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사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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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사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3.2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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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 여성위 첫 모임서 의료계내 성폭력·성차별 사례 공감…낙태죄·미투 주제로 팀 활동 결의도

“모든 의사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다른 인간에게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실천적 철학이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치료해야 하고 사람의 질병과 신체를 대하는데 편견 없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 모든 의사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모임 참석자 일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여성위원회(이하 여성위)가 지난 9일 사당역 갭이어공간에서 첫 모임을 갖고, 여성위의 활동 방향성을 세웠다.

이날 모임에는 한국사회에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이른바 ‘미투운동’에 관심 있는 인의협 회원은 물론 이들과 연대를 원하는 단체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먼저 이들은 여성위 위원장으로 윤정원 선생(녹색병원 산부인과 의사)을 추대하고,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팀 ▲미투 연대 팀으로 나눠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낙태죄 폐지 팀’에서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해 여성위원회 의견을 수렴해 의견서를 제출로 본격적 활동에 들어간단 방침이다. 참고로 내달 24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와 관련한 공개변론을 진행하는 만큼 여성위의 활동에 귀추가 주목된다.

‘미투 연대 팀’은 여러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받은 미투운동 지원 요청을 검토하고, 구체적 지원을 위한 연대방향성에 대해 고민키로 했다. 또 지난 15일 출범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에 연대키로 결의했다.

아울러 여성위에서는 인의협 내부에 ‘공동체 성평등규약, 성폭력 예방을 위한 내규’ 준비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를 위한 면밀한 검토와 연구를 통해 인의협 회칙 개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사제간으로,  선·후배 사이로 ‘계속 얼굴을 봐야만 하는’ 폐쇄적 구조 속에서 피해가 공론화되기 어려운 현실을 규탄하면서도, 인의협이라는 진보적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의사사회 내 성폭력·성차별 문제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고, 나아가 피해자를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감·연대’… 의료계 오랜 성폭력 문제 해결 키워드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 주변에서 겪은 성차별과 성폭력 사례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여성을 배제 시키는 남성 중심의 수련문화, 수련은 물론 임상의로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받는 차별 사례를 나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한국여자의사회에서 여성 의사 1,2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차별을 느낀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0.3%가 ‘아주 많이 있다’, 51.6%가 ‘약간 있다’고 답했다.

또 2017년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 의하면 수련과정 중 여자전공의 631명 중 48.5%가 성희롱을, 16.3%가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첫 모임

자신을 산부인과 전문의로 밝힌 한 참석자는 “임신을 해도 의사가 일을 쉬기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임신이 일을 줄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며 “합법적 낙태에 해당하는 기형아를 법이 정한대로 소파술로 낙태 시술을 하는데, 초음파상으로 보면 태아가 보이고 이를 긁어내야 한다. 당시 나도 임산부였음에도 의사이기 때문에 이를 해내야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만성적 인력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내 아래 연차 후배가 임신을 했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 나이트 근무를 세울 수 없었다”며 “그걸 남은 수련의들이 메꿔야 했고, 그게 병원이 인력을 더 채용해 책임져야 하는 문제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후배, 당사자에 대해 원망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은 “미국만 해도 전공의에 대한 수련비용 전액을 국가가 담당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각 병원에서 그 부담을 지기 때문에 전공의, 특히 여성 전공의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의료 공공성의 개념을 확장하고 강화해야만 수련의에 대한 근로조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진녹색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한국 병원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병원 내 직역간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노조가 있는 병원의 사례를 살펴보면 의사 간에도 성별로 인한 권력구조의 문제가 있지만, 특히 의사와 간호사간에 그 특징이 두드러졌다”며 “‘여성’ 간호사들과 관련 포럼을 열었을 때, 의사사회 안에서 여성 의사 개별이 갖는 문제를 간호사들은 조직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여성 의사의 지지가 문제 개선에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인의협 이보라 사무국장은 인의협과 여성위의 역할을 제안하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그는  “여러 사례를 들으면서 의료계 내부의 문제가 깊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면서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의료계 내 권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와 피해자와 생존자에 대한 스피커 역할을 인의협이 해야 하고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의협 여성위 활동과 의제에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이메일(wcaph2018@gmail.com)이나 휴대전화(010-5810-2589)로 연락하면 된다.

여성위 차기 모임은 내달 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육관 115호에서 개최된다. 이번 모임은 ‘의학과 젠더 – 미투, 낙태죄, ’여의사‘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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