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는 자율규제를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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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계는 자율규제를 준비하고 있는가?
  • 김경일
  • 승인 2017.07.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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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경일 논설위원

 

최근 자율규제 논의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자율규제의 한 형태인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지난 7월 1일 대한의사협회 학술대회 자리에 참석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자율규제 시스템을 기초로 의사의 윤리성을 높여 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다나의원, 신해철 사건, 카데바 사진사건, 유령의사 그리고 최근의 결핵 간호사 문제 등 의료스캔들은 국민, 국가, 의료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은 의사들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국가에 책임을 요구한다. 즉, 더 규제를 잘 하라고 요구한다. 의료인들이 스스로 규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국민의 인식 속에서 의료 규제의 주체는 의료인이 아닌 정부인 것이다.

국가의 반응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가용한 수단인 법적 제재(制裁)를 강화하는 것으로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율규제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의료인과 같은 전문직에서는 자율규제가 효과적임을 정부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의료 전문직의 전통이 일찍 형성되고, 스스로 전문성을 획득한 경험을 가진 나라들은 대개 자율규제를 시행하여 왔다.

의료계는 중앙회를 중심으로 정부규제 강화에 반발하는 한편 자정활동을 통해 스스로 전문직업성을 높이고 환자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자율징계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사나 치과의사들은 늘어난 행정 절차에 대하여 분노하지만, 이것이 자율규제나 자율징계권 획득과 연관된 문제로는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의료인들이 스스로 규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정부는 아직 의료인 자율규제에 관하여 신뢰가 부족하다고 하고, 일반 치과의사와 의사들은 해당 논의에 대해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지금의 상태에서 협회는 자율징계권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자율징계권과 자율규제는 같은 것인가? 자율징계권만 확보하면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가?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짚어보도록 하자.

첫째, 자율규제를 준비하고 있는가? 자율징계권을 자율규제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자율규제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나 국민이 전문직에게 요구하는 전문직업성을 재정의하고, 그에 합당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직업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모니터링, 교육 및 훈련의 제공, 징계처분의 기준 등을 구체화 해야 할 것이다. 첫 단계인 전문직업성의 재정의 과정은 공론화를 통해 일반 치과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며, 국민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수적임에도 그러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자율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없는 이유가, 자율징계권만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 때문인지 우려스럽다. 자율규제의 역사가 깊은 영국의 최근 논의는 시사점이 크다. 1990년대의 잇따른 의료스캔들은 전문직 중심의 전통적인 자율규제가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전문직의 책무성(accountability)을 강조하고 대중이 그 실천과 감독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공동규제(shared regulation)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경험에 비춰볼 때, 단순히 전문직이 스스로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다고 해서 제기된 문제들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의료계는 자율규제를 할 만한 신뢰를 보여주었는가? 대중과 국가의 신뢰가 있을 때에 만이 자율규제가 가능하며, 자율규제를 통해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확보했을 때에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강화될 것이다.

사실, 의료계에서 자율규제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 2011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 중앙단체 산하 윤리위원회는 의료인 품위손상 행위에 대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면허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2011년에서 2015년 의사협회의 처분 요구는 단 2건, 치과는 0건이었다. 같은 기간 의료인 품위손상행위로 의사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건수는 1700여건이며, 리베이트 관련한 처벌을 제외해도 280여건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실적이다. 의사협회에서 진행하는 전문가 평가제는 사업 기간 동안 이렇다 할 만한 사례를 보여주지 못하였고, 이에 사업기간이 연장된 상태다.

이는 조사권과 징계권의 부재, 재정과 인력, 유관단체의 협조 부족 등 여러 가지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율규제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메르스 사태나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에서 보여주듯이 공적인 영역에서의 자정노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은 아직 의료계가 스스로 규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과연 이런 속에서 의협이나 치협이 논의의 주도권을 잡고 의료인의 전문직업성의 증진과 환자 안전의 목표 두 가지를 이룰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환자나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규제(regulation)논의는 전문직업성 향상보다는 특정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였을 때, 처벌이나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기울기 쉽고 이는 의료인의 수용성을 저하시키며, 지속적인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문직업성의 증진에 대한 동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의료인과 환자 모두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치과계뿐 아니라 의료계의 준비는 매우 부족하다. 우리 치과계는 자율징계권을 부여해 달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자율규제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과 국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심도 깊은 논의와 공론화를 통해 구체적인 상을 잡아가야 한다. 그 방향은 ‘공동규제’의 원리에 입각해야 할 것이고, 의료인의 전문직업성의 증진을 바탕으로 환자 안전을 담보하고 상업주의를 견제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 김경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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