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경찰이고 누가 가정폭력가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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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경찰이고 누가 가정폭력가해자인가!
  • 한국여성의전화 기자
  • 승인 2017.11.1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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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 ⑪ 가정폭력가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한 경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경찰인가!

본지는 한국사회 최초로 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하고 쉼터를 개설한 한국여성의전화와 정기 연재에 관한 협약을 맺고, 6월 16일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의전화의 유래와 비전을 소개하는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비폭력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이번 기획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지난 2일,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하 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활동가들은 가해자와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출동한 경찰관은 가해자가 ‘위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리조치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들은 “자녀를 보기 전까지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요구를 수용하며 오히려 활동가들에게 가해자를 대면하여 설득할 것을 종용했다.

또한 가해자의 주거침입 사실이 명백한 상황이기에 경찰에게 가해자 임의동행을 요청했으나 “주거의 평온을 깨지 않았다”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도리어 가해자에게 “보호시설 내의 피해자들이 빠져나가야 하니 이동해 달라”라는 ‘부탁’까지 하였다. 게다가 비공개시설인 보호시설 위치가 노출된 것은 피해자와 보호시설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며, “경찰관 자신도 자녀가 있는 아빠다”,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보호시설과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피해자들이 피신할 동안만이라도 가해자의 위치를 옮겨달라는 ‘부탁’도 거절되어, 활동가들이 현수막으로 가해자의 시야를 가린 사이 사건 발생 후 3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두려움에 떨던 보호시설 입소자들이 모두 피신할 수 있었다. 이후 가해자가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모욕하는 동안에도 경찰은 가해자를 전혀 제지하지 않고 방관했다.

11월 9일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범시민단체가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침입한 가해자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한국여성의전화)

보호시설은 가정폭력으로 신변을 위협받는 피해여성들이 긴급하게 피신하여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립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보호시설은 가해자의 폭력과 집요한 추적으로부터 피해여성과 동반자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가해자가 침입했다는 것은 피해당사자는 물론 다른 입소자와 종사자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여성청소년계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과 가정폭력보호시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가정폭력 가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저분도 참고 왔잖아요” “여기서 어떤 조치를 하고 보호를 하는지 알려주고 안심을 시키세요” “저 사람 원하는 건 그냥 자녀 보고 싶다 이거예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0년이다. 지난 20년간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난 정권에서 ‘4대악’에 포함된 가정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경찰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난여름 이철성 경찰청장이 발표한 ‘사회적 약자 보호 3대 치안대책’에서 가정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던 계획의 경과와 성과는 무엇인가.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파출소 경찰부터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까지 가정폭력이 어떤 특성을 가진 범죄인지, 어떤 지원체계를 갖고 있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분노보다 절망이 앞선다. 보호시설의 신고에도 이렇게 대처한 경찰이 하물며 개인 여성이 신고한 가정폭력 사건 앞에서는 어떻겠는가. 출동한 경찰로부터 피해사실을 의심받고, 부인당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신고했다며 훈계 당하고 있지는 않겠는가. 가정폭력 발생율이 45.5%인 우리 사회에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 고작 1.3%, 이 부끄러운 숫자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경찰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가해자가 ‘난동을 부리면서 목숨을 위협’하지 않으면 그들을 옹호하고, 방관하고, 피해자와 보호기관을 탓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당신들의 역할인가? 그것이 범죄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인가?

당신들은 가정폭력을 피해 어렵게 찾은 보호시설에서 안식을 취하던 여성들을 한밤중에 또다시 거리로 내몰았다. 당신들은 가정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을 가해자 가림막으로 사용했다. 당신들은 활동가들을 위협하고 모욕하는 가해자를 보고만 있었다. 아니,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가와 경찰은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민의 생명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위협받거나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 국민이 여성이라고 해서, 가해행위를 한 자가 그 여성의 남편이라고 해서 묵살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번 사건은 명백한 경찰의 직무유기이며 인권침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며,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입장과 태도와 실행에 확실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할 것이다.

* 본 글은 11월 9일에 진행된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침입한 가해자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 강력 규탄 기자회견문입니다.

11월 9일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범시민단체가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침입한 가해자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한국여성의전화)

본 기사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한국여성의전화에서 송고하여 게재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및 여성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미디어 비평 등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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