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없는 여성주의에 빠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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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없는 여성주의에 빠지지 않길…
  • 서대선
  • 승인 2006.03.2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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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신경아 교수의 '김원장 이야기' 비판에 대한 입장
본지 저명 칼럼인 '김원장 이야기'의 저자인 서대선 원장(서울동부시립병원 치과과장)이 『김원장 이야기, '성 인지성' 문제점 노출』이라는 제목의 지난 16일자 기사에 대해 반박글을 보내왔다. 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나는 그렇게 느꼈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지난 14일 건치 서울경기지부 주최로 열린 여성학 강좌 첫날 강연에서 신경아 교수가 어떤 내용의 강연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어, 일단, 기사 내용만 보고 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문제로 지목된 만화의 부제가 "평양은 이뻤다"이지만, 이런 표현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국가보안법에 저촉이 되는 것인지, 성폭력방지법에 저촉되는 것인지….

어떤 대상을 보고 '이뻤다', '미웠다', '아름답다', '추하다'라는 미학적 표현이 여성(gender)에게만 관계하는 특수용어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최근 『왕의 남자』를 보면서 발칙하게도 배우 이준기를 매우 "이쁘게" 봐버렸다. 내가 게이일까?

위와 같은 형용사나 감탄사는 전적으로 한 개인이 선호하는 미학적 표현수단일 뿐이다. "여성 안내원들 이쁘고 상냥했다"는 표현 또한 지극히 사적인 느낌일 뿐인 것이다.

다른 방문 동료들은 '안 이쁘고 불친절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양 가서 여성 안내원들이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인 감성적 판단을 누구에게도 강요한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고, 내가 느낀 감정을 남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혹시 '여성'을 '게슴츠레'(이 형용사는 성희롱에 해당될 수도 있지만) 쳐다본 것도 아니고 '이쁘게' 바라보는 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총연맹이나 반공청년회 등 우리 사회 우익을 자처하는 단체들이 이를 지적했다면, 나는 겸허히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북한 여성들 머리엔 뿔이 안 달렸을 뿐만 아니라 이쁘기만 하더라"

"평양은 이뻤다"는 말은 일종의 '은유'이다. 이 점은 신 교수도 잘 아시리라 믿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쁜 여성' 운운하여 여성주의자들을 화나게 하느냐"고 질책한다면 그건 나의 책임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파악하기엔 실제로 이뻤던 북한 여성 안내원들을 탓해야 하는 건 아닌지….

오히려 북한 노동당의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태도를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북한 관련 여성주의적 시각의 비판들이 적극적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권력'이라면 그림의 내용과 표현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사적인 이야기를 『건치신문』이라는 공적 매체에 일방적으로 실을 수 있는 암묵적으로 부여된 작가의 독점적 위치(권력)를 문제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안없는 진보주의의 어리석음


내 그림과 글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지, 아니면 여성주의자들의 당파적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에 걸린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글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대안'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주의 진영에서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 여성에 대한 느낌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소위 '대안' 없는 진보주의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령,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이 글을 비판하려면 대안적 글쓰기가 가능해야 한다. 대안적 글쓰기가 불가능하면 여성주의적 시각의 논리적 비판이 아니라 여성주의적 '인상인평'이나 '비난'에 머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것이 성적 불평등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개인이 느낀 특정 감성에 대해 소위 "'잘못되었다' 그래서 '성 인지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으나 그런 예를 들어 건치 전체가 성인지적 감수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생각한다.

이성적 사고에 호소하지 않고,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며 한 방향으로 개개인의 감수성을 몰고 가려는 방식은 성 인지적 감수성의 확장에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검증되지 않은 감수성에의 호소의 과잉은 또 다른 '독재적 강요'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여성주의적 합리성을 믿는 편이다.

그러나 신경아 교수가 반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본 내 그림과 글에 대한 이번 비판에서, 나는 눈에 띠는 "여성주의 이데올로기의 과잉"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성주의적 대안제시형 김원장 이야기


그럼, 여성주의적 시각에 유의하면서 내 글을 대안제시형 글로 다시 한번 써 보겠다. 일단 '여성' 대신에 '인민', 형용사 '이쁜' 대신에 '아름다운'이란 말로 치환해 봤다.

『"평양은 아름다웠다. 북한[인민]들은 아름답고 상냥했다. 김일성 생가 안내원 24세 김옥진씨는 대장금의 이영애 같았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평양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분단된 우리민족의 아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남북녀라는 말이 생각났다. 대동강은 매우 조용히 아름답게 흘러갔다. 그래도 북한[인민]들의 수줍은 듯한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고고하게 아름다운 것일까? 사랑이다. 남북한이 서로 '사랑' 한다면 한집 살림도 가능하리라.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통일은 어렵다. 신뢰, 믿음, 교류, 존중, 자존심, 이런거 말고 사랑 하나면 족하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 맞다. 사랑, 진화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이타주의(altruism). 통일은 사랑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려 한다. 지금 북한 [인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바탕화면에 깔려있다."』

만족하는지요? 이렇게 글을 바꾸고 보니, 추하게도 완전 북한 찬양 일색이 되어버렸군요. 이제 "남북한이 서로 '사랑'한다면 한집 살림도 가능하리라"라는 말의 참뜻을 아시겠지요.

