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치과계 잇는 가교 역할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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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치과계 잇는 가교 역할 할 터”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6.11.08 14: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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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특집上] 중국 수도의과대학교 졸업 후 한인치과에 근무 중인 치과의사 김은형 선생 인터뷰

상해 한인타운의 한 치과의원에서 근무 중이라는 앳된 모습의 한 여성치과의사를 근처 한인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유창한 중국어로 현지 종업원에게 이것 저것 주문하던 그의 말투와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조금은 단호하기까지 하다.

중국 현지 생활 8년차라는 김은형 선생은 20살 때 중국으로 건너와 북경의 수도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인치과에서 진료 중인 1년차 치과의사다. 그가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한국인 동기들이 15명이나 됐지만, 5년 후에는 자신을 포함해 겨우 3명만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CDS 취재 차 방문한 중국 현지에서 만난 김 선생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마냥 어색해하던 그는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다소 고생스러웠던(?) 회고와 장래에 대한 포부로 다시 목소리에 힘을 싣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 처음 왔던 8년 전 20살 때부터를 돌아보며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날들"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가 중국에 와 치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소소했지만, 그 과정은 그야말로 청춘드라마에 가까웠다.

‘중국붐’에 쓸려 왔지만…“현실은 서바이벌”

"내가 19살 때 '중국붐'이 일었다. 중국이 뜨고 있으니 중국어는 꼭 배워야 한다고 해서 중국으로 왔다. 뭐 더 좋은 나라도 있겠지만 일단은 한국이랑 가까우니까. 부모님과 오가기도 편하고 그래서 중국을 택했다. 사실 중국에 오게 된 계기부터 치대에 들어가기까지 그렇게 운명적인 일은 없었다. 우리 세대가 좀 그런 것 같다.

20살 때 처음 중국에 와서 산동성에 있는 '연태'라는 지역에서 연수를 마치고, 이듬해 북경에 있는 수도의과대학에 들어갔다. 북경에서 치대가 있는 곳은 우리학교와 북경대 단 두 곳이다. 치대는 5년제인데 외국인은 본과생 5년을 마치고도 수련을 최소 1년 이상 해야만 국가고시를 치를 수 있다. 나도 2년 동안 실습을 하고 작년에 의사 면허를 땄다."

중국에서는 의과대학 안에 치과가 한 과목처럼 포함돼 있다. 교정이나 구강외과와 같은 세부 전공은 대학원에 진학해야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통의 외국대학이 그렇듯이 중국도 '진입'까지는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은 한국의 입시 그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인의 입학이 중국인에 비해 좀 쉬운 편은 맞다.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그런데 들어가서의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유학생들을 당혹케 한다. 일단 언어부터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한다. 나는 중국어 자격증도 있고, 연수도 했으니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웃음) 이건 완전 다른 거였다. 전공에 대한 내용이니까. 특히나 중국인과 유학생들이 같이 듣는 커리큘럼은 난관이었다."

 

중국의 대학에도 유급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도 학고를 2번 이상 맞으면 자동 퇴학처리가 되기도 하지만 재입학이 용이하고 다른 학생들과 대등하게 졸업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달랐다는 것.

"유급제도가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다. 몇 차례 유급을 하면 졸업증은 주지만 학위증명서는 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학위증명서가 없으면 의사고시를 볼 수 없다. 시험도 몇 번 이상 불통(不通)을 맞으면 유급 내지 퇴학이다."

그의 대학시절을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5년 내내 '살얼음판 위 서바이벌'이다. 그런데 의과대학 졸업 후 유학생들의 미래는 또한 점입가경. 중국의 치과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이 20~3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의사고시제도를 마치 '벌칙'과 같이 기억했다.

"국시는 실습과 필기가 하루만에 끝난다. 기회는 일년에 단 하루다. 9월에 국시를 보고 떨어지면 내년 초에 다시 수련병원에 들어가 1년의 수련을 마친 후에 다시 9월에 시험을 볼 수 있으니 꼬박 다시 2년이 걸린다. 유학생은 수련병원 아무곳에나 들어갈 수도 없고,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부속병원에서만 일 할 수 있다.

올해는 그나마 국시 제도가 바뀌었다. 나 때만 해도 1년의 실습 기간을 가쳐서 의사고시를 볼 수 있었다. 떨어지면 물론 될 때까지 시험을 봐야 하는데, 한 번 떨어지면 2년 후에나 다시 시험을 볼 수 있어서 '재시'도 쉽지 않다."

