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보 했지만 아직은 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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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 했지만 아직은 믿을 수 없어”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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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공대책안, 지역거점 공공병원 설립 통해 지역주민 동력 얻어야

 

(편집자 주) 지난연말 정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안’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부가 2004년 11월 경제자유구역내 외국영리병원의 내국인진료를 허용하면서 공공보건의료 4조원 규모의 투자방침을 결정한 이래 관계부처 조정회의를 거쳐 지난해 5월 잠정 정부안 결정과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12월 27일 공식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안’은 지난해 5월의 잠정안에 비해 치과분야 대책안이 추가되었다는 점과 공공의료의 센터 역할을 할 국가중앙의료원의 설립이 공공보건의료위원회와 국가중앙의료원협의회 설치로 변경되는 등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중앙의대 예방의학과 이원영 교수를 만나 이와 관련된 애기들을 들어보았다.

먼저 정부안에 대한 의의를 설명해 달라.

애초 공공의료 30% 확충은 노대통령의 대선 당시 선거 공약이었다. 이미 복지부에서 집행을 했어야 하는데, 집권 3,4년차에 시작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정부가 작년 4조3천억이라는 구체적인 재정액수를 제시하며 공공의료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게 가장 큰 의의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이렇게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해가며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정부가 총리 주재 아래 사회장관간담회를 통해 정부안을 확정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집행계획을 세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거다.

보건의료운동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기존 정책의 ‘짜집기’,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비판도 있다.

당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앞서도 먼저 언급했듯이 시기적으로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 집권 초기가 아닌 이상 얼마나 추진력을 갖고 진행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만 한다. 또한 정부의 대책안 발표가 기본적으로 트레이드의 성격이 짙다는 점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을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4조3천억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기존의 건강증진사업 등 다른 부처의 투자계획까지 다 끌어 모아 짜깁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자원확충 계획과 프로그램의 개발 및 집행에서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마디로 이제부터 시작일 뿐, 실제로 신규 투자비가 얼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지난해 5월의 잠정안과는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나고 있는데...

애초의 계획보다는 많이 후퇴한 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잠정안에는 공공의료정책 수행의 중추역할을 담당할 국가중앙의료원을 기존의 국립의료원을 확대 개편해 오는 2009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연말의 발표 때에는 복지부 산하의 공공보건의료위원회 설립과 분야별로 특화된 국립병원들과 서울대병원이 협의체를 구성하는 국가중앙의료원협의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국가중앙의료원은 국립암센타와 같이 주요 질병의 예방과 진료, 재활서비스 등에 대한 국가적 표준을 정할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과잉, 과소진료 없이 표준진료지침에 따른 모범진료를 수행하면서 전체 보건의료 공급체계(민간병의원 포함)의 효율화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복지부 산하의 공공보건의료위원회와 국가중앙의료원협의체로 형태가 변형되었는데 현실적으로 국가중앙의료원 건립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 안 역시 기존의 위원회 운영처럼 형식적이거나 자문기구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료확충에 필요한 예산배정이 합리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안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래도 협의회를 통해 표준진료지침을 개발, 확산시키겠다는 것은 진일보한 정책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중앙의료원의 정책연구와 기초연구에 대한 연구기능이 커져야 하며, 그에 따른 인적투자가 시설장비에 대한 투자와 함께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정부안을 보면 협의회가 존재하고 상설기능을 하는 사무국을 두게 되어있는데 이 정도의 인프라로 가능할지 우려가 된다. 국가중앙의료원의 중추기능인 권위 있는 표준진료지침의 제시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표준진료지침을 통해 민간의료기관의 적정진료를 선도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진료지침이라 하면 이에는 당연히 의료 문화적 장벽이 따르기 마련이다. 의료의 특성상 의료인들이 표준진료에 대해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치료의 과정상 수많은 변이들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공공의료체계가 가장 잘 짜여 있다는 영국에서도 표준진료는 잘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러한 표준지침을 통해 진료의 질의 변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표준진료에 대한 정보제공을 통해 환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중앙의료원이 표준진료를 확립해 가는 과정 속에서 국가가 진료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핵심인 의료수가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국가가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의정간의 불신만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적정진료에 대해 국가와 의료기관, 소비자간에 정보공유만 충분히 된다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의료기관이 관심이 있는 수가문제도 실제비용보다 저수가이면 이를 올리는 것이 가능하고 수가가 불필요하게 높으면 낮출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현재의 국립의료원을 국가중앙의료원으로 확대 개편한다고 가능한 일인가? 국민들의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불만은 의료의 질 문제에서 보아도 매우 큰 편인데...

