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임금 1만원'에 대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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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 1만원'에 대한 논란
  • 송필경
  • 승인 2017.07.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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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친절하다고 한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몸에 밴 친절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 정평 나 있다. 일본 택시 업계도 모범적이다. 그런데 친절한 품성은 일본인 고유의 속성일까?

‘나가시’는 자가용으로 택시 영업하는 일본말 속어다. ‘독고다이’는 특공대란 일본말로써 (과속)난폭 운전하는 택시를 일컫는다.

1960년 대 초까지 일본에서는 나가시 택시와 독고다이 택시가 판치는 불법이 수두룩했다. 당시 일본 도심과 하네다 공항 사이 운전하는 택시는 거의 독고다이였으며, 이들 택시 운전사의 운전 수명은 5년이 채 안되었다. 난폭운전으로 죽거나 심한 부상 사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1960년 29세의 자수성가한 젊은이가 택시 10대로 미나미 택시회사를 만들었다. 택시 노동자는 툭하면 결근했고, 독고다이 운전으로 사고가 꽤 많아 사업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젊은 사장은 먼저 택시 노동자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그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했다. 단칸방에서 끼니도 잘 해결하지 못해 배고프거나, 독고다이 운전으로 피곤하면 결근하는 현실을 보았다. 사장은 쌀을 듬뿍 사들고 결근한 노동자의 집을 찾아다녔고, 최저 임금을 올려 줬다. 그러고 나서 끼니를 거르거나 난폭 운전을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택시 회사의 총수입은 30%가량 떨어졌지만, 결근이나 사고로 인한 손실액이 대폭 줄어들어 실질 수입은 5% 정도 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사장은 노동자 ‘복지’를 확대하고 나서, 노동자에게 ‘친절’을 주문했다. “택시비에는 친절이 포함돼 있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택시를 탄 뒤 기사가 ‘감사합니다, 오늘은 ○○○ 기사가 모시겠습니다. 행선지는 ○○가 맞습니까? 두고 가는 물건은 없습니까?’라고 네 번 인사하지 않으면 승객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시민들에게 알렸다. 또 장애인 우선 승차, 자발적 요금 인하 등으로 일본 택시영업 풍토를 바꿨다.

1960년대 말부터 직원복지 대책으로 집 마련에 도움을 줬다. 1991년 아파트를 지어 장기 저리低利)로 분양을 했다. “단칸방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결근하던 직원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니 출근율이 100%가 되었다”는 게 사장의 성과였다. 미나미 회사는 1977년 가쓰라 택시를 인수해 미나미-가쓰라를 뜻하는 MK택시로 성장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5년 일본 MK택시를 ‘세계 최고의 서비스 기업’으로 선정했다. 젊은 사장은 회장이 되어서도 직접 회사 택시를 운전하기도 했다.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일이다”, “운임을 올려 수익을 올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등 좋은 말을 많이 남겼다.

MK 택시를 만든 사람은 재일동포 ‘유봉식’씨다. 1928년 경남 남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943년 16세 때 맨 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는 주유소를 경영해서 모은 돈으로 택시 회사를 만들어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유봉식씨의 성공담은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 소개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한국인’ 유봉식의 신화에서 판에 박힌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원래부터 게으르고 어리석은 백성이라 단정 짓고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했다. 친일파들은 여기에 맞장구치면서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친일을 합리화했다. 일본인이 우리에게 내린 판단을 우리가 비판 없이 되뇌면서 우리 잠재의식에 단단히 박혀 고정관념이 되었다.

19세가 말 한 서양의 관찰자가 당시 간도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깜짝 놀랄 정도로 친절한 조선인 농부를 만났다. 그리고 압록강을 넘어 조선 땅을 밟으니 깜짝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더러운’ 작은 마을을 발견했다. “관리에게 수탈당해 생기가 전혀 없었다. 백성은 관청 요구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극심하게 가난한 상태로 전락하는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당시 조선 상황을 현대 자본주의 개념으로 보면, 지배계층은 기업가 정신이 없었으며, 피지배계층은 노동윤리를 가질 틈이 없었다.

교훈은 이렇다. 지배계층의 착취가 없었던 간도에서는 농민은 부지런하고 친절했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가능했던 일본에서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더 뛰어난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

MK택시 유봉식 회장**이 1988년 서울 올림픽쯤에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에서도 MK택시 회사를 만들려고 했다. 운전 노동자의 복지를 개선하고, 완전 월급제인 택시 회사를 운영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자 관련 당국의 관료와 택시 사업자들이 MK 택시 도입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친 기업적인 관료들은 노동자의 권익이 전 노동계로 퍼지는 걸 두려워했고, 택시 업자들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경영 방식을 두려워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택시 노동자들은 저임금, 고용불안, 과중한 노동시간에 시달려 생기 없고 가난하고 불친절하다.

지금 최저 임금 1만원이 사회 주요 이슈다. 중소기업가나 자영업자의 처지에서 임금 압박에 따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경제계나 보수 언론에서 반대는 불 보듯 뻔하다.

인간으로써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 가운데 하나가 최저 임금제다. 그런데 진보라고 자처하는 일부 사람들조차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진보적인 사안에 대해서 수구 기득 세력은 수 백 가지의 반대 이유를 댄다. 그러나 진보 세력은 그 사안이 인간이 존엄에 대한 문제라면 현실적인 수 백 가지 반대 이유보다 꼭 필요한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
일본인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든 친절과 합리적인 경영으로 성공신화를 창조한 유봉식 MK 택시 창업자가 지난 6월 8일 향연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날치과,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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