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총체적 의료개혁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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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총체적 의료개혁 실종!
  • 편집국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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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답보·혼선…장관 교체로 ‘개혁성’ 회복해야


장관 퇴진! 고조되는 갈등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 유보’를 발표한 3일 후인 지난 10월 23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포함한 보건의료단체들과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실련, 건강세상네트워크 6개 시민사회단체들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마지막 성명서 채택에서 사회각계 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무능과 무원칙으로 의료개혁을 좌절시킨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다”는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후퇴와 후퇴를 거듭하던 참여정부 보건의료정책이 출범이후 9개월만에 ‘재기불능’ 판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에 앞선 18일 김화중 장관이 긴급히 간담회를 요청했으나, 이미 ‘장관 자진 사퇴’ 방침을 굳히고 있던 이들 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간담회를 거부하고 예정대로 23일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이에 김화중 장관도 맞불 작전에 돌입했다.

4일 후인 27일 김화중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책은 장관이 결정하는 것인데 시민단체와 사전에 협의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보복하는 것이다”, “수가제도에 대해 너무 모른다”, “공부 좀 해야 한다”는 등의 비하 발언을 쏟아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편, 그 4일 뒤인 31일 청와대는 건치를 포함한 7개 보건의료단체에 비서실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11월 7일 간담회를 제안했다. 청와대 측은 “국민의 생활현장에서 제도개선 사항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참여수석실에서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된 제도개선사항을 발굴하기 위해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보건의료단체들은 그 날 자리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부여해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별 성과없이 끝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치 신이철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노무현정부 의료개혁 실종에 대한 비판과 복지부 장관 퇴진을 강력히 촉구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 김 장관의 언론매체를 통한 비난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명예훼손 고소’ 등 공방이 연일 이어졌고, 마침내 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달 12일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복지부 장관의 퇴진”을 천명하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에 앞서 청와대가 “오는 12월 중 각 부처별 평가를 통해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어, 이날 시민사회단체들의 한방은 김장관으로선 결정타를 의미했다.
이에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재규 회장을 비롯한 6개 의료단체장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의 ‘김장관 퇴진 촉구’ 성명서가 발표된 하루 뒤인 지난달 13일 긴급히 회동했다. 이날 회동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6개 의료단체장들은 그 다음날인 14일 ‘김장관 사퇴 반대’를 골자로 한 의견서를 발표,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대대적 개각을 앞둔 상황에서 바야흐로 의료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장관 퇴진’ 문제. 향후 의료계·시민사회단체간 커다란 한판 싸움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기대…실망…그리고 분노

그렇다면 왜 시민사회단체들이 ‘장관 퇴진’ 구호를 내걸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단 시작은 ‘기대’였다.
작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후보가 ‘개혁’과 ‘참여’를 표방하는 한편, 복지·의료분야에서 ‘공공의료 30% 확충’, ‘진료비 총액상한제 도입’, ‘포괄수가제 도입’, ‘공단심사 강화’ 등 진일보한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권인수위 당시 노무현 당선자는 “의약분업과 건보재정통합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부의 의료개혁 작업을 그대로 밀고나가되, 과정에서 발생됐던 여타 문제들을 보완하겠다”며 의료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키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첫 내각이 발표된 지난 2월 27일부터 ‘실망’은 시작됐다.
대한간호사협회 출신의 김화중 씨가 참여정부 첫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과연 의료계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의료개혁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또한 부처 이기주의가 극심한 행정부 내에서 의료시장 개방과 경제특구 등 의료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핵심사안들에서 ‘경제논리’로 밀어부칠 재경부 등의 압력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도 의구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우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실제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의료개혁을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의 주장처럼, 제반 의료개혁 작업들은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진료비 총액상한제 도입과 보험급여확대, 공단심사 강화 등 내걸었던 공약들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으며, 내년도 예산에서 ‘공공의료 30% 확충’을 위한 예산은 전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기다 국민연금법 개악, 내국인 진료 허용, 포괄수가제 당연 적용 철회, 의료기관평가제도 병협 위탁 등 거듭된 퇴행적 모습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출범 9개월만에 ‘의료개혁 실종’ 선고를 내리게 된 것이다.

