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아르헨티나 '에비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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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아르헨티나 '에비타의 추억'
  • 조남억
  • 승인 2018.09.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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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33]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서른세 번째 회에서는 여행 막바지에 잠시 들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모처럼 휴식과 간만의 한국 음식을 즐기며, 레콜라토 묘지에 잠들어있는 에비타를 보고 추억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4400만 명 아르헨티나의 수도, 1200만 명이 사는 도시다운 고층빌딩은 별로 없지만, 비행기에서 봤을 때 매우 넓다. 남위 34도 정도 되니, 제주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벌써 기온이 32~41도를 넘나든다. 어제는 41도였다는데, 오늘은 33도 정도 되어서 준비 없이 입고 온 긴팔 티셔츠, 긴 바지로 지낼 만 했다.

아침에 날씨가 좋아서 호텔 밖으로 나가서 우수아이아를 대표하는 산을 보며 다시 사진을 찍었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찍은 우수아이아 산 (ⓒ 조남억)

아침 6시에 호텔 로비에 모였다. 어제 밤에 무슨 밤샘 연회가 있었는지, 최 선생님댁은 밤새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였다. 호텔 조식을 못 먹고, 6시 15분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왔다. 비행기 표를 두 장 주었는데, 우수아이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가는 것과 그 다음 이과수로 가는 것까지 주었다. 동일 비행기 표인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 박 스톱오버를 할 수 있는 비행기 표 같았다.

출발 수속을 하고, 기다리는 중에 공항 내 매점이 문을 열었다. 최 과장이 아침식사로 샌드위치를 사주었는데, 역시나 반밖에 못 먹었고, 트레킹할 때 도시락에 있어서 남겨두었던 크런치 과자를 꺼내 먹었다. 조금 늦은 8시 반에 출발하였는데, 한참을 날아서 3시간 만인 11시 반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던지 비행기에서 곧장 자고 일어났더니, 샌드위치를 또 나눠주었다. 커피와 콜라랑 먹고 밀린 일기를 썼더니 3시간이 금방 갔다.

도착하여 처음 간곳은 코리안 타운내의 한국식당인 ‘향가’였다. 여사장님께서 아름답고 친절하다보니 음식 맛도 더 좋았다. 육개장,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 다 먹고 싶던 음식이었다. 나는 240페소인 김치찌개를 시키고 최 과장은 제육볶음을 시켜서 나눠먹으면서 밥을 두 공기씩 먹게 되었다. 김치찌개가 2만원이라고 하면 비싼 것일 텐데, 오늘은 절대로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칠레 산티아고 이후 무척 오랜만에 맛보는 한식이었기에 모두 즐겁게 웃으면서 식사를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리안 타운의 한식당 '향가' (ⓒ 조남억)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니, 밥을 두공기씩 먹게 되었다. (ⓒ 조남억)

오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OCM이라는 세계각료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공항경비도 더 삼엄하고, 중심가 도로도 곳곳이 통제되고 있었다. 그 회의에 참여하려고 온 한국의 단체들도 식당에서 보였다.

한국인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코리안 타운이 강도들의 표적이 되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는데도 철문으로 잠겨있어서,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주어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최 가이드가 아르헨티나에서 쓸 돈을 환전하는 데에도, 주변에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나는 여행객들이나, 다른 여행객들의 블로그를 봐도, 여기 여행 중에 핸드폰, 지갑, 가방을 잃어버리거나, 렌트한 차량 유리를 깨고 가방과 짐을 다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도시를 여행할 때일수록, 더욱 더 여행의 기본을 잘 지키면서 다녀야한다. 

우리가 타고 다니던 관광버스 가이드와 운전사는 우리가 차에서 내릴 때마다 유리창 밖으로 가방이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항상 당부를 했고, 혹시 우리가 깜빡하고 의자 위에 가방을 놓고 나간 경우에는, 운전사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곤 하였다.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간 곳은 공동묘지였다. 레콜레타 묘지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있었다. 

에비타가 잠들어 있다는 곳인데, 생각보다 모든 묘지들이 화려하고 멋있어서 놀랐다. 매년 부담금을 못 내는 집안의 묘지는 이장되고, 대기자에게 넘어 간다는데, 묘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구입비 내고, 장식하고 인테리어하면 6억 이상 돈이 든다고 하고, 매년 관리비로 수백~수천 만원이 든다고 하니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 같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 보면, 그렇게 관리비를 비싸게 받아야만, 나가는 묘가 생겨서 순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국민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에비타는 빼라고 할 수 없으므로 무료로 계속 있다고 했다. 

에바 페론은 페론의 가족묘에 들지 못하고, 이복오빠인 두아르테의 가족묘에 들어가 있었다. 페론이 대통령일 때에는 에바의 인기를 얻고자 영부인으로 맞이했었지만, 죽은 후, 페론의 가족묘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복 오빠의 가족묘로 들어가게 되는 스토리도 그녀의 기구하고 영화같은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평원인 팜파스에서 에바는 1919년 후안 두아르테의 정부인 후아나의 넷째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후아나의 아이들을 법적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에바는 사생아로 살아야했는데, 그녀는 15세에 팜파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출하였다. 삼류 배우로 살던 그녀는 1944년 부통령 페론을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동거에 들어갔다. 그 후 반페론주의자들이 페론을 섬에 구금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에바는 위축되지 않고, 페론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고, 대중은 에바의 외모와 감성적 호소력, 용기에 갈채를 보냈고, 페론을 석방하라고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에바의 인기를 목격한 페론은 석방되자마자 에바와 결혼을 하였고,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영부인이 된 것도 잠시, 34살에 백혈병에 자궁암에 걸려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녀의 죽음 직후 페론은 쿠데타를 당해서 해외로 망명길에 오르고, 쿠데타 정권은 에바의 시신을 몰래 이탈리아로 숨겼다. 대중들의 거센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신은 마드리드에 망명중인 페론에게 되돌아갔다가, 다음 선거에서 페론이 다시 당선되면서, 아르헨티나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페론이 10개월 만에 사망하고, 곧 이은 군부 쿠데타 정권은 에바의 시신을 가족의 묘로 옮기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다른 묘지와는 다르게, 에비타의 묘지 앞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고, 꽃도 많았다. 골목길의 옛 마을 같이 생긴 공동묘지를 구경한 이후 시내구경을 할까 하다가 라보카 지역으로 구경을 갔다. 

