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센, 약자와 연대한 뜨거운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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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센, 약자와 연대한 뜨거운 양심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6.07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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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인터뷰] 『야마센 홀로 지키다(건강미디어협동조합)』…역자 황자혜

조선 독립운동 대탄압의 근거가 됐던 「치안유지법」의 개악을 반대한 유일한 일본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 1889~1929). 주로 ‘야마센’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의 원조라고도 불리는 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은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혼란을 막기 위해 공포된 긴급 칙령을 기본으로 1925년 성립된 이래, 1928년 개악을 거치면서 위반자에 대해 최고 사형을 언도할 수 있었다. ‘국체(천황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활동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이 법은, 일본 내에서는 공산주의운동 억압 목적으로. 조선 등 당시 식민지에서는 일제 식민통치체제 유지를 위한 사실상 ‘사상통제법’으로 모든 독립운동 처벌 근거로 사용 됐다.

지난 5월 28일 야마센 탄생 130주년, 서거 90주년 그리고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야마센 홀로 지키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원제 : 민중과 함께 걸은 야마모토센지)』가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본지는 이 책의 역자인 황자혜 씨를 만나 야마센과 그의 삶에 관해 들었다.

- 편집자

황자혜 씨는 한‧일 통역사로, 본지에도 소개된 바 있으며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등 보건의료단체와의 가교역할을 맡았다.

그가 『야마센 홀로 지키다』를 번역하게 된 계기도 바로 민의련과 관계가 있다. 황 씨는 “민의련과 한국의 녹색병원, 인의협, 건치 등 보건의료단체들이 교류할 때면 어김없이 야마센이 등장했다”면서 “통역에 몰두하다보니, 그 이름은 알지만 정작 야마센이 누군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통역 일을 한지 20년이 된 시점에서 운명처럼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야마센’은 차별 없는 평등의료를 지향하는 민의련의 ‘뿌리’라고 일컬어진다. 생물학자면서 정치인인 그가 ‘의료기관연합회’인 민의련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야마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황 씨는 야마센을 “아시아태평양전쟁 전 천황이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군대 지휘권까지 쥐고 일본을 지배하던 시대에 전쟁반대와 주권재민을 주장하며 서민과 함께 싸운 사람”이라고 봤다.

1989년 5월 28일 교토에서 태어난 야마센은 장사수완이 뛰어난 부모님 아래서 유복한 생활을 했지만 병약한 탓에 거의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청소년 시기엔 ‘꽃을 심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어’ 원예 견습을 택했고, 18세에 캐나다로 건너가 갖가지 노동과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가정을 꾸리고 28세에 도쿄제국대학 동물학과에 입학, 31세에 졸업했다. 이후 교토 도시샤 대학 예과 강사로 ‘자연과학 개론’을 가르치는 한편,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및 이학부에서도 강사로 활약했다.

야마센은 강단에서 스스럼없이 성(性)에 대해 강연하는 한편, 당시 일제가 값싼 노동력과 군사력 확보를 위해 ‘낳자, 늘리자’라며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산으로 더욱 빈곤해지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소작농과 노동자, 그의 아내들에게 구체적인 피임법을 가르치는 ‘산아제한’ 운동을 펼쳤다.

야마모토 센지

당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만들어 준 ‘우생학’이 대세였음에도, 그 길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우생학을 경계하며 ‘산아제한 운동’을 추진한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천황‘제국’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야마센은 도시샤 대학과 교토 제국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야마센이 교토 제국대학 강사를 하던 1920년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운동이 고조되던 때였다. 도쿄 우에노에서 첫 메이데이 기념행사가 열리고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 동맹 파업과 농민 소작쟁의 등 정치적 요구가 거세졌다. 민중들의 정치적 각성을 꺼린 권력은 1925년 (남자)보통선거법이라는 당근과 함께 「치안유지법」이란 채찍으로 탄압에 나선다.

산아제한 운동, 노동학교 등으로 대중의 지지를 쌓은 야마센은 1927년 12월 노동농민당 교토지역 집행위원장을 거쳐 1928년 제1회 보통선거에서 교토제2구 노동농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그 해 3월 15일, 공산당원 검거를 목적으로 행해진 일제의 대규모 검거조치인 이른바 ‘3‧15 사건’이 발생한다. 여기에 치안유지법이 처음 적용됐다.

