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연대납부 의무 폐지는 시대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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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연대납부 의무 폐지는 시대과제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10.3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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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에도 도덕해이‧형평성 문제로 복지부 ‘불수용’…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어긋나는 일

“당사국은 도달 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을 향유하고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위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당사국은 건강관리지원의 이용에 관한 아동의 권리가 박탈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동의 건강할 권리 및 의료서비스 이용 등 기본권을 명시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24조1항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1924년 아동 권리에 관한 제나바 선언, 1948년 세계인권선언, 1959년 유엔 총회의 아동권리 선언 1966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서는 명시적으로 일관되게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해 출생 전후를 막론하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한다’고 돼 있다.

왜냐하면 아동‧청소년기의 건강은 성인기 건강에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건강권 보장은 그 어떤 인권 영역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0년 9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 1991년 11월 비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까지 유엔에 5‧6차 정부보고서를 제출, 진행상황을 심의하고 최종 권고사항을 받아왔다.

이번 최종 견해에서는 8개 권리 영역 중에서 ▲비차별 ▲생명‧생존‧발달권 ▲아동에 대한 폭력 ▲성적 학대 ▲교육 ▲소년사법 등의 영역에 시급하게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키도 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연구용역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중심으로 한 아동‧청소년 인권 모니터링’ 연구를 진행, 지난해 9월 그 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유엔 아동인권협약 내용에 맞춰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건강권 보장 현황과 문제점, 개선사항을 짚는 한편, 건강보험료 연대납부의무 제도를 아동‧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인 건강권을 침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라고 지목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이 보고서에서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 도입 초기부터 아동‧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고려 없이 시작돼 직장‧지역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이들에게만 건강보장이 적용됐다. 때문에 일부 아동‧청소년이 사각지대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7년 4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최저보험료’ 제도 도입을 통해 재산이 없거나 부모가 모두 사망한 미성년자에게 보험료 납부 의무 면제 등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이어 2018년 7월부터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인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 보험료를 삭제하고 지역가입자는 보험료 하한선을 월 1만3,100원으로 낮추는 등 부과체계 개선안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개정으로 대부분의 문제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아동‧청소년의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국민건강보험법 제77조2항에서 지역가입자 미성년자에게 연대납부의무를 부담토록 규정해 놓았고, 납부 의무 면제 소득기준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소득 100만 원으로 돼 있어 미성년자의 건강보험료 납부의무에 관한 독소조항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의료급여 대상자 혹은 차상위 계층 건강보험 지원 대상자로 편입돼 의료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어도, 부모의 건강보험료 납부 의무를 물려받아야 한다”면서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이용 제한뿐 아니라, 연대납부 책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지난 2017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립, 부모의 사망, 이혼 등 가족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25세 미만 미성년 및 청년층 규모는 약4만7천명에 이르고, 연대 납부 의무로 인해 세대주의 납부 책임이 자녀에게 이전됐기 때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낸 최근 5년간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결손처분 사유별 현황을 살펴보면, 미성년자라는 사유로 보험료 결손처분이 된 수는 309,823건, 62억9천4백만 원에 이른다. 특히 관련법이 개정된 2017년 한 해에만 287,591건, 51억4천6백만 원이 미성년이란 이유로 결손처분 됐다.

이에 인권위 보고서에서는 “법 개정에 따라 그간 누적됐던 미성년자 연대납부 의무자를 결손처분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이 수치를 단순 계산하면 미성년자 연대납부 의무자 체납액수는 건당 20,315원에 불과해, 체납액 규모가 미미하고 건보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체납 독촉에 드는 행정적 부담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보고서에서는 “2017년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결손처분 가액이 2억1천7백만 원이고, 미성년이란 이유로 결손처분한 가액이 51억4천6백만 원으로 경제 빈곤에 해당치 않는 미성년자의 구제조치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 입법조치의 효과는 미미하고 집행상 공정함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더욱이 결손 처분 신청 권리가 있는지도 의문인 법령에서 미성년자의 보건권 보장을 위한 입법은 매우 부족하고, 결손처분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는 주요한 개인정보로써 거의 모든 국가기관에 자료로 제공할 대상임을 조항으로 명시해 놓아 불이익을 받을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납부의무 폐지 나아가 아동무상의료 실현까지

