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장관 반성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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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장관 반성문 유감
  • 편집국
  • 승인 200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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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의료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인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신영전 교수가 한겨레신문 10월 16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내용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장관이 공개적인 반성문을 썼다. 의료급여정책 때문이다. 파격적이다.

그 내용, 문장 그리고 형식도 세련됐다. 역시 일상복 차림으로 국회에 등원했던 그답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파격과 세련됨이 좋다. 그러나 좋은 것은 거기까지다.

추석연휴를 이용해 자택에 머무르며 직접 작성했다는 15쪽짜리 보고서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스스로 ‘국민 앞에 제출하는 공개적 반성문’이라 칭했음에도 반성문으로는 낙제감이다. 무엇보다 반성문에 있어야 할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것이 진정 반성문이었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의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300만명의 차상위 빈곤층과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급여일수가 일년에 365일을 넘어선 38만5천명과 일년에 파스를 5천개 넘게 사용한 22명말고, 틀니 할 돈이 없어 밥도 못 먹고, 각종 본인 부담금과 불법 보증금 요구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며, 설사 병원에 가더라도 문전박대를 당하기가 일쑤인 나머지 140만명의 고통에 대해 한 나라 건강안전망의 주무장관으로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대책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처방과 고민 어디에도 이들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유 장관이 사과한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가?

구체적인 수치들까지 꼼꼼히 제시하며 세련된 문장으로 쓴 반성문은 작금의 재정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넘어가 보려는 안간힘이 엿보이고, 가끔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비수는 결국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고, 그 칼날은 어김없이 가난한 이들을 향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면 유 장관의 반성문을 인용한 보수언론들의 기사들을 보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가난한 이들은 또 한 번 공짜에 눈이 먼 사악한 범죄자가 되고, 이 반성문은 어김없이 그 ‘마녀사냥’의 불쏘시개가 되어 타오르고 있다.

의료보장제도에는 당연히 ‘도덕적 해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선 그래서 의료보장을 하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때문에 못하겠다면 그것은 의료보장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학 전문가가 새삼스레 도덕적 해이를 외치니 더 얄궂다.

어떤 사례가 좋은 기사거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 장관이겠지만 그의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낯 뜨거울 정도로 선정적이다. 좋다. 이 사례만이라도 놓고 보자.

이 사례는 정부 관계자가 컴퓨터의 엔터키를 한 두 번만 클릭했어도 금방 파악하여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현재의 정보체계 아래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동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반성은 책임이 전제될 때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받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반성문이 되려면 유 장관은 본인의 자리를 걸고라도 의료급여제도를 견고한 건강안전망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책임 있는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도전적 질문’이라는 현란한 정치적 수사로 슬그머니 마무리하고 있다. 이쯤에서 유 장관의 반성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잘못은 한 것 같은데, 사실은 나쁜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고, 앞으로 무엇을 꼭 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는 어렵다.”

유 장관이 말한 대로 이것이 ‘국민 앞에 제출하는 공개적 반성문’이고, 그 ‘국민’에 내가 들어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반성문, 다시 써오게나.”

신영전(의료연대회의 정책위원장,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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