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사회적 ‘몸’ 읽는 젠더의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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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사회적 ‘몸’ 읽는 젠더의식 필요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4.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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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 여성위, 여성학자 정희진 초청 세미나…미투 현상 분석‧사회 인식론적 ‘젠더’ 강조

“젠더적 관점이 의료인들의 의료행위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성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여성위원회(위원장 윤정원 이하 여성위)가 지난 4일 서울대학교병원 의과대학 암연구소 2층 강당에서 개최한 4월 오픈세미나 연사로 나온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이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의학과 젠더 - 미투, 낙태죄 ’여의사‘를 중심으로’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이날 강연을 풀어가면서, 사회 분석 틀로서의 ‘젠더’의 의미를 강조했다.

정희진 선생

정 선생은 “모든 text(언어)는 context(맥락)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면서 “젠더는 전통적, 문화적이라는 성역할부터, 동성애를 기반으로 한 이성애, 가정, 성매매, 성폭력, 인신매매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이를 사회구성원들이 어디까지를 문화로 볼 것이며, 어디부터를 폭력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과거 아내를 패지 않는 것만으로 좋은 남편이었던 것이 지금은 가정폭력‘범’이 된 것이 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선생은 지금도 광범위하게 번져가는 #미투 운동을 한국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 ‘젠더’의 문제라고 짚었다.

정 선생은 “젠더는 공기와 같아서 쉽게 탈정치화되고 탈법, 불법,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성희롱과 모욕은 미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유명인들에 대한 미투운동을 통해 일상적 젠더의식의 부재 문제까지 드러낸 것이며 이게 핵심”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 선생은 “우리나라 미투 운동의 양상은 세계 유례 없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대중적이고 광범위 하다”며 “가해자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젠더의식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며 인식론으로서의 젠더가 더 많이 교육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강연을 다니다보면 어떤 남자가 강간범이냐는 질문을 받는데, 나는 특정 남자는 없고 특정 상황과 메커니즘만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면서 “원래 성범죄는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데, 신고 후 받는 2차 피해가 극심하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데, 문제는 그 공동체가 가진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특정구조와 은폐구조가 클수록 해결이 안 되고 결국엔 피해자가 미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봤다.

즉, 경찰과 검찰 등이 ‘성범죄’를 방조한 결과가 #미투로 드러났다는 것. 정 선생은 “미투문제 해결법은 사법종사자의 ‘젠더의식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이협 여성위 2번째 모임. 여성학자 정희진이 '의학과 젠더 - 미투, 낙태죄, '여의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의사의 권력은 환자의 고통으로부터 나온다”

정희진 선생은 의료계를 강한 은폐구조를 가진 집단으로, 의료인은 환자에 대해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직업이며, 이들 집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인이나 종교인 등 대인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사람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 직업군만의 특별한 윤리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앞서 말한 은폐구조와 도제식 교육, 남성중심의 집단이며, 이 불균형한 젠더 위계는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정 선생은 “‘몸과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다는 점에서 의료와 페미니즘은 공통점이 많다”며 “의료인은 자신들의 권력이 ’환자의 고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페미니즘이 의료인의 의료행위에 있어 가장 필요한 관점이며 ’여성‘환자를 ’환자‘로 보는 관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그는 “과거 UN에서는 한국 여성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원인으로 아내구타, 여아낙태를 꼽았지만, 최근에는 ‘성형’을 원인으로 지목했다”며 “이는 외모지상주의 문제일 뿐 아니라 공중보건의 실패라고 보는데, 상업화된 의료는 유능한 인재들을 돈이 되는 성형외과로 몰리게 하고 필수적 의료분야인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를 기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정 선생은 “우리보다 의료가 발전했고, 같은 저출산 국가인 일본을 봐도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지역에서 일주일에 1명씩 산모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사회가 여성에게 몸치장을 강요하는 측면에서의 성형이 문제일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 일반 건강 문제로까지 번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의협 여성위 2번째 모임 참석자들이 정희진 선생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한편 인의협 여성위 3번째 모임은 녹색병원 인권치유클리닉과 공동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내달 1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지하2층 강당에서 『오빠는 필요없다』의 저자이자 여성학 박사인 전희경 선생을 초청해 ‘조직 내 성차별/성폭력 다루기 : 성평등규약 만들기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참가 신청은 링크(https://bit.ly/seminar0501)를 통해 가능하며, 관련 문의는 휴대전화(010-5810-2589)나 이메일(wcaph2018@gmail.com)로 하면 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며 세미나는 선착순 50명으로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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