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규제특구법 날치기 통과
상태바
‘우려가 현실로’…규제특구법 날치기 통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9.21 0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일 국회 본회의서 압도적 찬성…범시민사회단체 “남북평화 분위기 이용한 치졸한 작태”맹비난

박근혜 정권도 하지 못한 일을 문재인 정권이 해냈다.

3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의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사이, 국회는 지난 19일과 20일에 걸쳐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이하 규제특구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과 백두산 천지에 오를 때,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아도 괜찮다는 ‘규제특구법’이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간사합의로 제대로 된 법안소위도 거치지 않은 채 오전 11시 40분 통과됐다. 이어 오후 3시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약칭 산자위) 전체회의에 ‘규제특구법’이 올랐다. 결국, 오후 6시부터 시작된 국회 본회의에서 73번째 안건으로 상정돼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규제특구법은 자유한국당이 지난 19대 국회에서부터 발의했던 ‘규제프리존법’과 올해 김경수 경남지사가 의원 시절 발의한 ‘규제특구법’을 병합 심사한 것이다. 이 법은 특정 지역에 한해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 및 서비스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으로, 시·도지사에게 규제자유특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규제자유특구의 승인권한을 갖도록 했다.

문제는 지자체장이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신사업’이라고만 하면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분야라 하더라도 기존의 개별법도 피해 갈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

대표적으로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다는 제42조 ▲특화구역 특화사업을 위해 필요하면 식품 표시기준을 지자체가 별도의 표시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제68조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우선 심사하는 제120조와 제121조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개발실험승인 및 변경 승인은 30일내에 조속히 해야 한다는 제122조 등이다.

지역특구법 법안 원문 캡쳐
지역특구법 법안 원문 캡쳐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8월부터 규제특구법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의 핵심인 ‘지역전략산업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규제프리존)’에서 이름만 바뀐 법안이라며,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9일에는 ‘규제프리지역특화특구법 통과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남북 평화 분위기를 이용해 규제특구법을 날치기 처리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규제프리 지역특화특구법 날치기 규탄 기자회견

남북평화 무드 이용 날치기 처리…“치졸한 작태”
촛불혁명 잊은 文정권에 촛불의 ‘분노’ 보여줄 것

이어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2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제특구법 날치기 처리를 강력 규탄하고 나섰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참으로 비통하다”고 운을 떼면서 “규제특구법은 병원자본이 병원을 사고팔 수 있게 하고, 부대사업을 무제한적으로 펼칠 수 있게 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관련법을 풀어 기업이 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 급격히 친재벌 정책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규탄했다. 박 부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재벌청부입법이라고 비판하고, 자한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 온몸으로 막아내지 않았냐”며 “이제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 기업총수들에게 한가위 선물로 ‘규제특구법’을 주려는 거냐”고 맹비난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사전허용-사후규제를 골자로 한 규제특구법을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며 옹호하는 국회의원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1천 명의 사망자, 수만 명의 피해자가 생기고 나서야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살생물질을 안전성 검증 후에 유통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미 늦었다”며 “안전성은 사전예방원칙을 철저히 지켜질 때만 유효한 것이지, 사전예방원칙을 완전히 없애는 지역특구법으로는 지켜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국장은 “규제특구법도 모자라 각종 개별법으로 혁신성장을 내세워 국민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혁신 의료기기법이란 이름으로 의료기기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하지 않고 환자에게 쓸 수 있게 하고, 첨단재생의료법이란 이름으로 임상시험도 채 끝내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환자에 쓸 수 있도록 하고, 개인정보법을 개정해 건강정보와 같은 민감정보를 기업에 팔 수 있도록 했다”며 “국민안전을 담보로 기업 돈벌이를 하게 해 주는 게 혁신경제인가?”라고 꼬집었다.

(좌) 보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 (우)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

노동자연대 최영준 운영위원은 “2000년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이용해 파업중이던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일이 떠오른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입만 열면 적폐청산을 운운하고선, 적폐세력과 동맹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적폐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을 보니 분노스럽다”고 개탄했다.

또 한국노총 최미영 상임 부위원장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유발할,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보호입법마저 규제로 치부해 없애버릴 규제특구법이 통과됐다”며 “문 대통령이 말하는 번영에는 상생이 없고, 평화에는 더이상 국민 생활 안정이 없다. 평화와 번영은 누굴 위한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이날 참석자들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촛불혁명 배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규제특구법을 폐지하지 않을 시 전면 파업,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을 천명키도 했다.

규제특구법 통과 위해 ‘방호령’도 불사
윤소하 의원, “부끄럽고 허탈하다”

기자회견 후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을 이어갔다. 반면, 국회는 규제특구법 처리에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방호령’을 내려 경찰이 국회를 전면 통제하고, 일반 시민들의 진입도 막았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같은 날 오후 9시 30분경 ‘규제특구법’이 통과된 직후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 민주노총 유재길 부위원장과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규제특구법 통과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과 민주노총 유재길 부위원장이 윤소하 의원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제공 = 무상의료운동본부)

특히 윤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됐던 의료영리화와 규제완화의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유감을 표했다. 그는 “규제특구법은 재벌과 정치권력이 결탁해 사적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법제도를 동원한 구태정치의 전형”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 모금을 재벌에 강요하며 추진한, 뇌물을 통한 거래 대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법이 포장만 바뀌어 전격 통과된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규제특구법은 대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고 보건의료는 물론, 교육, 환경, 농업 등 각 분야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매우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이에 따라 개별법의 규정 모두가 무력화될 처지에 놓였다”며 “의료영역에는 제한을 뒀다고 하지만 이는 사후제한 규정에 불과해, 의료 관련 내용을 포함치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생명과 안전은 불가항력적이기 때문에 사후규제로 담보될 수 없고, 위해를 끼치기 전에 사전에 규제하고 위해가 발생하면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며 “이 법의 통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규제는 의미가 없게 됐으며, 전 지역이 의료공공성 파괴,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농업 말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또 윤 의원은 “이 법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기자회견 후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들 앞에서 심경을 밝히는 윤소하 의원

끝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윤 의원은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농성 중인 국회 정문으로 와 “부끄럽고 허탈하다. 故노회찬 의원이 살아계셨다면 법사위에서라도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심경을 토로하면서 “조만간에 긴급 토론회를 개최할 생각이다. 규제특구법 재개정과 규제프리존법을 막아내기 위한 연대투쟁을 해 나가자”고 독려했다.

규제특구법의 국회 본회의 무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 직후 연좌농성에 놀입한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들
규제특구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를 기다리며 밤 늦게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농성 중인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