김 장관의 두가지 자충수

이렇듯 기대에서 실망, 분노로 이어진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 변화와 출범 이후 후퇴와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실종의 나락으로 떨어진 노무현정부 의료개혁정책의 흐름속에서 ‘장관 퇴진’은 어쩌면 정해진 시나리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간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이냐는 점이다. 여기서 정부가 12월 중 부처별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새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밝힌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공동대표는 “정부가 올 한해 복지·의료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게 하는 한편, 새 장관에 확고한 의료개혁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 배정될 수 있게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 ‘장관 퇴진’ 투쟁의 의미를 설명한다. 즉, 12월 개각 발표가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유보’와 ‘의료기관평가제 병협 위탁’에 대해 ‘퇴진’이라는 의외의 강공 전략으로 나온 이유가 된 것이다.

또한 “친의료계 성향의 인물이 장관 자리에 앉은 상황에서는 나머지 4년의 임기기간에도 의료개혁이 추진되기 힘들다”는 조 대표의 인식처럼 시민사회단체들의 의료계에 대한 강한 불신도 ‘퇴진’ 구호를 내거는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의약분업’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부의 의료개혁이 의협의 반발로 변질된 전례에서 파생된 이러한 불신 앞에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유보’와 ‘의료기관평가제 병협 위탁’이라는 두가지 사건은 어쩌면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의약분업 변질’이라는 악몽으로 되살아났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새 내각 구성을 앞둔 시점에서 김 장관이 두가지 자충수로 ‘퇴진’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이후 연일 시민사회단체를 비난하며 기름을 부어댄 셈이다.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논란

위에서 설명했듯, 현 장관 퇴진 국면은 결국 노무현 정부의 의료개혁 실종과 김화중 장관의 친의료계 성향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때문에 현재 보여지고 있듯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간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6개 의료단체장들이 지난달 14일 발표한 의견서에서 다른 문제들은 차지했으면서도 “세계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그것도 의료보호제도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미국 스스로도 문제점이 심각한 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포괄수가제 문제’만은 언급했던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의료계의 이해관계가 달린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자칫 과거 의약분업 때의 상황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잠재한다.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의료계를 제외한 사회각계가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에 찬성했음에도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의료계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지난 7년간 시범사업과 평가, 연구작업을 거듭해 의료의 질 저하 등 의료계가 반대의 명분으로 내세운 문제점들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점이 입증됐다”며, 그럼에도 또 다시 전면 시행이 유보된다면 “의료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행의 소비적 수가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지불제도 개편의 실마리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결국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전면 확대를 둘러싼 논란은 “과잉진료를 막고 총체적인 의료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지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 전체의 요구와 ‘진료량 증대에 따른 경영상 이익의 소멸’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 사이에 서 그  정점에 서있다.

개혁성 회복 계기 돼야

지난달 12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김화중 장관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국민연금법 개악, 포괄수가제 당연 적용 철회, 의료기관 평가제도 병협 위탁 등 도저히 개혁 지향적이라 볼 수 없는 반개혁적·퇴행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료비 총액상한제, 공공의료 30%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 등 복지부의 강력한 의지와 범정부 차원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정책들이 여전히 과거의 관성과 답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익집단의 압력에 굴복해 개혁적 정책을 좌절시키는가 하면 정책혼선을 자초하는 등 개혁에의 의지, 실질적인 개혁 추동력, 그리고 신뢰의 측면에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익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풀려는 노력보다는 회피만 거듭하다, 결정적 순간 한 쪽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건강세상 조경애 대표의 지적처럼,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퇴진’ 요구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참여정부의 보건복지정책이 퇴행과 답보, 혼선으로 점철되며 불거진 김화중 장관 퇴진 국면! 지금껏 추진해온 보건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재점검과 의료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새로운 장관의 임명을 통해 ‘의료개혁’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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