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사이먼은 이상윤님의 별명입니다)
“내가 다음에 방콕에 놀러 가서 만나자고 하면 꼭 와야 한다” 엥? 무슨 소리. 시에틀에 오는데 비행기 갈아타고 6시간 걸렸단다. 시차가 3시간이 나고. 아마 서울-방콕 거리 정도 될꺼라나. 그 정도인진 당근 몰랐지. 하여튼 그 정성이 허무하지 않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며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고, 얼굴도 들여다 본다. 3년 전 보았을 때 보다 많이 미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고 편안해 보인다는 말에 “그 땐 정말 정신없고 힘든 시기였지. 맘도 그랬고. 지금은 일단 생활의 여유가 있고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맘의 매듭도 좀 풀어 내려고 노력한다” 고 말한다. 요즘 신앙생활이 새롭게 다가온단다. 어디에서 살건 우리는 지금 그런 시점을 통과하고 있나 보다.
만난지 둘째날 아침. 다른 멤버들이 아직 하루를 채 시작하지 않은 시간에 나는 사이먼에게 궁금해 하는 지인들과 건치신문 미국견문록 팬들을 위해 인터뷰를 제안했다. 흔쾌히 오케이. 뜬금없이 왠 인터뷰냐고 놀랄 독자들을 위해 시작한 프롤로그가 좀 길었다.
- 독자들에게 요즘 근황 좀 이야기 해 줘
2003년에 치주과 수련 마치고 다음해부터 Group practice라고, 보통 회사라고 부르는 곳에서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Case Western Reserve 치과대학에서 clinical assistant professor 라는 타이틀로 part-time Faculty로 teaching 하고 있다. (가르치고 있다고 풀어 써도 되겠지만 그냥 말한대로 써보자) 미국에서는 치과의사가 의료기관을 2개 이상 개설할 수 있어서 여러 개의 클리닉을 가지고 치과의사를 여러명 고용하여 운영하는 소위 그룹프랙티스라는 곳이 있는데 내가 있는 곳도 그런 곳중 하나이다. 회사에서 GP가 치주환자를 refer하면 내 이름으로 약속을 잡아 놓고 각 클리닉에 일주일에 한번씩 가서 치료하게 되는거지.
작년에는 치주보드를 땄는데 임상가로서는 그 이상 딸 수 있는 거는 없어. 그바람에 보드를딴 이후로는 더 이상 공부할 의욕(?)을 잃고 점점 공부를 등한히 하면서 점점 무식해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웃음).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specialist 로서 등록하고 표방하기 위해서 단순히 수련만 마친 거 가지고는 안되고 따로 그 주의 dental board에서 실시하는 specialist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보드를 따면 nationally certified specialist로 인정해서 그 시험을 면제해 준다. Board certified periodontist 로서 환자한테 이야기 할 때 권위도 서고.
- 하루 보통 어느 정도 일하고 주로 어떤 치료를 해?
글쎄… 하루 10명 정도 보나? 처음 보는 환자는 보통 consultation 부터 하고 치주질환이있는 환자들은 scaling & root planning 부터 시작해서 환자의 치주상태와 부담능력에 따라 수술도 하고 그러지. 치주질환이 없는 환자들 경우는 심미목적으로 soft tissue graft 같은 것도 하고 보철을 위해서 crown lengthening 같은 것도 하고, 임플란트 환자들도 보고…뭐 상식선에서 치주과의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 그런데 치료 계획과 치료비를 결정하는 것이 좀 복잡하지.
뭐냐하면, 대부분 환자가 보험회사에 가입이 되어있는데 health plan이 다양하거든. 지급 방식이 다양하고 plan 형태에 따라 수가 자체도 달라지고. PPO plan은 보험사와 의사 network 연결되어 있는데 보험사에서 치료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deal 을 한 후 clinic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사가 환자를 보내게 되면 그런 경우는 30%-60% 정도까지 discount가 되는 경우가 있어. HMO plan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specialist에게 의뢰되는 경우는 또 다르고. 인두제 같은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커버되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않을수록 유리한 경우이고. 어쨌거나 보험회사가 손해를 보는 법은 없고 의사들은 피곤하지. (PPO, HMO full name이 뭐뇨? 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 하고 Health Maintainence Organization 란다 )
- 복잡하네. 어느정도 버는지 묻기는 그렇고 일반적으로 specialist 수입이 어느 정도나 돼?
