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김재규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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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김재규의 재발견?
  • 박준영
  • 승인 2020.02.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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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열 여섯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과거의 어두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남산은 서울의 명소이기도 하지만, 1960-1070년대 박정희정권 18년간 대한민국 삼권을 쥐고 흔들었던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원작은 1990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기사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기사의 제목도 『남산의 부장들』이었다. 2년 2개월간 연재됐던 내용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히는 10.26사건을 현장 채록 같은 대사와 사실적 재현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하게 엮어냈다.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권력의 핵심이며 대통령을 지켜야 할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이병헌)이 대통령(박정희/이성민)을 살해한다. 이 기막힌 현대사의 비극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 소재는 이전에 영화로 제작 개봉된 적이 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10.26 대통령 시해사건’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냈다.

영화 『내부자』를 만들었던 우민호 감독은 이번에는 철저히 사실을 바탕에 둔 다큐적 연출 형식으로 당시의 참극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대통령이 죽기 4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박통과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경호실장(이희준)이 서로 얽히면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를 중심으로 26일 밤 그날의 현장으로 직진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처음에는 충성 경쟁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권력소외에 따른 모멸감에 몸서리 치다가 결국 최고 권력을 거세하고 그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김규평(김재규)의 심리에 관객들의 감정이입 주파수를 맞춘다. 감독은 등장 배우들과 실제 인물의 싱크로율을 최근접으로 높혔다. 배우 이성민은 박정희와 비슷한 외모를 보여주기 위해 귀를 닮게 분장했고 남산의 실력자로 나오는 김규평과 박용각(곽도원)은 실제 김재규와 김형욱 특유의 캐릭터를 연기에 잘 녹여냈다.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당시 호가호위했던 차지철의 역을 곽상천(이희준)이 맡았는데 체중을 무려 25Kg 증량했다고 한다. 당시 권력자들의 면면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상당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이병헌의 모습에서 김재규의 외모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지만 이병헌의 연기는 가히 명불허전이라 해도 토 달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는 10.26 당시 김재규가 박정희를 왜 쏠 수밖에 없었나를 주된 화두로 삼았다. 1979년의 대한민국은 폭풍 속의 전야와 같았다. 1961년 5.16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제3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권력 친위대로서 중앙정보부를 탄생시킨다. 초대 중정부장은 김종필이었다. 이후 경제개발과 함께 나름의 자신감을 갖게된 박통은 1972년, 해서는 안될 헌법 쿠데타를 자행한다. 초법적 독재권력을 지탱하기 위해선 ‘유신’이라는 괴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이후 육영수 여사를 비통하게 잃고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박통은 궁정동의 안가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거기선 헛헛한 대통령의 맘을 달래주기 위해 매일 여흥과 술자리가 마련됐고 그 곁엔 좋은 말만 하는 간신이 당시만 해도 최고 양주였던 '시바스 리걸'을 열심히 따라 올렸다. 부산과 마산의 시위는 격화됐지만 차지철 경호실장은 탱크로 백만, 이백만 정도는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 결국 10월 26일 밤 터질게 터졌다.

영화는 김충식 기자의 기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 날 밤 궁정동 만찬의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하나 모두 논픽션 기사 내용에 따랐다. “대통령도 (제거) 포함입니까” 김재규 오른팔인 박흥주가 묻자 김재규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는 장면이나 암살 후 신발도 못 신은 채 차에 올라 타 남산으로 가자고 채근하는 김재규의 모습은 역사 재연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다.

그때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의 말을 듣지 않고 육본 대신 남산으로 가서 정치권력을 재빨리 통제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바뀔 수 있었을까? 전두환의 출현은 없었을까? 여전히 남는 흥미로운 상상이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5.16 혁명(?)에 대한 배신으로? 충성경쟁에서 밀린 보복으로? 아니면 본인이 법정 최후진술에서 또렸한 목소리로 주장했던, 진정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출처= 네이버영화)

이 답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혹은 빛 바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보면서 스스로 찾아야 할 듯하다. 다만 독재자를 죽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재규의 항변을 이제는 우리 사회 공동체가 되새겨볼 여유가 생겼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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