국시 합격률이 낮은 이유는 응시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 치대생만 국시를 볼 수 있지만, 여기는 치과기공사나 스탭도 치과에서 치과병원에서 돈을 내고 2년 이상 일을 하면 치과의사 국시 응시 자격을 준다.

"한국에선 의사에 대한 동경이 있다보니 치과기공사나 치과위생사 출신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이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사실 중국은 그래도 아직까지 치과의사 수가 부족한 나라다."

‘불안’ 도사리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중국

그래서일까. 필리핀이나 헝가리와 같이 개발도상국에서 치대를 졸업한 국내 인력들은 늘 한국으로 진입할 경로를 찾고 있지만 중국은 그 반대다. 오히려 김 선생과 같이 중국의 치대를 졸업해 국가고시를 치르고도 한국으로 가서 전문의를 취득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 비해 한국의 치과계가 포화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료한류'라고들 한다. 외국인이라서 불합리한 점도 있지만, 한국에서 온 의료인이라고 하면 대우 자체가 다르다. 그 때문에 여기서 치대를 나오고도 한국으로 가서 전문의를 따고 돌아오는 분들도 있다."

서바이벌 관문을 수차례 통과한 그도 아직은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한다. 중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도 내일에 대한 '불안'이었다. 중국의 법이라는 게 정국에 따라 수시로 바뀌니, 재학 중에 외국인은 의대를 졸업해서 국시를 통과해도 면허를 받을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기도 했다. 수년간의 공든탑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김 선생이 시험을 치르는 당해 들어서야 겨우 외국인 의사면허 발급이 허용됐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중국에선 꽌시(关系)가 중요하다. 학기 중엔 그런 일도 있었다. 같이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친구와 비자 갱신 시기가 다가와 같이 신청을 했는데 나는 비자가 나오고 친구는 비자가 불허됐다. 친구는 울며불며 이유를 묻고 급한 마음에 나와 같은 조건이라고 나까지 들이밀어봤지만 발급처는 단호했다. 이미 불허 도장을 찍었으니 끝이라는 것이다. 그냥 받아들여야만 한다. 친구는 휴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갔다가 비자를 갱신해서 와야했다. 영문도 모르고 말이다.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도 어느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지금은 중국에 의사가 모자라지만 나중에 의료진이 많아지면 언제든 외국인 진료를 차단하고 내칠 수 있는 나라가 내가 아는 중국이다. 외국인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실력을 더 키우고 다른 메리트를 더 갖추는 수밖에 없다. 중국도 서서히 석박사 의료진을 원한다. 나 역시 대학원에 가서 전문의를 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의사에도 쭈안지아(专家)가 있고 쭈즈(卒子)가 있는데, 나는 아직 일반의사다. 쭈안지아로 올라가려면 일종의 전문의시험을 봐야 하지만 외국인은 아직 시험을 볼 수가 없다."

의료한류 배우고파…“양국 잇는 ‘가교’ 될 것”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지만 그가 불안 속에서 찾는 보람도 크다. 올 8월 청도에서의 진료생활을 뒤로하고 상해의 한인치과로 들어온 이유도 그 보람을 더 키워가기 위해서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배우는 입장이지만, 치과의사로서 보람은 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환자들이 나의 진료에 만족하고 인사를 전할 때면 치과의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와서 한국인 원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에도 보람을 느낀다. 한국식 진료를 많이 배우고 싶다."

그는 인터뷰 중에 종종 얼굴을 감싸고 "아, 이게 아닌데…"하고 중얼대기도 했다.

"사실 어머니가 (인터뷰에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하라고 했는데.(웃음) 한국인들 중국에 많이 오도록 잘 얘기하란 거다.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었으니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국은 땅도 넓고 한국인을 좋아하니까 여기만 오면 다 잘 될꺼라고 믿고 오는 분들이 있다. 일단 어느나라나 그렇겠지만 중국은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 해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다. 졸업하고 의사고시만 패스하면 장미빛 미래가 이어질 거라 믿었던 나도 한 때는 그랬지만, 여전히 한고비 넘으면 또 태산 같은 고비가 등장한다."

이렇게 그는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모든 걸 다 이실직고(?) 해버렸다. 더한 이야기도 있지만 현지에 남을 그의 안위를 생각해 차마 실을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 그에게 희망적인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래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분들이 많이 오는 나라다. 나는 언어만큼은 자신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취득한 의사면허가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상황이 바뀌어도 나는 이곳에 남을 것이다. 이곳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싶다. 그정도 역할이라면 내가 이곳에 남을 가치가 충분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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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철교 2016-11-09 14:13:29
오, 완전 처음보는 얘기들. 이거 특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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