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에 귀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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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에 귀기울이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7.09.28 18:1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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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보고사 펴냄‧ 김다언 지음)』…인천건치 이창호 원장

 

“여보, 이 시 좀 해설해줘요”

어느 밤, 유투브에서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박인희 씨의 시 낭송으로 듣던 중 아내가 던진 한 마디에 횡설수설하며 썰을 풀어내던 한 치과의사는 “다음에 다시 해줄게”라고 던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혹은 스스로의 호기심에 이끌려 이 시를 해석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여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이창호 원장(이&김치과의원), 이제는 김다언(金多言)이란 어엿한 필명을 가진 작가는 드디어 여행을 떠난 지 7년만인, 오늘(28일)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보고사)』을 펴냈다.

그의 필명은 어머니와 아내의 성인 김과, 망언다사(妄言多謝)에서 다언(多言)을 가져온 것. “쓸데없이 말이 많아졌다 하면 ‘망언다사’라고 한다.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라고 이창호 원장은 설명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목마와 숙녀』를 해설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결론은 다들 막연한 느낌으로 전후의 비애와 허무감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창호 원장은 이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시는 서정적인데 깊이 들어가면 주지하는 바가 뭔지 고민하게 만들고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교과서에 까지 실린 이유는 뭔지, 나조차도 혼자 집에서 박인희 씨의 시낭송을 배경음으로 술을 한 모금씩 하게 되는 건 뭘까? 이유가 더 궁금해졌고, 박인환 시인의 다른 시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박인환 시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목마와 숙녀』의 주인공인 버지니아 울프는 물론, 박인환 시인의 동료에게 까지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고.

이창호 원장은 박인환 시인이 활동했던 1930년대~1950년대란 그가 없었던 시대를 추억하고 있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희, 노, 애, 락의 감정선을 따라 『목마와 숙녀』를 읽어 내려가며 박인환 시인이 세계를 온몸으로 겪어보고자 했다.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표지(ⓒ 보고사)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중략)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한다 …(후략)

이창호 원장은 ▲목마 ▲숙녀 ▲버지니아 울프 ▲등대 ▲뱀 ▲술 등 주요 시어를 중심으로 박인환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 그가 탐독했던 서적과, 그가 써낸 시들, 주변 동료시인들의 증언록을 바탕으로, 정신분석 기법을 따라 시를 해설하려 애썼다. 그 근거로 박인환 시인이 평양의과대학을 중퇴한 사실과 다른 시 곳곳에서 드러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입문’의 언어들을 통해 그가 프로이드를 접했을 가능성을 들었다.

이 원장은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시절 이복형제로부터 당한 성추행으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분열을 앓으면서도 페미니스트로, 반전주의자로, 동성애자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며 살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 전쟁에 반대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며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발표된 ‘목마와 숙녀’에서는 술 자리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생애에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는 전쟁이 주는 참혹함 외에도 시인의 반전에의 의지, 억압의 시대를 저항하는 신념을 시인이 자신과 버지니아 울프와의 동일시를 통해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목마’에 대해서 이창호 원장은 “목마는 아이가 타고 노는 장난감인데 이걸 ‘숙녀’가 타고 있는 것은 어색한 그림이다. 즉, 어린시절의 상처에 묶여 그 고통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간 버지니아 울프와 그 생애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다분히 성적(性的)으로 풀이되는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한다’는 문장 역시 이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기 껄끄러워 하는 부분인데, 성적인 부분으로만 설명하면서도 전후맥락을 잡지 못한다”며 “뱀은 탈피 동물로, 허물을 벗는 동안 허물이 눈을 가리거나 잘 벗어내지 못하고 버둥거리다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는 뱀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를 벗어버리는지. 그런 뱀은 현명한 뱀이다. 그 현명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눈을 뜨고’ 술을 마시라고 주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성적인 의미와 함께 그것을 뛰어넘는 현명한 시각을 가질 것.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참혹한 세상에서 눈을 뜨고 현명하게 직시하라는 것.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꿈베이커리에서 함께 자란 ‘소중한’ 꿈

이창호 원장(필명 김다언)

특히 이창호 원장은 인천 월미도에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인천건치와 인천지역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세운 ‘꿈베이커리’가 이번 책을 펴내기까지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신춘문예 등단이 꿈이었는데, 꿈베이커리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장소에서 나의 꿈도 함께 자라났다”며 “김호섭 원장이 성악 공부에 욕심을 내고 꿈베이커리의 가수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뭘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들었을 무렵 ‘목마와 숙녀’에 대한 해독을 대강 마치고 흐름이 잡혔다. 그리고 마침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원장은 이 책의 인세를 ‘종잣돈’으로 꿈베이커리에서 저소득 지역아동을 대상으로 한 ‘시 창작 교실’을 열고, 지역 회화‧예술계통 학생들이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또 다른 꿈이라고 밝혔다.

이창호 원장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박인환 시인이 살았던 당시를 느끼려 노력했다. 말하자면 박인환 시인의 자리에 서서 그 때의 세상을 보고 싶었다”며 “의식적으로라도 그러다 보니 자연히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을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새로운 사고방식의 길이 생긴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김수영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란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를 읽는 것도 결국 온몸으로 시인을 이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40대에 박인환 이란 시인을 만나, 글을 쓰면서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면서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내 스스로가 내 삶에 어떻게 동행할 것인지가 지금부터의 고민이다”고 말했다.

이창호 원장은 박인환 시인이 너무 서정시인으로만 알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제목에 ‘그리고 박인환’을 넣었다면서, 다음 책은 박인환이 버지니아 울프와 자신을 동일시 한 것에 깊이 있게 다룰 것이란 귀띔도 잊지 않았다.

한편,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출판 기념식은 내달 28일 월미도 꿈베이커리에서 열릴 예정이며, 도서 구입은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인터넷 교보문고 등에서 가능하며 정가는 1만2천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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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덴섬 2017-10-17 02:11:35
7080 가요로만 기억했던 시인데, 무언가 스토리가 좀 더 있나보구만! 그게 무얼까~

전민용 2017-10-11 11:12:00
멋지다 이창호~~~ 축하하고 부럽습니다 이런 열정과 성실함이^^

최치원 2017-10-03 12:25:50
축하드립니다^^
꿈베이커리와 꿈김다언작가의 큰 꿈이 커져가기를 기원합니다!!!

전양호 2017-09-29 15:32:29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선생님...꿈 베이커리에 책까지 하나하나 꿈을 이뤄가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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