황자혜 씨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서슬 푸른 국가보안법이 떠올라 번역하는 내내 몸이 후들거렸다”면서 “형무소에 갇힌 민주 운동가들이 고문, 기아, 질병으로 죽어갈 때 국회의원 야마센은 희생자의 인권 침해 실상을 제국의회에서 낱낱이 추궁하고 그 가족에 대한 지원활동에 진력을 쏟는 한편, 의사인 마지마 유타카의 호소로 조직되는 ‘해방운동희생자국민구원회’ 창립대회 임원 중 한 명으로 야마센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그러던 야마센은 1929년 3월 5일 「치안유지법」 개악안에 대한 국회 발언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자결권고서를 내미는 우익단원의 칼에 목과 심장을 찔려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이 새로운 길이 되다…

야마센의 유해는 그가 죽고 열흘이 지난 3월 15일 가족이 있는 교토 우지시로 옮겨져 장례를 치르게 됐다. 그 날 밤 야마센의 추도식에 참석했던 그를 따랐던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틈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병원을 만들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관련 호소문은 잡지 『전기(戦旗)』에 게재되는데, 그 기안자가 바로 민의련의 전신인 ‘무산자진료소’의 초대 소장인 의사 오구리 키요미다.

황자혜 씨는 “무산자진료소는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의료종사자 집단이 탄압으로 건강을 해친 투사와 가난한 민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의료기관이었지만, 정부의 탄압으로 차례차례 폐쇄됐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하면서 무산자진료소를 만들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1946년 5월 1일 도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 ‘민주진료소’를 건립하는데, 당시 극단적 ‘무권리’ 상태에 놓인 재일조선인과 협력해 설립된 민주진료소도 있다”면서 “이는 1953년 6월 7일 마침내 민의련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노동자, 농민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으로 시작한 무산자 진료소, 민의련은 이제 전국 1700여 개 사업소, 360만 공동조직 회원을 갖춘 의료기관연합회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87‘항쟁으로 한국 보건의료 주체들의 조직화되고 운동성이 발휘됐던 것처럼, ’민중에 의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날 때 절실한 의료와 건강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조직화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야마센 묘지석 탁본

‘민의련’의 탄생의 분수령이 됐던 야마센의 죽음을 되짚으며, 황 씨는 지역치과의원 운동인 ‘푸른치과’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평소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서 정치를 한 야마센과 치안유지법 희생자 구원에 나선 의사의 만남, 야마센의 죽음 앞에서 울분을 넘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병원을 만들라’ 외치는 사람들, 야마센의 데스마스크의 본을 뜨는 치과의사의 모습이, 구로의 푸른치과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 치과진료소를 하는 건치 선생님들의 모습과 오버랩됐다”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고, 야마센의 유지를 좇아 노동자와 농민의 병원을 만들기 위해 그 탄압의 시대에 진료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지금의 보건의료 활동이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위트 있게 ‘깡충’ 검열을 뛰어넘어…

황자혜 씨는 번역을 하면서 야마센의 일화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자 “야마센도 통‧번역을 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면서, 과학자로서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고.

그는 “세계적인 산아제한 운동가인 미국의 마가렛 생어 여사가 1922년 영국에서 열리는 만국 산하제한 회의를 가던 중 일본을 경유하게 되는데, 당시 출산을 강요하던 일제는 생어 여사의 방문에 긴장하게 된다. 일제가 일본 전토에 연설금지령을 내리는 중에도 기어코 강연회를 성립시키기 위해 '의학전문가 대상'으로 허가를 따내고, 교토의사회가 주최한 그 강연회에서 야마센이 통역을 맡는다"며 “내무성이 압수한 가족제한법 팸플릿을 ‘생어 여사 가족제한법 비판’이란 제목을 달고, ‘극비’. ‘전문가 이외 배포 불허’로 표기해 검열을 피해 번역 출간에도 성공한다”고 밝혔다.