이 보고서에서는 불과 몇 년 전 세월호 참사로 부모를 잃은 7세와 9세 아동에게 소득은 없으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건보료를 부과해 문제가 된 사례,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거주하던 미성년자에게 아버지가 체납한 건보료 독촉고지서 발부, 아동학대에 시달리다 보호시설에 들어간 8세 피해자에게 부모가 체납한 보험료 납부 독촉 고지서를 수십차례 보낸 사례 등을 언급했다.

보고서에서는 “가족구조의 변동 내지는 부모나 양육자의 이혼이나 사망, 학대 등으로 인한 가족해체로 인해 건보료 연대체납, 이에 대한 당국의 기계적 독촉으로 인해 경제적‧심적 고통과 외부적 압력을 겪는 사례는 이제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도 “여전히 인권침해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봤다.

또 다른 사례로 과거 가족의 미납보험료에 대한 납부의무로 인해 한동안 의료서비스를 못받다가 성년이 된 후 직장보험에 가입해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에도 몇 년치의 체납액을 한꺼번에 독촉해 갓 성년이 돼 경제활동을 시작한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보고서에서는 “가정의 해체나 학대 등으로 가장 취약한 조건에 처하게 된 미성년자에게 일정한 소득이 있다고 해서 연대 납부 부과 의무를 지우는 것은 과도한 짐”이라며 “우리 법제가 미성년과 성년을 구분하고 미성년 보호 법령을 따로 두고 있는 것은 그의 재산이나 소득 여부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성숙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을 스스로 영위해나갈 수 있는 사회적 독립성 등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지위를 고려해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에서는 미성년자에 대한 건보료 연대납부 의무 부과가 ▲헌법상 의무인 청소년 보호 의무를 위반 ▲직장가입자와의 차별 등을 이유로 특별 보호대상인 미성년자에게 보호규정이 아닌 의무규정을 둔 법률조항은 입법적으로 삭제돼야 마땅하다고 피력했다.

아동‧청소년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연대납부 의무 자체를 없앨 것과 나아가 세대주 중심의 가부장적인 건강보험제도의 개편을 과제로 제시했다.

아울러 보고서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면서 미성년자에 대한 연대납부 의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부모의 보험료 납부에 따라 배제아동이 발생하기는 하나, 미성년자에게 연대납부 의무를 부과한 사례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각 국마다 서비스 제공 내용과 범위는 다르지만 아동에 대한 무상의료가 실시되고 있으며 사회보험제도를 택한 나라라도 미성년자는 연대납부 의무에서 제외된다는 것.

인권위 보고서에서는 “건보료에 있어서도 미성년자에게는 보험료와 보험급여 사이의 개별적 등가성 원칙에 수정을 가하는 사회연대 원칙을 강화해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미성년자 보호방안과 관련된 법에서 국민건강보험과 연계된 것은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미성년자가 처한 위험은 계속될 수박에 없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소득‧생활수준, 경제활동 참가 등과 상관없이 건보료 납부 의무를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대부과방식으로 인한 가입자 조건이 직장과 지역으로 다르고, 이에 따른 부담 형평성의 문제를 해소를 위해 개별가입방식으로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아동에 대한 전면적 무상의료를 시행해 사각지대 발생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의 도덕적 해이 방지 위해 사각지대는 방치?

한편, 인권위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올 3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미성년자 건강보험료 납부의무 폐지’를 권고했으나 복지부는 이에 대해 ‘불수용’의사를 밝혔다.

이유인 즉 일부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 방지와 여타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라고. 건보공단도 이와 마찬가지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복지부는 “재산 및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연 100만 원 이하인 미성년자는 예외적으로 보험료 납부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지역가입자의 97%가 납부의무 면제를 받고 있다”면서 “모든 미성년자 지역가입자에 대한 연대납부의무 면제는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밝혀 아동 건강권 증진을 위한 논의는 당분간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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