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재단 “문 대통령, 공식적 사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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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재단 “문 대통령, 공식적 사과하길”
  • 정선화 기자
  • 승인 2018.03.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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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재단 지난 20일 성명서 내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 대통령 공식‧공개사과 요청

한베평화재단 강우일 이사장이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기해 성명서를 내고 문 대통령이 베트남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강 이사장은 먼저 자신이 2000년 전후에 처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민간인 학살 사실을 접했으며, 이후 2012년 말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 총회’에서 베트남 국민들에 대해 죄책감을 표현한 적 있다고 밝혔다.

강 이사장은 “당시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베트남에 온 사람으로서 한국군이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을 드린 것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청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발언했다”며 “이제까지 한국 정부는 물론 종교인조차도 이 사실을 무심하게 잊고 살아왔음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죄책감과 사죄의 마음을 품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그 인연이 한베평화재단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이사장은 “고통스럽지만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마주해야 하다”며 “1968년에 학살이 일어나 올해로 학살 50주기를 맞는 마을이 많은 꽝남성에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참배단을 꾸려 방문했다”고 밝혔다.

강 이사장은 “한국군이 거쳐 간 베트남 5개성에는 곳곳에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힌 위령비와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다”며 “베트남 도처에 놓은 한국군 학살의 증거 앞에서 참배단은 엎드려 사죄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강 이사장은 “베트남 언론들은 한국 참배단에 큰 관심을 표했으며 당일과 다음날 베트남 전역의 신문과 방송에 보도됐다”며 “베트남 정부의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는 베트남 정보의 기조 이면에 역사 문제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큰 관심이 있으며 한국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강 이사장은 “한국 시민들 중에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그도 그럴 것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유감 표명을 한 적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영상 메시지를 통해 베트남에 대한 ‘마음의 빚’을 이야기했으며 한국 언론은 그것을 사과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하지만 베트남 언론은 이런 발언들은 보도하지 않았고 베트남 국민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한국 국민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오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이사장은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약 32만 명의 한국군이 참전한 만큼 사상자의 숫자도 많았고,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도 매우 컸다”며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조사 및 진상규명 작업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에 머물러 있을 뿐 정확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이사장은 “과거 민주정부 시절 다양한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섰던 것처럼 현 정부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해결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유감’ 표명보다 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함으로써 더이상 베트남과의 역사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의로운 해결의 분수령이 되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베재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지난 2016년 창립된 비영리 평화운동단체다. 한베재단 강우일 이사장은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도 함께 재임 중이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부치는 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란다
- 베트남에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지난 2016년 9월 창립된 비영리 평화운동단체입니다. 저 강우일은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이자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의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 전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학살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2년 말 아시아권 20개국 가톨릭 대표가 만나는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총회가 베트남에서 열리자, 이 자리에 참석해 그때까지 마음을 짓누르던 베트남 국민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여 베트남에 왔습니다. 베트남에 온 기회에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한국군이 과거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을 드려 사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군인들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통하여 베트남 민간인들, 힘없는 노인과 여성과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용서를 청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고 발언하였습니다.
 
이 말은 제가 12년 동안 가슴 속에 묵혔던 말이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도, 아니 아픔을 가장 먼저 공감하고 용서를 청했어야 할 종교인들조차도 무심하게 세월을 보내며 잊고 살아왔음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뭐라고 말한들 사과가 될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국인들 중에는 이런 역사를 인지하고 있고 깊은 죄책감과 사죄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베트남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이 한베평화재단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고통스럽지만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학살의 참상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8일부터 11일까지 베트남 중부지역 꽝남성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50년 전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이자 민간인학살 피해가 집중적으로 일어난 곳입니다. 이 일대 마을들은 68년에 학살이 일어나 올해로 학살 50주기를 맞는 곳이 많습니다. 그 마을들 중 하미마을에 집단 제사와 위령제가 열려 한베평화재단이 한국 시민을 중심으로 참배단을 꾸려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하미마을은 1968년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135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곳으로 2001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지원으로 위령비를 건립하였으나 학살을 기록한 비문을 한국 정부가 문제 삼아 현재까지 비문 전체가 연꽃무늬 그림으로 덮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미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찾아간 꽝남성 마을마다 한국군 학살로 희생된 분들의 집단 묘와 사당이 있었습니다. 위령비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과 나이가 일련번호 순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군이 거쳐 간 베트남 5개성에는 곳곳에 이러한 위령비와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습니다. 베트남 도처에 놓인 한국군 학살의 증거들 앞에서 저와 함께한 한국의 시민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미위령제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 속 잘못에 대해 엎드려 사죄하였습니다. 추도사를 낭독하고 무릎 꿇고 유족들 앞에 사죄의 큰 절을 하였습니다. 베트남 언론들은 하미에 온 한국 참배단에 큰 관심을 표하였습니다. 위령제가 열린 당일 많은 베트남 언론이 우리를 인터뷰하였고, 다음날 베트남 전역의 신문과 방송들의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는 베트남 정부의 기조 이면에는 역사문제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큰 관심이 자리하고 있었고, 또한 한국정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시민들 중에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모두 베트남에 간접적인 유감표명을 한 바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학살 피해마을을 중심으로 병원과 학교 등을 짓도록 지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난해 11월 호치민에서 열린 호치민경주세계엑스포 개막식에 영상 메시지로 베트남에 대한 ‘마음의 빚’을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은 베트남에 대통령이 사과했다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과 달리 베트남 언론은 한국 대통령의 사과를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고 베트남 국민들 또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한국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 점을 역지사지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약 32만 명의 한국군이 참전했습니다. 국가가 젊은 청년들을 동원해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파병의 규모가 컸던 만큼 사망자와 사상자의 숫자도 많았습니다. 참전 병력수가 전쟁 당사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았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도 매우 컸습니다. 베트남 중부 곳곳에 세워진 증오비와 위령비를 통해 그 수를 어림짐작할 뿐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조사 및 진상규명 작업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999년부터 한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는 20년이 되도록 여전히 의혹으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 민주정부 시절,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하에서 일어난 반민주적·반인륜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현 정부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해결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명보다 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평화 외교의 모범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적 염원은 정부차원의 공식적 사과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본과는 다르게 한베 간 역사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계 속에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당당하게 서는 길이 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민주정부를 베트남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베트남과의 역사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 구정대공세와 그로 인해 촉발된 전세계적인 68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에 대한 베트남의 뜨거운 관심, 지금의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나아가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시켜 가는 데 역사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한베 간 역사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의 분수령이 되길 빌며, 그 첫발로 대통령의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사과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그것이 ‘평화’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임을 확신합니다.
 
2018년 3월 20일
 
한베평화재단 이사장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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