또 야마센은 독일 게오르그 니콜라이의 『전쟁생물학』을 『전쟁생물학비판』으로 번역‧출간을 추진하던 1922년, 그 해 12월 상대성 원리 강연을 위해 교토를 방문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호텔로 찾아가 서문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황 씨는 “당국의 검열을 피해 압수당하지 않도록 궁리하고, 발행에 성공하는 모습과 필요한 이들에게 과학적 이론이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에서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그러나 필요한 일을 해내고야 하는 그의 생생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차별없는‧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모든 야마센들에게…

야마센에 관한 책은 많다. 『야마모토 센지 전집』, 소설 『야마센』, 만화 『야마센』 등 다양하다. 그러나 국내에 번역된 서적은 단 한 권도 없다. 이번에 발간된  『야마센 홀로 지키다』가 처음이다. 특별히 이 책을 선택해 번역한 이유가 궁금했다.

황 씨는 “야마센의 생애를 가장 간결하고 쉽게 전하고 있는 게 우지야마센회의 『민중과 함께 걸은 야마모토 센지』라고 생각했다. 첫 선을 보이는 것인 만큼 적합하다 싶었고,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면서 “특히 한일 교류를 위한 사전학습에 좋은 지침서였으면 했다”고 밝혔다.

『야마센 홀로 지키다』는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1부 야마센 홀로 보루를 지키다 ▲2부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다 ▲3부 등 뒤에서 지지하는 대중이 있으므로 등이다.

그는 “각 부의 제목은 야마센 최후의 연설문에서 따온 묘비문을 이용해 지었다. 각 부의 제목을 이어 읽으면 그게 묘비문 전체다.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천황제 하에서 ‘감히’ 주권재민을 주장하고, 치안유지법 개악에 ‘홀로’ 반대한 야마센의 삶을 잘 보여주는 거 같아 원제 대신 ‘야마센 홀로 지키다’를 제목으로 뽑아 출간했다”며 “1부는 원서 본문을 번역한 것이고, 2부는 일본 정당인과 역사학자, 민의련 회장, 도쿄 야마센회회장의 추천문, 2019년 3월 5일자 야마센 탄생 130년, 서거 90년 기념 교토 신문 특집기사를 실었다”고 설명했다.

황자혜 씨

특히 황 씨는 건강미디어협동조합과 이 책을 기획하면서 90년 전 사람 야마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3부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3부에는 ▲2014년에 올해의 예술가상을 받은 노순택 사진작가 ▲전국역사교사모임의 박중현 선생 ▲정의당 이정미 대표 ▲인의협 인권위원장 최규진 교수 ▲국가보안법 희생자인 『야생초 편지』 저자 황대권 씨의 추천문으로 구성됐다.

이어 그는 “한국의 시민과 청소년, 정당 운동가, 보건의료 관계자 등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일본에는 아베와 같이 역사 왜곡을 하는 정치인과 혐한시위만 있는 게 아니라, 전쟁 준비로 미쳐가는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죽음으로 몰아갈 치안유지법 개악에 홀로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 씨는 “2000년 일본의 역사왜곡에 반대하며, 역사 교육에서 대립적 가치가 아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공통의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역사교사 교류모임이 생겼다”면서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의 ‘한일교류위원회’가 그것인데, 이분들의 통역을 하면서 ‘인물을 통한 보편적 가치의 공유’의 중요성을 배웠고, 이 책이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가 되면 기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하나의 꿈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처럼, 교토 우지 강변 야마센의 연고지인 ‘하나야시키’와 야마센의 묘비, 그 근처 윤동주 시비, 그리고 지난 3월 17일 도쿄야스쿠니 신사 근처 진보쵸에 세워진 야마센 종언지 기념 팻말까지 이 책을 들고 많은 분들이 방문해 줬으면 한다”며 “그 길에 오르는 분들과 동행해 또한 행복하게 통역하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황 씨는 “이 책을 통해 야마센의 시대와 야마센의 유지를 따르는 지금의 민의련, 민의련과 교류하는 한국의 보건의료계 사람들, 나아가 모든 한일 풀뿌리 시민교류의 주체들, 한일 야마센들이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의지가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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