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인권’ 사회적 담론 확산 과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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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인권’ 사회적 담론 확산 과제 남아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4.27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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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5차 기획좌담회②] 새로운 보건의료운동, 직접 민주주의의 시작…권리주체로서 약자‧시민 더 강조돼야

본지의 기획 좌담회 1화가 게재된 지난 24일, 국회는 끝내 국민투표법 개정을 통과시키지 않아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동시 실시가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문을 내고 “국회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모아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단 한번도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국민투표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이로써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단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개헌안에 담긴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 등 기본권 확대 ▲선거연령 18세 하향과 국민참여 확대 국민주권 강화 ▲지방분권 확대 ▲3권분립 강화 등의 내용이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축소를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개헌안의 취지에 대해서는 개헌과 별도로 제도와 정책과 예산을 통해 최대한 구현해 나갈 것”이라며 “내가 발의한 헌법개정안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 후 심사숙고 해 결정토록 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청와대) 개헌안은 국회 의결시한인 5월 24일까지 여야가 개헌에 전격 합의가 된다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또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인 6월 30일까지라도 여야 합의가 이뤄진다면 야당이 주장하는 9월 개헌 또한 가능하다.

이번 기획 좌담회 2화에서는 ‘권리로서의 건강권’을 개헌 이후 시민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다.

- 편집자

<건치신문 15차 기획좌담회>

개헌과 건강권 - 개헌안에 담긴 건강권의 의의와 한계, 발전 가능성에 관해

■ 일시 : 2018년 4월 13일 오후 7시 30분
■ 장소 : 토즈 강남2호점

■ 사회 : 건치신문 김철신 편집국장
■ 패널 (가나다 순)
-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김용진 공동대표
-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손정인 연구원
- 양승욱 변호사

■ 정리 : 안은선 기자, 정선화 기자(사진)

新보건의료운동, 정치‧일상의 거리감 좁히는 것
주민자치 실현‧직접 민주주의의 ‘신호탄’ 될 것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손정인 연구원

손정인(이하 손) : 개헌안에 ‘건강권’이 들어가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나서 지난해 11월에 건강세상네트워크,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등이 모여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담자”고 증언대회를 열었다.

그때 가습기살균 피해자, 학생, 급식실 노동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왜 헌법에 건강권이 보장돼야 하는지 요구했는데, 당시 나온 내용을 종합해 보면 보건의료서비스를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결정요인이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잠깐 언급됐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이, 국가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생활용품의 안전이나 근로환경의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가 미비했던 것,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력을 방조하는 것 등 제3자에 의한 건강 침해를 방지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 등이 지적됐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처리가 어렵다거나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문제와 같은 의료보장을 위한 시스템과 이로 인해 일어나는 건강권 침해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당사자인 시민의 참여가 제한된다는 공통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김철신(이하 사회) : 헌법에 건강권이란 게 규정되면, 권리의 주체로서 시민이 요구할 여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과제가 생기는 것인데 개정된 헌법에 맞춰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시민이, 보건의료계 종사자로서 해야 하는 실천적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김용진 공동대표

김용진(이하 김) : 지금까지 건치, 건세넷, 성남시민행동 등 관련 단체에서 건강권 관련 활동을 해 왔는데 보장성 확보를 위한 운동의 결과가 이번 개헌안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즉, 건강권이 헌법적 권리라고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시민이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지금까지는 산부인과가 있는 타 지역으로 원정출산을 갈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정부나 지자체에 역으로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성남시의료원의 예를 들자면 주민의 의료적 필요를 지자체에 요구하고 주민 참여를 통해 이끌어 낸 것이다.

민간종합병원이 내부 싸움으로 폐원되면서 의료공백이 생겼다. 그러자 시립병원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당시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처럼 공공의료기관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폐원시켜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모여졌다. 그래서 시에서 직영병원을 하자, 조례개정을 하고, 여기에 시민이 꼭 참여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시민위원회’를 내실화해서 시민참여를 유도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의사결정부터 건설되고 있는 지금까지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그에 따라 개선됐다.

앞으로의 시민사회 역할에 대해 말했는데, 성남시의료원의 사례와 같다. 헌법이 권리주체로서 국민을 인정했고, 지방정부의 권력 역시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의료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지방조례를 만들라고 지자체에 요구할 수 있다. 그 권리가 헌법에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공공기관의 참여 확대를 이끌어 내는 것일 뿐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민이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조례를 관철시키기 위해 큰 싸움을 벌여올 수밖에 없었다면, 개헌 이후에는 주민이 다양한 생활의 영역에서 공공의료와 보건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주민 참여 운동 방식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중앙단위의 큰 싸움으로까지 확대돼 나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

‘내 생활로 들어오는’ 헌법이 되도록 만드는 게 앞으로 건강권, 보건의료운동이 될 것이다. 정치와 일상이 더 밀접해 지는 것이다.

양승욱 변호사

양승욱(이하 양) : 앞서 언급했지만, ‘건강하게 살 권리’라고 명시함으로써, 상업적 욕망에 복무할 수 있는 건강의 함의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적으로도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에 노령, 장애, 질병, 임신, 출산 등 최소한 이게 문제라고 정의해 놨기 때문에 (상업적 의도를 가진) 입법을 막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의 개념을 명확하게 얘기해야 하고, 또 다른 건강의 개념을 말하는 자본과의 싸움이 결국은 헤게모니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더 많은 의미와 구체적인 단어들을 가지고 법률유보 이끌어 내 국회에서 싸우자는 것이다. 전부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헌법이 열려 있는 것이다.

