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세포 핵이식의 논리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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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세포 핵이식의 논리구조
  • 강신익
  • 승인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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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줄기세포 연구의 담론구조⑤
기계가 아닌 생명

유전자에 기록된 운명을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연 또한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누구도 자연의 솜씨가 인간만 못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생명공학은 유전체가 자연 속에서 속성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자연이 수시로 유전체의 모습을 바꾼다면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유전체는 자연적으로는 변하지 않으며 단지 인위적으로만 변경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변경 가능한 운명이라는 모순은 이처럼 인간의 능력을 자연보다 높은 곳에 두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려면 유전체는 고정불변이라는 전제를 수정하거나 모든 형질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기존의 환원적이고 결정론적인 생명과학 속에서 이와 같은 대안적 생각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축적된 연구결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의하면 유전자는 그렇게 고정불변인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운명을 주도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DNA가 RNA로 전사되고 단백질로 번역되는 과정에는 통상적으로 수많은 오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모두 표현형질로 나타난다면 엄청난 기형과 질병이 발생할 것이지만, 실지로 우리 세포와 몸은 그러한 오류들을 수정하는 더 고차원적인 장치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유전자를 발현시키기도 하고 침묵시키기도 한다.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주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개의 유전자가 반드시 하나의 형질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형질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의 구성에 관여하기도 하고 여러 유전자가 협동하여 하나의 형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유전체를 구성하는 30억 쌍의 염기 서열 중 유전자를 구성하는 부분이 기껏해야 5%도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유전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유전체의 95% 이상이 왜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면 그 전제는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물의 유전체가 고정불변이라는 가설 자체가 여러 증거들을 통해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대안으로 후성설(後成說; epigenesis)이 주장되기도 한다.

이 이론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훨씬 긴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진위와 관계없이 고정불변의 유전자가 모든 형질을 결정한다는 환원적 결정론은 바로 그 방법론에 입각해 수집된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 그 근거를 잃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

강신익(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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