레콜레타 묘지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골목길이 있는 마을 같이 보였다. (ⓒ 조남억)
매년 유지비를 못내서 방을 빼야 하는 묘지가 나오면, 대기자가 받아서 들어가는데, 보통 6억이상이 든다고 한다. (ⓒ 조남억)
두아르테 가족묘에 함께 안장되어 있는 에비타. 항상 사람이 많아서 사진찍기가 힘들었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정중앙에 서있는 동상이 바라 보는 곳이 출입구. (ⓒ 조남억)

카지구는 스페인 통치 시절부터 있었던 강 하류의 항구도시였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후 100년간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 6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왔는데, 그들 대부분이 많이 몰려들었던 곳이 이 보카지구였다. 극심한 남자들만의 도시가 되다보니, 여자를 찾아 환심을 끌어야 했고, 200대 1의 비율을 뚫기 위한 남자들의 노력이, 외설스럽게 보이는 탱고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부두근처 여러 가지 원색들로 칠해놓은 가게들, 유명 인기인들의 인형들이 볼 만했고, 보카주니어스의 전용 축구경기장 옆을 지나면서 경기장을 보고, 테베스의 사진을 보니, 시간만 맞으면, 저 축구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함께 신나게 응원을 할 수 있다면, 최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에비타, 마라도나, 요한 바오로 추기경, 카를로스 가르델(탱고 음악을 집대성하고 정리한 음악가) 등 4명이 유명했다. 이 네 명의 인형이 많았었는데, 추기경의 동상을 세워놓고서,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박지성과 함께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고향으로 내려와서 고향 팀을 위해서 뛰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테베스도 현재 매우 인기가 있어 보였다.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 조남억)
라 보카 지역엔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건물들이 유명했다. (ⓒ 조남억)
라보카 지역에서는 마라도나, 에비타, 카를로스 가르델(탱고 음악의 아버지), 요한 바오로 추기경의 인형이 많았다. (ⓒ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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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춤을 추는 댄서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길거리 식당. (ⓒ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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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팀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신 조 선생님과 가이드 최진우 과장 (ⓒ 조남억)
(ⓒ 조남억)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서점으로 뽑힌 엘 아테네오 서점(ⓒ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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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무대로 쓰이던 곳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고, 객석엔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시내로 되돌아와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엘 알테네오로 갔다. 1919년 극장으로 개장을 했었다가 2000년에 서점으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카페로 바뀐 무대와 객석들, 천정에 있는 그림들을 보다보면,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서점은 어디일까 궁금하다. 서점안에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사진찍고 나와서, 오벨리스크, 7월 9일 대로를 지나 scala 호텔로 왔다. 5시 반에 들어와서 잠깐 낮잠을 자고, 8시 반에 다시 모여서 탱고쇼를 보러 갔다. La ventana라고 하는 극장식 식당이었는데, 입구의 무장 경비원을 지나 지하로 들어가서 보니, 멋진 고풍스런 장식이 멋진 식당이었다.

8명에 와인 4병을 받고, 코스로 식사를 주문했다. 야채스프, 송아지 스테이크, 말벡으로 절인 배가 나왔는데, 스테이크와 와인이 잘 어울리고 맛있었다. 10시 즈음 탱고 음악을 먼저 연주하고 춤을 추더니, 2부의 시작은 에바타의 영상과함께 “Don’t cry for me ARH.”노래가 나왔고, 인디오들의 엘콘도르 파사 공연이 있었고, 줄 돌리기 묘기도 이어졌다.

이즈음 되니, 다들 음식을 다 먹고, 와인도 다 마신 상태였는데, 3부의 탱고 쇼는 약간 지루해졌고, 너무 피곤했다. 12시에 공연이 끝난다고 하는데,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11시 20분에 나와서 호텔로 돌아와서 바로 잤다. 

이제 정말로 여행의 막바지 느낌이 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렇게 잠깐 찍고 지나가고, 이과수 폭포 2일, 아마존 3일만 하면 끝이 나는 것 같다.

탱고 공연 극장 겸 식당 입구, 무장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 조남억)
극장 내부에는 앞에서부터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인기를 받고 있는 인물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는데, 에비타가 1번이었고, 체 게바라가 2번이었다. 공연하는 것은 사진을 못 찍게 하여 찍지 못했다. (ⓒ 조남억)
아르헨티나에서는 소고기 값이 저렴하고 질이 좋았다. 고기의 양도 많고, 말벡 와인과 잘 어울렸다. (ⓒ 조남억)
(ⓒ 조남억)
극장 식당 앞에 있던 마네킹. (ⓒ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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