그러니까 인적투자가 시설장비에 대한 투자와 함께 더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권위를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중앙의료원이 진료기능도 중요하지만 연구기능을 대폭 강화해야만 한다. 예컨대 진료기능을 축소하더라도 공공성성격이 강한 기초연구(희귀난치성질환, 장기이식 등)와 표준진료개발 연구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 강화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 이룰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미 민간기관이 포화상태에 있는데 시설에 대한 중복투자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의미 있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민간기관에서는 필연적으로 회피하게 되는 진료의 영역이 있다. 이미 사스가 발생했을 때 민간병원에서는 이들 환자들의 수용을 거부한 바 있다. 이것 말고도 응급병상이나 희귀난치성 질환 등 민간기관이 회피하는 영역은 상당한 편이다. 이것을 상업적인 행태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민간기관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이들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의 진료기능은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와 진료를 담당하는 국가중앙의료원이 결국은 공공의료의 두 축을 담당해야 한다. 이랬을 때만 전국의 공공의료기관은 물론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부안으로는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복지부 산하의 국가중앙의료원협의회와 공공보건의료위원회를 통해 전국의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가 가능 하느냐는 것이다. 교육부 소속 국립대병원이(행자부 소속 지역거점병원은 이미 행자부에서 복지부로 이관) 모두 복지부 소관으로 이관된다 해도 예산배정과 임명이라는 관료적 권한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인데, 이것이 국가중앙의료원이라는 전문적인 기술지원 없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정부가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중심체계 구축 방안


현재 공공의료기관의 관료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의사들도 문제지만 행정 관료들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는데...

행정관리라는 측면에서 원장선임이 불투명하고 이사회의 기능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으로는 미션이 주어지지 않고 평가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의료의 성공 여부는 사실 임상을 담당하는 좋은 의사인력의 확보가 관건이다. 이것 역시 투자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내부평가시스템을 도입해 과별 목표를 설정한 후 인사고과에 반영해야 한다. 물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의 표준운영시스템 도입인데, 평가기준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또한 병원 평가의 기준도 현재의 적자냐, 흑자냐는 단순 평가가 아니라 생산성 평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한다. 현재의 경우도 공공병원이 동일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수익은 떨어질지 몰라도 생산성은 높은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상업성이 가미되는 민간기관과 동일한 평가 잣대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 인력의 충원도 전문경영을 위해 복지부에서 관장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복지부는 정부 내에서 힘이 없는 부처인데, 이들 인력관리가 행자부에서 복지부로 이관된다면 정부 차원의 인력수급 차원에서 과연 만족할 만한 인력의 확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현재의 조건에서는 판단이 잘 안 선다. 현재 정부는 총액인건비라는 개념 아래 인력 정원보다는 전체 인건비 총액만 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점도 고려해야만 한다.

정부안을 보면 1차 공공기관인 보건소의 경우 인력의 활용을 아직도 공보의로 잡고 있는 것 같다. 치과의 경우만 보아도 치전원의 도입으로 당장 2008년부터 인력 충원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데...

문제다. 사실 이번 정부의 대책안에는 보건소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력충원과 관련된 계획이 전혀 없다. 기존의 인력만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결국 정부 발표안이 기존의 계획을 짜깁기해 4조3천억에 맞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기왕에 계획했던 국가중앙의료원 설립도 백지화되었고, 앞으로 추진상황을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한마디로 정부의 추진의지를 아직은 확신만 할 수가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해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쨌든 정부의 대책안이 잘 집행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정부 부처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하면서 대국민 약속을 했다는 점, 바로 이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감시와 채찍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항상 이와 관련해 늘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국민들과 어떻게 접촉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국민의 지지와 지원, 말하자면 대중적 동원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최근에는 여러 지역의 지역거점 공공병원 설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성남이나 여타의 곳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업성만 추구하는 민간병원의 생리상 꼭 필요한 2차병원이 경영상의 이유만으로 사라져가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역의 운동과 결합해 동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3차병원의 경우는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겠지만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올해의 지자체 선거와도 맞물려 있고, 그래도 우리 지역에 2차병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대중적 공감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큰 편이다. 많은 분들이 이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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