김 : 그래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개헌 이후에 시민사회 활동이나 지역 단체의 활동, 국민의 정치참여 등 어떤 내용과 활동을 채워갈 것인지가. 건강권을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건 국민의, 주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헌법이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요즘 의협이 문재인케어에 반발하는 게 사회적 이슈가 됐는데, 문재인케어도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원칙적으로 ‘건강하게 살 권리’를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달라질 거라 본다.

사회 : 개헌이 되면, 현재 위헌소송에 걸려있는 1인1개소법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양 : 아마도 헌법재판소는 개헌 때문에 아주 시급한 사안이 아니면 위헌판결을 내리지 않을 걸로 생각된다. 영향을 받는 다는 얘기다.

반면에, 개헌의 내용이 사안의 해석에 영향을 주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현행 헌법 조항으로도 1인1개소법은 보호받을 수 있다. 개헌 내용이 입법이나 사인간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하는 일에는 크게 의미를 가지겠지만, 보편적 원리로서 지금도 보호되고 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건강권 ‘담론’ 확산돼야
숨겨진 권리주체도 목소리 낼 수 있도록
건강권,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 위한 첫 단추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

사회 : 개헌안을 살펴보면서 차이를 느낀 부분이 전에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국가가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하는 반면에, 이제는 ‘권리침해’라는 늬앙스가 강하다. 바꿔 말하자면 권리가 신장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정인 선생이 생각하는 보건학에서의 건강권 개념이 개헌 논의에 충분히 반영됐는지, 또 연성헌법처럼 수시로 건강권 개념을 고쳐나가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했으면 하는가?

손 : 솔직히 말하자면, 보건의료쪽에서는 논의보다는 요구가 많았다. 이것도 넣어 달라 저것도 넣어 달라 하는, 대신 건강권에 대한 심층적 고찰이랄지 하는 것은 법학자들의 활약이 컸다.

그래도 이번 정부 개헌안에 기존에 생각해 온 시민의 권리의식 신장이라던지 시민사회단체가 지금까지 해 온 요구들이 반영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에 대한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이것이 사회 정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국민 전반에 옮아갈 수 있도록 하는 담론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헌법 조문을 넘어서 ‘건강 = 인권’ 이라는 개념이, 전 사회적으로 더 확산됐으면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의식의 내재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발전방향을 물었는데, 건강하게 살 ‘권리’로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니까 이제 권리 주체에 대해 생각해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북한병사가 귀순해 치료를 받았고, 그 내용이 전국적으로 방송이 됐다. 그 때 북한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생충이 많을까, 열악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역 건강 불평등 실태를 조사하다가 일부 지역의 건강 지표가 북한의 그것과 비슷하게 나와 충격을 받았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신체적 단점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차별의 대상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건강권의 요구주체에 대해, 권리주체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사실 권리 주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살만한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다. 정말 가난한 사람, 이런 논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회적 약자들, 통일 후 만날 북한 주민들을 같이 살아가는 권리주체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들을 배제하고 있진 않은지 의심이 들었다. 이 역시도 지금 빈곤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그저 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고 동등한 권리주체로서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지, 제도적‧구조적으로 이를 해소할 있는 담론이 있는지, 이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또 건강권을 생각할 때 함께 꼭 기억해야 하는 건 ‘우생학적 관점의 배제’다. 70년 전 발표된 인권선언문에서도 우생학적 사고를 경계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인권’을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건강권’의 달성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건강권이 생각되면 좋겠다.

또 큰 틀에서 건강권이 인권을 이루는 하나의 조항일 뿐 아니라 기본권과 정치‧경제구조를 아우르는 해석을 통해 더 폭 넓게 건강권을 해석해 보면 좋겠다. 치과의료 분야 종사자들도, 우리 치과에서 뭘 하면 건강권을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지는 지난 13일 개헌안에 담긴 건강권의 의의와 한계를 짚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김 :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전 세계적 보건의료 관련 운동에서 구호가 ‘Health is not for sale', 'Health for all'이다. 이건 건강권 운동이 의료상업화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여기서 손정인 선생이 말한 것처럼, 건강이나 보건의료에서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봐야 한다. 보건의료인이 쉽게 주체인 것처럼 보여 질 수 있지만 사실은 시민이여, 건강권은 그들의 권리며, 그들이 주체인 것이다.

성남시에서 하듯이 시민들이 지역의 건강문제와 의료 환경 문제 등 건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양 : 우리나라의 당대 논의 수준은 여기까지 인 것 같다. 개정 후에는 법률제정을 놓고 싸움이 예정(?)돼 있으므로 깊은 수준의 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앞으로 시민사회의 요구를 더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크다.

사회 : 건강권을 인권의 차원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논의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해 보인다. 보건의료가 건강권에 있어 차지하는 위치를 알게 된 만큼 더 치열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건치신문은 앞으로 건강권에 대해 다루면서 주위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겠다.

깊이 있는 좌담회를 만들어 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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