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선재의료회 석왕사 제3진료소를 찾아
상태바
[탐방] 선재의료회 석왕사 제3진료소를 찾아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3.10.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인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


●●● 외국인노동자 지킴이
불과 1∼2년 전이었던가? 한 일간지 칼럼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었던 게….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단어가 “때리지 마세요” 였단다.
이젠 고용허가제도 도입되고,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멸시나 인권 침해도 많이 향상되었다지만, 아직도 그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아직 우리에겐 이방인일 뿐인 그들의 인권을 신장시킨다며 고용허가제를 둘러싸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지금, 몇 년째 그들의 건강을 묵묵히 돌봐주고 있는 의료인들이 있다. 바로 한국불교선재마을의료회(회장 김광수, 이하 선재의료회).

●●● 방치된 이방인들의 건강
지난 99년부터 서울 강남의 봉은사와 서울역에서 외국인노동자와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해왔던 선재의료회는 지난 7월 27일 부천시 원미동에 위치한 석왕사에 제3진료소를 개설했다. 석왕사 귀퉁이 꽤 큰 공간에 마련된 치과와 내과, 안과 진료소. 개설한지 얼마 안된 터라 한산했지만, 치과진료소엔 미얀마노동자 2명이 진료를 받고 있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이런저런 몸짓을 해가며 신경치료를 받고 있는 ‘저 윈 마웅’이라는 미얀마노동자. “병원이 너무 비싼데, 이런 곳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란다.
철야까지 해도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는 그들에게 ‘병원비’란 하나의 사치일 뿐일 게다. “왜 의료보험이 안되요”라고 물으니, “당연하죠. 모두 불법 체류잔데…”라며 씩 웃는 김유진 원장(서울 치대 77, 김유진치과).

그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니, 치아 한 두 개 썩은 것쯤은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다. 그래서 “더 해주고 싶어도 기껏해야 발치밖에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그에겐 너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나마 석왕사 치과진료소엔 조립된 유닛체어 3대를 비롯해 웬만한 치과진료는 모두 소화할 수 있게 시설이 갖춰져 있다. 물론 장비 일체를 모두 김유진 원장이 기증한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부천시복지관에서도 부천시 보조로 진료를 하고 있는데, 그 곳에선 맨 의자에서 치료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김원장의 말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 소외된 곳을 찾아서
지금은 많은 의료인들이 가입해 있지만, 초창기 선재의료회의 주축은 서울 치대 불교학생회(이하 치불회)였다. 79년에 결성된 치불회는 처음엔 시흥 남부사회복지관에서 주말마다 무료봉사 활동을, 방학 땐 강원도를 돌며 장기 무의촌 진료를 진행했단다.

“의료진료가 확대되고, 내국인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봉사활동이 확대돼서 활동의 필요성이 사라져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소외된 곳은 항상 있는 법.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나 노숙자들을 보고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선재의료회는 지난 99년 초파일날 봉은사에서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외국인노동자 진료를 해오고 있다. 지금도 봉은사 제1진료소에서는 주말마다 동부시립병원 서대선 과장과 모람들치과 유영재 원장, 국립치과병원 양동선 과장, 우리치과 김광수 원장, 낙원치과 최미숙 원장이 돌아가며 진료를 하고 있다.

“봉은사는 교통편이 편한 장점은 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이 찾아오기엔 너무 먼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찾아가자고 뜻을 모아 물색 중 석왕사에 제3진료소를 만들게 됐죠.”

▲ 선재의료회 석왕사 제3진료소 치과 진료실
현재 석왕사 진료소에는 김유진 원장을 비롯해 인천 한마음치과의 김용성 원장 등 10명이 2명씩 돌아가며 치과진료를 하고 있고, 치불회 학생도 2명씩 돌아가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더 많은 힘이 모아지길…
5년 넘게 진료활동을 벌이고, 제3진료소를 개설하기까지 재정을 비롯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선재의료회 회원들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김유진 원장은 지역이 멀면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는 방식으로라도 활동에 참여하는 등 많은 동문들의 도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단다.

“나중에 홍보가 잘 되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텐데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에, “어떻해요. 우리 힘으로 꾸려나가야죠.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라는 김유진 원장. “형편이 좋아져 보철까지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램처럼, 더 많은 치과의사들의 참여와 지원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