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잃고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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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잃고 나는 쓴다
  • 홍수연
  • 승인 2017.11.07 10: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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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홍수연 논설위원

마감 날짜를 잊었다. 원고를 쓰려고 보니 하필 오늘(7일)이다. 오늘은 러시아혁명 100주년 되는 날이다.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소비에트 공화국의 깃발을 꽂은 날, 우리가 러시아 ‘10월혁명’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날이 100년 전 오늘이다. 워낙 다른 이야기를 쓰려했으나 오늘은 러시아혁명을 피해가기 어렵겠다.

물론 이제 현실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러시아는 없다. 알다시피 1991년 사라졌다. 1917년에서 1921년까지 치열하게 적군과 백군의 내전상태를 거쳐 이룩한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연방은 70년 수명을 다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한세대가 지난 지금 소비에트란 80년대 운동권 세대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뒤흔든 10일(존 리드)’ 이후 지구상에 출현한 소비에트라는 체제는 20세기를 규정한 세계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었고 ‘우리는 지금도 10월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박노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무엇이 그토록 소비에트를 떠올리게 하는가? 소비에트는 어떤 정신을 물려주었는가? 대개 개혁이란, 혹은 혁명이라는 것들도 들여다보면 권력집단의 교체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의 87년 체제를 떠올려보자. 이는 낡은 군사독재 권력을 대체한 새로운 자유주의 권력의 부상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직선제와 같은 제도적 변화 정도로 권력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집단은 경계가 명확하고 변혁은 요원하다는 의미이다.

20세기 초엽, 1917년의 러시아에서는 권력자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구분을 없애는 차원의 변혁을 이루고자 했다. 빵, 토지, 평화를 평등하게 나누고 위아래 없는 민주적 의사소통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볼세비키의 강령이고 본질이었다. 공장 소비에트에서는 노동자 선출로 경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군대에서는 장교와 병사를 수평적 직역으로 구분했다.

현실에서 소비에트는 실패했다. 비민주성, 국가중심주의, 세계자본주의의 침투, 소수민족들의 요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혁명 초기의 단결과 헌신이 지나간 후 새롭게 등장한 관료주의, 울리가르히 같은 신특권 계급 등의 폐단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곰곰 떠올리면서 콘텐츠를 추려내 보면 오늘 같은 날, 러시아혁명이 현재에 남겨 준 (우리의) 과제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동자 경영참여 등의 요구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 자유롭게 설 좌파적 요구로 더욱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사족) 미국 공중보건학회지(AJPH)는 러시아혁명 100주년 기념 특집호를 냈고, the Lancet 에서는 편집장 Dr. Horton 교수가 ‘의학과 마르크스’라는 특별기고를 했다.

*기고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습니다.

 

홍수연(재단법인 화강문화재단 서울이웃린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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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수 2017-11-09 14:26:52
비록 실패했으나 인간중심의 사회를 만드려는 꿈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되겠지요

2017-11-07 17:37:02
그리고 한국에서는 홍원장님이 건치신문에 논설을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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