미국의 의료보험 방식에 대해서는 언제 미국견문록에다 써 볼 생각이다. 평균내기가 어렵다. Pay 방식도 고정급, 성과급으로 다르고, 주로 성과급이지만. 보통 GP의 기대수준이 10만불 정도 되고 specialist는 그 이상을 기대하겠지? 거기에서 세금이 빠지는 건데 보통 30-40% 정도 세금으로 내게 되지. 언제 미국견문록에도 썼지만 미국 사람들은 저축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 많이 벌면 많이 버는데로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데로 다 지출로 나가지. 우리나라는 돈을 모아서 집이고 뭐고 사지만 미국인들은 일단 외상으로 사고 다달이 갚아나가는 시스템이거든.
- 학교에 나가면 어떤 일을 하고 지내?
교수들의 일은 강의, research, clinic 감독 등등 인데 외래에서 학생이나 수련의가 진료를 하려면 라이선스가 있는 치과의사가 supervisor를 해 줘야 하거든. 나 같은 경우에는 임상교수로서 치주과 수련의들을 클리닉에서 가르치는데 Treatment plan이 reasonable 한지, 치료과정이 제대로 되어가는지 등을 체크하고 임상적인 지식이나 테크닉등을 알려주기도 하고, 뭐 한국에서 외래교수들이 하는 거하고 비슷한 거 같아.
미국에서는 그러면서도 기초과학을 많이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어. 크리닉에서 인상적인 것은 치료에서 infection control이 무척이나 강조되고 있다는 점인데 모든 것이 일회용이고 가운도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오바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쨌든 그 개념은 한국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어? 언어라든가?
많이 익숙해졌어. 환자들과 치료실에서 이야기 하는 수준에서는 대화의 어려움도 이젠 없고. (이 대목에서 나는 몇 년전 사이먼이 들려줬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마켓에서 뭔가 물어볼게 있어서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과 눈이 딱 마주쳤단다. 순간 당황한 사이먼 왈, “May I help you?” 했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두 사람 다 황당한 얼굴을 했었다는.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구나)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는 알아듣는 것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힘들었는데 이젠 적어도 진료실에서 환자볼 때나 전문분야에 대해서 세미나를 할 때는 별로 어려움은 없는 것 같아. 그렇지만 아직도 말 많은 환자를 만나서 환자가 이것 저것 슬랭을 섞어서 떠들기 시작하면 다 이해하지 못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야. 그런것은 곁가지이고 어차피 그사람들도 외국인에 대해서는 기대수준이 다르니까.
- 치대생들, 졸업하고 나면 진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어때?
졸업후 진로는 대체로 미국 사람들은 졸업하면 개원을 하는 것에 비해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취직을 하거나 공직에 있거나 하지. 아마도 미국인들은 오랜시간 공부하면서 진 빚을 빨리 갚아야 하는 사정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비자문제같은 것들 때문에 sponsor를 찾다보니 그러는게 아닌가 싶어. 물론 백프로 그런 것은 아니고 개원하신 분들도 있지.
- 과 선호도는 어때?
- 미국이라는 말 안 통하고,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수련 받으면서 고생한 거, 지금 생각하면 어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어찌했던 결과물을 얻었으니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주위 도움 준 사람들에게도. 우리 아이들이 여기에서 잘 자라주고 있는 것도 다행이고.
