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를 다시 생각한다
상태바
자율규제를 다시 생각한다
  • 김경일
  • 승인 2017.04.10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치과의사 전문직업성의 재구성-규제기구 논의의 필요성

본지는 총 4회에 걸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 김경일 연구원의 원고를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 두 번째 글에서, 김 연구원은 규제기구의 관련 논의가 치과의사의 공공성 회복에 중요한 이슈임을 짚는다.

- 편집자 -

3월 1일부터 시행예정이었던 의료인 명찰 패용 의무화가 6월경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명찰 패용 의무화는 성형외과의 유령의사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 이후 그 규제책으로 나온 것이며, 막상 시행을 앞두고 의료인들의 격한 반대로 고시공포 후로 유예되었다. 

작년 다나의원 사태는 일회용 주사기의 재사용 문제와 원장이 뇌병변으로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시 면허취소까지 가능한 의료법 개정이 이뤄졌고, 정부는 동료평가제(전문가 평가제) 시범사업 실시 등 면허 관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카데바 인증샷 사건으로 또 다시 의료계는 상당한 비판에 직면했으며, 자성의 목소리도 일어났다. 이후 시체 촬영과 관련한 처벌 조항이 신설되고, 과태료 상한선을 5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높이는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인의 부적절한 모습은 정부의 규제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일반의인 시프먼(Herold Shipman) 사건은 대표적인 의료스캔들이다. 24년간 의사로 재직하면서 약 236명의 환자를 ‘살해 순간의 흥분’이라는 동기 외에는 불명확한 이유로 살해한 혐의로 1998년 체포되어 2년간 조사를 받았으며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2004년에 자살했다. 

이전에도 의료스캔들이 있었으나, 1990년대는 시프먼 사건을 비롯해, 여성 환자를 폭행한 에이링(Clifford Ayling)사건, 여러 건의 남성환자 학대를 자행한 그린(Peter Green)사건, 부적절한 수술법으로 30여명의 사망을 초래한 브리스톨 병원 사례 등 크고 작은 의료 스캔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사건의 극적인 요소가 미디어에서 부각되고, 환자의 권리와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전문직의 권위가 점차 하락하는 사회적 분위기, 공공관리를 강화해 나가려던 NHS의 움직임 등이 결합되어, 이상의 스캔들은 강력한 규제를 이끌어 내었다. 의료전문직을 겸손하게 만들었으며, 상처 입은 전문직은 저항할 입장이 아니었다.

자율규제는 전문직의 특권이자 전문직과 공공과의 사회계약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실제로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일탈 행위를 감시하고 개선하는 과정이 의사들의 동료협력에 대한 사회적 책무와 상충된다는 점 역시 자율규제의 취약성으로 지적되었다.

규제기관의 조사 기준이 매우 높았고, 의사들은 서로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것을 막았다. 다른 의사를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전문직에 대한 위해 행위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율규제는 의료 스캔들을 막지 못했고, 환자 안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등 비판에 직면했다. 

자율규제를 바라보는 전문직과 공공의 입장은 차이가 존재한다. 전문직은 자율규제를 자율성(autonomy)을 중심으로 규제(regulation)가 이뤄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스스로 자발적인 규준(standard)과 규칙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감독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일반 시민은 의사집단이 전문직으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도덕적 또는 윤리적 규준 및 의무라고 여기며 규제에 집중한다. 

이는 정책적으로 전문직업성 담론과 규제 담론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전문직업성 담론은 의료계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는 속에서 자발적이고 내부적인 동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환자를 위해 의료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전문직의 규준을 높이고 임상 실력을 향상시켜가야 하며, 이를 위하여 규제기구는 지속적인 평가를 통한 형성적(formative)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규제 담론은 정부 담당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일반 대중이나 사회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의료스캔들과 같은 외부적 동력에 의해 추동 되며, 고정된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총합적 판단을 하며, 이에 미치지 못하는 전문직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의료 스캔들과 같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유도된 규제는 전문지식의 한계로 인해 적절한 기준의 설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으며, 전문직업성의 발전이나 예방적 조치와는 상관없는 규제일변의 정책으로 갈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의사들의 수용성을 낮춰 제도의 안착에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의료에서의 자율성을 압박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앞으로의 의료 스캔들은 규제를 보다 가속화 할 수 있는 요건이 될 수 있으며, 의료전문직의 목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의료전문직에게만 가혹할 것인가? 우리가 전문직업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규제 기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과 더불어 양질의 진료임을 감안할 때, 규제 일변도의 논의는 환자에게도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의료인의 수용성의 저하는 그 실효성을 의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사와 공공간의 신뢰회복과도 무관하다.

의료 스캔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증가되고 대중의 권력이 커지며, 전문직의 권위가 쇠퇴하고, 정부의 규제강화 움직임이 강화되는 지금이, 규제기구 관련한 논의가 전문직업성의 핵심 이슈가 되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규제기구의 논의는 ‘치과의사와 공공이 함께 하는 공동규제’,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의 담보’, ‘상업주의 규제’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원)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