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또 하나의 조국, 평양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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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또 하나의 조국, 평양에 가다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3.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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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찍고, 평양으로

▲ 을밀대에서 바라본 평양시내 모란봉 구역, 왼펴네 개선문에 아래편에 김일성 경기장이 보인다.

북경 찍고, 평양으로

몇 개월 동안 수없이 연기되었던 방북. 막상 이제 들어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인천공항을 출발했을 때조차 북으로 간다는 실감은 크지 않았다. 그것도 평양으로 향하는 직항로가 아니라 북경으로 출발하는 것이었으니 ‘혹시 북으로 들어가는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나보다.

“꼭 이렇게 북경을 거쳐야 하는가?”

하지만 중국 북경을 거쳐 북으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심장부이며, 21세기 세계경제를 떠받칠 ‘사회주의 국갗 중국 경제의 핵심을 휙하니 둘러보고 북으로 들어가는 것도 북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북경은 참으로 기묘한 도시였다. 마치 서울의 지난 40년간의 도시발달사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듯, 30층, 40층, 50층 거대한 신식 건물들이 하늘로 솟아올라 있는 한편, 다른 곳에서는 허름한 기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슬럼가들이 광범위하게 공존하고 있는.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7-80년대에 지은 듯한 사회주의식 육중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서울식으로 말하자면 5-60년대 거리와 7-80년대의 거리, 그리고 21세기의 거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참으로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급속한 발전, 압축된 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 그러나 그러한 부작용의 느낌보다는 아직도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는 건설현장의 모습이 증명하고 있듯이 수직 상승의 발전상만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 그것은 북경의 거리를 지나면서 볼 수 있었던 북경 사람들의 얼굴들 속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자신감, 발전에 대한 확신이라고나 할까? 그들의 얼굴에서는 시장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처음 만난 북의 여자

예쁘다. 다음날 아침 북경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난 북의 사람은 여자였다. 20대 초반 1인과 40대 초반 1인. 그리고 평양과 묘향산에서 만났던 북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예쁘기만 하다.

상점에서 물건을 팔고, 식당에서 손님 접대를 하고, 또 관광객들에게 유적지 안내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몇 개 외국어에 능통한 북의 엘리트들로 자부심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 활달한 그 모습이 더욱 예쁠 수밖에 없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예쁜 여자들이니 “통일은 빨리 해야 합네다”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수도, 평양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크고, 고층 건물들도 상당히 많으며, 또한 사람들도 남에서 들었던 것보다는 거리를 퍽이나 지나다녔지만, 뭐랄까… 활기찬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기묘한 도시였다. 2-30층에 달하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고려호텔이나 양각도 국제호텔 등은 4-50층에 이르는 건물들이지만 양각도 국제호텔을 제외하고는 페인트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지은 지 최소한 10년 이상은 되어 보임에도 수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탓인지 퍽이나 낡아 보여 마치 죽어있는 건물들처럼 보인다.

80년대말, 90년대초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제제 조치 이후 더 이상의 발전을 저지당한 탓일까? 4박5일 동안 묵었던 고려호텔 앞의 가로등은 9시에 꺼졌지만, 고려호텔에서 한 블록만 넘어서면 아예 해가 지고 나면 암흑천지로 변하고 말았다. 매 끼니 대하게 되는 정말 뭐라 말 할 수 없이 맛있는 - 남한에서는 결코 맛을 볼 수가 없는 - 장안의 화제 드라마 ‘대장금’의 정성이 담겨 있는 가지가지의 음식들, 그리고 고려호텔을 중심으로 대하게 되는 사람들(특히 여자들)의 자신감들과 평양의 거리들은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 평양의대 병원 기공실을 방문한 건치 방북단
평양의대 병원과 그들의 ‘자존심’

11월 19일 오후 3시, 평양의대 병원 도착.
평양의대병원 류환수 부원장과 조선의학협회 정봉주 부회장을 만나 대북사업과 관련한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 올 상반기 건치에서 보낸 대북지원물품(유니트 5대 포함)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 본 구강과 진료실에는 이번에 지원한 유니트체어 2대(나머지 3대는 함흥에 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와 1976년에 설치했다는 낡은 유니트체어가 1대 놓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개원가의 치과의원 규모보다도 작은.(평양의대병원은 북의 4차의료기관이다)

그리고 건치가 제안한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 ▲구역병원 지원 ▲ 기공소 현대화의 3가지 사업 중 평양의대병원과 구강예방원 2곳의 기공소 현대화 지원을 합의하고 난 뒤, 다시 방문했던 구강과 진료실 옆의 기공실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기공실 지원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기공소 설치를 새롭게 계획해야 할 정도로…. 그만큼 북의 현실은 아주 참혹한 것이었다. 90년대 중반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고난’에서는 이제 벗어난 듯하지만,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제제 조치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빚고 있는 그들의 현실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 평양의대 병원 기공실 기구
다시 평양의대 병원 기공소에 들러 현대화된 기공소의 설치를 그들에게 약속했을 때 그들이 보여주었던 기대와 환영을 난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더욱이 그들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어려움들 중 하나가 자신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이들은 이것을 그들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남의 지원이 확실해지지 않으면 그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꺼려만 한다) 그들의 환한 웃음과 기대에 찬 모습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통일을 위한 벽돌 한 장

나는 북의 사회체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내가 북을 또 하나의 내 조국으로 생각하고, 북의 주민들을 한 겨레로 생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4박 5일 동안의 짧은 방북기간으로 내가 북을 다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건 지금 현재 심각한 경제난과 무너져버린 의료체계로 말미암아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를 재건하기 위해 전 세계의 도움을, 특히나 한 민족인 남측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단,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결코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것이 그들의 현실적인 판단인지, 아닌지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을 갖다 붙이기에는 내가 보고 온 그들의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지금까지 건치가 북에 지원해 왔던 것, 또는 앞으로 지원하게 될 여러 가지 것들이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또한 현실적으로 제대로 쓰일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는 한 민족의 동질감일 것이다. 우선은 통일의 주축돌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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