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돈 놓고 돈 먹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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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돈 놓고 돈 먹는 '슬픈 현실'
  • 박준영
  • 승인 2019.12.1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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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열 네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블랙머니』를 만들고 있을 때만 해도 ‘검찰개혁’ 이슈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떠들썩하게 만드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양민혁 검사(조진웅)의 “검사가 니 편 내 편이 어딨어? 죄 있으면 잡아넣는 거지!”라는 일갈이 홍보 포스터에 카피로 선명하게 박힌 것을 보고 '기가 막히게 시의적절하구나, 따로 마케팅이 필요없겠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양민혁 같은 검사 열 명만 있으면 지금의 검찰개혁이 순조로울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비록 좌충우돌은 있지만 좌고우면 하지 않고 권력의 중심을 향해 황소처럼 덤비는 주인공 검사가 바로 영화 『블랙머니』의 주인공 양민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로 사회를 개혁할 수 있을까? 뒤늦게 영화를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할 즈음 들었던 의문이다. 이후 이른바 사회파 영화들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지만 그 답은 지금도 모호하다.

그래도 상업영화, 주류영화의 홍수 속에 현실의 아픔과 상처를, 혹은 잊혀진 역사의 한 장면을 당대에 끌어내 꿋꿋이 메인 배급사를 통해 스크린에 올리는 정지영 감독을 보면서 '영화가 전부를 엎어 버릴순 없겠지만 현실의 부조리 한 톨 만큼은 바꿀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정 감독은 한국 영화판의 최고령 현역일 것이다.(올해로 73세) 『남영동 1985』, 『부러진 화살』 등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작가주의 감독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가 이번에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금융범죄 실화를 소재로 영화 『블랙머니』를 내걸고 『겨울왕국2』와 혈전 중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서울지검 검사 양민혁(조진웅)은 일명 '막프로’로 불릴 정도로 좋은 말로 혈기방장, 아니면 똘아이 검사로 주위에 명성이 자자하다. 양검사는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갑자기 자살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하게 되고 그 사연을 파헤쳐보니 뭔가 엄청난 내막이 숨겨져 있음을 간파한다.

외국계 투자회사와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재무부 출신들을 일컫는 말)가 합작해 자산가치 70조 시중은행을 혼란스런 금융위기를 틈타 헐값 1조 7천억원에 사들여 되판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조사를 진행해 보니 기가막힌 것은 한 둘이 아니었지만 은행 헐 값의 근거(시세차이 약 60조원)가 단지 팩스로 보낸 5장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서류에는 은행 BIS 비율이 갑자기 뚝 떨어진 걸로 기재돼 있어 헐값 매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거 냄새가 나도 너무 났다.

자살로 위장된 피의자가 이 사건에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증인임이 밝혀지고, 난마처럼 얽혀 있는 거대금융사기단의 음모와 비리를 양검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오직 직진만을 외치는 조진웅의 물오른 연기와 이제는 대세 배우가 돼 슈퍼 엘리트 변호사를 맡은 이하늬(김나리 변호사)가 은근한 합을 이룬다.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는 잘 알려진 실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주범인 론스타의 ‘먹튀사건’을 소재로 해 만들었다. 론스타는 정부의 매각지연으로 큰 손해를 봤다며 한국정부에 소송을 걸었고 지금도 소송 중에 있다. 만약 한국정부가 진다면 약 5조원을 추가로 물어줘야 할 판이다.

정말 영화 같은 황당한 일이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복잡한 금융지식 따윈 필요없다. 노련한 정지영 감독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사건을 파면 팔수록 재미있었다는 감독의 열정이 잊혀질뻔한 황당무계한 금융사기극을 다시금 우리 앞에 소환해 놓았다.

기실 출처분명의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우리의 국책은행 인수를 승인한 한국의 감독기관이 더 문제이며 ‘우리도 속았다’고 항변하지만 '과연 모피아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은 지금까지 강하게 남는다.

영화 『블랙머니』는 그래서 정당한 분노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국제 투기꾼들 손에 쥐어준 어마어마한 현금은 바로 국민 혈세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길어야 십년이지만 재벌은 평생 아니 몇 대에 걸쳐 기득권을 누리는 금융자본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천문학적인 돈을 떡 주무르듯 하며 모럴해저드에 빠진 금융자본가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밝힐 것은 아무리 늦어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 보일 것을 영화는 우리들에게 과제로 안겨준다.

다만 『겨울왕국2』에 밀려 극장들이 스크린에서 『블랙머니』를 속속 내리고 있어 관람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영화 시장도 돈 놓고 돈 먹기 아니겠는가? 슬픈 현실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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