 상식도 덩달아 무너진다. 잠적한 ㄱ 의사와 그의 스승인 백선하 교수, 서울대병원과 의사협회는 지금 상식과 전문가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부디 오연상, 황적준, 류영준이 지켜온 의료전문직의 가치를 더욱 더 빛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신익(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본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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