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죄스러운,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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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죄스러운, 새만금
  • 윤정식
  • 승인 2006.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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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모처럼 고향에 내려갔을 때, 시내의 모 당사 앞의 주차장에는 쌀가마니가 쌓여 있었다. 엉터리같은 추곡수매 가격과 수매량 감소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였다. 일년 살림인 쌀을 그렇게 한데에 내어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을 그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양식의 대부분이 자라나는 곳, 그 때문에 긴 세월 곳곳에서 엉뚱한 이들의 욕심의 대상이 되고 수탈의 대표가 되었던 곳, 그와 동시에 목숨을 걸고 지켜져야 했던 곳, 시내를 빠져나가 십분만 달리면 어디든 모가 자라 벼가 되고 볏단이 되며 다시 짚이 되는 것을 생활처럼 볼 수 있는 곳...우리 고향사람들만큼 벼와 익숙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 때문에 쌀섬이 거기에서, 늦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쌓여져 있는 것이, 우리 고향 사람들이 한뎃잠을 자고 있는 양, 마음이 아팠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쌀이 그렇게 푸대접을 받다니. 십년 전, 지도를 바꿀만큼 큰 공사를 벌여 갯벌을 가두고 있던 그곳에서, 버젓이 보릿고개를 들먹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그 때, 우리에게 쌀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분이 쌓였다.

십년 전, 새만금에 갔었다. 전국 대학생 환경기행 행사에 참가하여 목포에서부터 여천, 새만금, 아산, 시화호를 거쳐 강화도까지 서해안의 갯벌을 들러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한여름 햇볕은 뜨거웠고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뜨거웠던 바다, 소금기를 먹고 자란다는 빨간 풀이 가득한 섬뜩하기까지 한 간척지와 썩어서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는 죽어가던 갯벌... 그 중간에 들른 새만금.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을 앞에 두고, 농어촌진흥공사의 직원은 말했었다. 힘들었던 보릿고개를, 우리 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만금이 완공되면 얼마나 넓은 논이 생기며 얼마나 많은 쌀이 나오는지를... 시화호를 걱정하는 학생에게, 결코 새만금은 시화호가 되지 않을거라고 장담했었다. 새만금은 공장이 아닌, 쌀을 낼 논이 될 것이기에...

하지만 간척지 주변의 살림은 암담했다. 갯일로 밥을 먹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주민들은 쌀농사보다 갯벌 농사가 훨씬 더 익숙한 분들이셨다. 갯벌의 정화작용 같은 환경 이야기는 아득하고 낯선 이야기이지만 생활은 가까운 것, 갯벌은 그분들에게 일터이자 생활의 근본이었다. 평생을 갯일로 일궈온 우리 이모님의 얼굴처럼, 검게 탄 그분들의 암담한 얼굴. 새만금은 엄청난 쌀을 낼 수 있을망정 그분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한뎃잠을 자던 쌀가마니들, 광화문에 모여 눈물 흘리던 농민들, 그리고 일터를 잃어버린 갯마을의 주민들...결국, 새만금 사업은 진행될 거라 한다. 시화호를 만들지 않는다 장담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넓은 땅에 농사를 지어도 눈물 흘리지 않도록 우리 고향의 농민들의 울분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갯가 사람들의 생활을 빼앗고 갯벌을 죽이고 생태를 바꿀만큼 그렇게나 쌀이 중요하다면, 농민들이 광화문에서 싸울 때 함께 거기서 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다. 죄스럽다. 잊고 지내다 이제야 화가 나는 내가, 마음만으로는 지지하고 있노라고 생각했던 내가, 십년 전 생생하던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내가 고작 이모양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죄스럽다.

희망의 갯벌 새만금 http://www.dicaso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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