'한집 살림'은 즉 [통일]을 말한 겁니다. 제가 "한집 살림"이란 말로 "통일"을 "성희롱" 한 것일까요. 메타포어 라는 것이다.

굳이 백남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실 미학을 다루는 예술 분야에서 현대 초현실주의 예술분야는 상당히 감상자의 시각을 언짢케 하는 구석이 상당히 많다.

내가 그리고 쓴 글은 만화라는 쟝르는 예술임과 동시에 밑에 나열한 글은 순전히 작가의 사적인 느낌을 기록한 수필이라는 문학쟝르의 일종이랄 수 있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성해방'적 관점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문제의 만화와 글의 핵심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통일'을 이야기 한 것이다. 남북 민중간의 통일, 이것이야 말로 공공의 이익을 얘기한 것이다.

단, 여성주의적 시각에는 개인에 따라서는 해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성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을 말하고 싶었다.

"분단된 우리민족의 아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남북녀라는 말이 생각났다"는 대목이 불쾌할 수도 있다. "남남북녀"라는 사자성어가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그동안 잊고 살다가 [골든벨]이라는 공영방송 퀴즈프로에서 최근에서야 접한 바 있다.

여성주의 자체가 이미 사회구성주의적 입장(지적 상대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우리 사회 일반이 인정하는 상식언어(이것도 물론 가부장제 문화에 기인하지만...)를 쓴 것임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분단 60년, 필자는 남쪽 민중이 북한에 가면 무조건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우선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감성파시즘'이라 할까.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분위기 잡고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끼려 해도 안 느껴지는 걸 어떡하는가?

'느껴진 것을 느끼기…' 이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대동강은 매우 조용히 아름답게 흘러갔다. 그래도 북한 여성들의 수줍은 듯한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고고하게 이쁜 것일까?"

이 구절도 북한 여성들에 대한 극도의 찬양임으로 북을 이롭게 했다고 야단을 친다면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야단을 맞겠다. 근데 실제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걸 어떡하는가? 그렇게 느낀 걸 "잘못 되었다"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나는 서울에서도 아름다운 한강보다도 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어떤 여성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그랬다. 당신의 아름다운 눈에 퐁 빠지고 싶다고…. .아무튼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 '성희롱'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마치 중세 카톨릭 교회가 "너의 마음이 간음한 것도 간음한 것이니라"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진보적 여성주의와 중세 카톨릭


나는 진보적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가 중세 카톨릭의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예뻤다. 가슴이 사무치도록...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이 마치 그 예쁜 여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통일이 빨리돼야 한다는 뜻(통일이 수단으로서)으로 비춰지는 것이 일부 여성주의 입장에서 언짢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렇게 읽혀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감히 어떠한 사소한 [만남]이라도 [통일]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나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다. 한 30여 년 혼자 살아보면 그 어떠한 만남도 기다려진다. .필자의 콘텍스트를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또한 건치신문 2005년 4월 27일자에 실린 '어머니'라는 제목의 김원장이야기에서 "여성들은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될 수 있어서" 라고 말한 것은 내 개인의 성적 열등감의 표현이다.

여기서 말한 여성은 gender가 아닌 sex, 즉 생물학적 여자를 뜻한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가부장제 사회의 일방적인 희생자들 이었다.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생물학적인 특징을 지닌 여성들에 대해 김초혜 시인이 지적한바 대로 "한 몸이었다 태어나 다른 몸 되었다"는 구절에서도 나타나듯이 사회적 성을 얘기하는 gender로서의 어머니를 말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 즉 sex을 말한 것임을 유념해 주시길 바란다.

이런 말로 이만 내 입장(변명)을 마칠까 한다.

"'여성'을 논하는 건 좋다. 그러나 '인간'을 말하는 게 더 시급하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지닌 전근대성과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들이 행동해야 할 진보의 내용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여성주의의 적' B급좌파 김규항)

2006년 03월 17일 서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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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희 2006-03-23 14:59:44
곧 신경아씨가 재반론을 보내온다니 재미있는 토론이 되겠네요. 양쪽 모두 최소한의 '토론품위'를 충분히 유지할수 있는 분들이라 믿기에 더욱 기대됩니다.
'김원장 이야기'의 팬으로서 그간 간혹 느꼈던 불편함을 내부에서 먼저 제기하지 못한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문제제기가 되었고, 또 그것을 작가가 감정적 대립이 아닌 토론거리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추신: 저기요 김광수 선생님, 이미 끼어드셨거든요.^^* (자발적으로, 공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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