누가 미국에서 수련 받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다고 생각해. 학문적인 풍토가 다른 점이 있고 기본적인 개념이나 basic science에 대한 이해를 넓힌 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수준이 높아졌잖아. 자동차, 가전제품, 휴대폰같은 거 봐도 그렇고. 치과 학문이나 치료수준도 그렇다는 것은 가끔 느낄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미국에 건너오던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임상경험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대가 인양 행세하고 또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사람들은 무조건 대가인양 바라보고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잖아. 아직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 미국 견문록 참 재미있게 읽고 있다. 독자들을 대신해서 진짜 고마움을 전한다. 바쁜 중에도 꼬박꼬박 글을 보내 준 것이 대단하기도 한데, 어떤 생각으로 쓰고 있어?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예전처럼 친미냐 반미냐 이런식으로 미국을 바라보기에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너무 복잡한 거 같아. 정치군사적으로 뿐만아니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난데 단세포적으로 일방적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추구한다거나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관계로 설정해서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지. 그렇다면 때로는 우호적으로 때로는 경쟁하면서 그야말로 실용적으로 사안에 따라 관계를 정립해야 할 텐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한국사람들이 미국을 가깝게 생각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재벌이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국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야말로 일부일 뿐인 것처럼 미국사람들도 영화에서 보는 것 같지는 않거든. 도시의 화려한 화이트 칼라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당 임금을 받으면서 일용직처럼 힘들게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인들의 정치적 성숙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것을 봤거든. 온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정작 미국에서는 50퍼센트도 안되는 투표율로 치루어진다니 말 다했지.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정치적 무관심이라기 보다도 그냥 무식의 소치이거든. 그래서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려면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고 있지.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미국의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한 일부인 것인 사실이거든. 그렇게 해서 환상을 벗어나야 미국에서 하는 제도는 무조건 좋은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사회가 스스로 자학하는 것도 없어질 거 같아서. 당장 의료보험이나 교육제도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미국을 많이 따라가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야. (사이먼의 만평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평도 보내줄래 라는 말에는 그냥 웃기만 한다)
오히려 나와서 보니 스스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한국 스스로 미국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것도 생각난다. 2000년에 내가 미국에 오기 직전에 한국에서는 신문마다 선진국시민이 됩시다 하는 캠페인이 유행이었거든. 그 중에 하나가 한국사람들이 쓸데없이 핸드폰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구박하면서 미국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들만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거든. 선진국시민들은 의식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근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진짜로 핸드폰 가진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구. 그래서 정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웬걸. 1년이 지나니까 개나소나 핸드폰을 사기 시작하더라구. 알고보니 한국보다 유행도 늦고 한국사람들보다 돈도 없고 해서 못했던 것이지 결코 선진시민의식으로 안한것이 아니었더라구. 웃기는 일이지.
- 미국에 들어와서 한국에 한번도 온 적이 없지? 한국에는 안 들어 올 생각이야?
들어가야지. 이렇게 친구들 만나고 가면 또 한국이 더 그리울 거고.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신데, 양가 부모님들은 오히려 뭐하러 들어 오냐고 하시긴 하시지만,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근데 여기서도 몇년 살다보니 여러가지 걸린 문제들이 있어서 말이야….
- 이 정도로 인터뷰는 마무리 하자. 고맙다.
고맙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고 안부가 궁금한 사람도 많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를 빌어 안부를 전하게 되서 오히려 내가 고맙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모두요’
밖에 나오니, 학회기간 동안은, 아니 시애틀은 거의 늘 그러한 날이라던데, 간간히 비가 뿌리고 기온도 제법 쌀쌀하더니만,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싶게 하늘은 맑고 푸르다. 다운타운을 여기저기 다니며 차를 마시고 군것질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public market center를 지나게 되었다. 한국의 대학로 같기도 하고 남대문 시장 같기도 한 분위기인데 활기차다. 사이먼이 한마디 한다. “야, 미국에서 이렇게 활기찬 건 첨 보는 거 같다. 내가 사는 곳은 넘 훵 하다. 시애틀로 이사 오고 싶네”
이틀을 같이 보낸 사이먼은 다시 우리보다 먼저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이먼 주겠다고 한국에서 들고간 김치는 잊어버린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