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는 정말 멋진 연대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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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는 정말 멋진 연대 파트너였다”
  • 이인문 기자
  • 승인 2019.04.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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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건치는] 인구보건복지협회 조경애 사무총장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인구보건복지협회 조경애 사무총장은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산증인’이다. 1995년 ‘의료보험통합일원화 및 보험적용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이하 의보연대회의)’ 간사로 시작해 1999년 ‘건강권 보장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이하 건강연대)’ 사무국장과 2003년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넷) 공동대표로 활동해오면서 의료보험통합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출범, 의약분업, 백혈병 환자들의 글리벡 투쟁, 의료영리화 반대 및 의료공공성 강화,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 등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굴곡과 함께해왔다.

“노동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1993년 위암 판정을 받았어요. 다행히 위암초기라 수술 후 회복은 됐지만 그 몸 상태로 다시 노동운동을 하는 건 힘들다고 판단했지요. 암환자로 오래 있다보니 국민들의 건강권 보장도 노동운동 못지 않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1981년 서울대 가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1986년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1987년 6월 항쟁 후 석방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투신했지만 1993년 수배 중 발견된 위암이 그의 삶을 보건의료운동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인의협 사무실에 달랑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어요.” 노동, 농민, 시민, 보건의료인 등 77개 단체와 6개 지역연대회의를 포괄하는 대규모 연대조직체였지만 의료연대회의의 첫 출발은 그렇게 '단촐'했다. 이후 수많은 회의와 명동성당에서의 농성 등 투쟁을 통해 지역의보와 직장의보의 통합을 이끌어냈다.

의료연대회의를 이어받은 건강연대를 통해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건강권 쟁취를 위한 싸움을 시작 ‘의약분업’을 이끌어냈고, 의약분업 이후 생겨난 환자 단체들과 함께 ‘글리벡 투쟁’을 이어가 약가 인하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성공하는 투쟁 사례를 만들어냈다. ‘글리벡 투쟁’은 2003년 최초의 보건의료 시민운동 단체인 ‘건세넷’이 출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건세넷은 당시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된 ‘의료영리화’에 반대하는 연대체의 간사단체 역할을 했다.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처음 제안한 것도 그가 공동대표로 있던 건세넷이었다. 이후 무상의료운동은 무상의료운동본부라는 조직체의 결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그 실행과정까지
제 역할을 다하는 건치 “너무 멋졌다”

“건치를 처음 만난 건 의보연대회의 간사로 일할 때였어요.”

조경애 사무총장은 건치를 비롯해 인의협, 건약, 청한 등의 보건의료인들을 그 때 처음 접했다고 한다.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해 직접 제안을 하고,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법이 제정되고 난 이후의 실행과정에서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건치를 비롯한 인의협과 건약, 청한 등의 보건의료인들이 그에게는 “너무 멋졌고, 모두가 멋진 연대 파트너였다”고 강조했다.

“건치 등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무엇 하나 이루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보건의료분야에는 ‘완전 초보’였던 그가 의보연대회의와 건강연대, 건세넷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와 관련된 일을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모두가 그 덕분이라고 했다.

2011년까지 건세넷 공동대표로 활동한 그는 2012년부터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을 도와 서울시 정책위원과 자문위원, 공공의료재단 이사 등등의 직함으로 ‘주민참여 건강증진사업’ 등을 벌여오다 지난해 2월부터 인구보건복지협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1961년 대한가족계획협회로 출범했던 단체인데 와보니 저출산에 대응하면서 임신‧출산‧육아 등 여성과 아동의 건강증진을 지원하는 단체더군요.”

그는 여전히 그가 집중해야 할 일이 ‘보건의료’인 것 같다고 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산하의 13개 가족보건의원을 모자보건사업의 ‘확고한’ 공공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지난해 6월 말레이사아에서 열린 국제가족계획연맹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무총장 회의서 만난 북한 단체와 모자보건과 관련된 남북교류사업을 추진하는 것 등이 지금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김용진 선생이 가장 기억에 남아”

30대 젊음으로 만나 밤샘 토론 등의 열정으로 함께해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조 사무총장이 기억하는 건치 회원들은 참으로 많았다.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과 관련해 미국 현지 시찰을 함께했던 김광수 전 공동대표, 서울시 동부시립병원 민간위탁반대운동을 함께 했던 서대선 전 공동대표,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치과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건치신문 김철신 편집국장과 건치 정책연구회 정세환 교수 등등. 그 중에서도 조 사무총장은 자신과 가장 일을 많이 했던 김용진 전 공동대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꼽았다.

“건세넷 공동대표를 그만 둘 때 후임 공동대표를 맡아준 것도 김용진 선생이었고, 서울시 아동치과주치의제도 등 김용진 선생이랑 오래 함께 활동했죠. 무엇보다 성남시에서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도 만들었잖아요.”

자신이 공동대표로 활동해온 건세넷에서도 만들어내지 못한 지부와 지역조직을 건치 김용진 전 공동대표가 성남에서 만들어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그는 칭찬했다.

“앞으로도 건치가 ‘치료보다 예방’이라는 의료 공공성의 가치와 함께 '치과보험 보장성 확대'를 꾸준히 추진하고 실현해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언제 무엇을 부탁해도 들어줄 것만 같은 믿음직한 동지, 건치를 믿는다”고 조경애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건치신문도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한 ‘보건의료운동’의 정론지로서의 역할에 더욱 매진해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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