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사각지대에 가닿는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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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사각지대에 가닿는 빛과 그림자
  • 김해완
  • 승인 2020.02.18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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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의학을 찾아서 14]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해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쿠바 의료는 훌륭한가? 대답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에 의해 갈린다. 가령,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고개부터 갸우뚱할 것이다. 모르는 거다. 쿠바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여행지로 부상한 것도 최근 몇 년간의 일인데, 이 생소한 나라의 의료 사정까지 알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모르긴 몰라도,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가 뛰어난 의료 수준을 갖췄을 리 없다고 짐작한다.

쿠바는 한국인의 마음 속 세계지도에서 사각지대에 속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시끄럽지만 볼 필요가 없다. 이 인식의 사각지대는 우연히 형성되는 게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 의학으로 유명세를 날리는 외국 국가들은 몇 안 된다. 미국, 영국, 호주, 영어권을 벗어나면 독일 정도다. 모두 한국보다 잘 산다고 (그럼으로써 의료 기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테크놀로지가 발전되었다고) 여겨지는 선진국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잘 모르는 바깥 세계를 바라볼 때 습관적으로 착용하는 마음 속 안경이다. 의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다양한 장소가 뿜어내는 다양한 인상들은 종국에 하나의 이분법으로, 즉 ‘잘 사는가 혹은 못 사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여야만 뭔가를 배울 가치가 있다는 심술궂은 심성이 깔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거다. 한국이라는 소국(小國)이 드디어 세계인들의 인식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해야 할까? 그렇지만 빠르게 앞설수록 뒤로는 더 광대한 사각지대가 남는다. 애초에 보이지 않으니 사각지대인지도 모른다.

아바나 베다도 영화관에 걸린 기생충. 쿠바에서도 점점 한국이 가까운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제공=김해완)
아바나 베다도 영화관에 걸린 기생충. 쿠바에서도 점점 한국이 가까운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제공=김해완)
우리는 쿠바를 잘 모르지만, 쿠바의 젊은 층은 한류의 물결을 타고 있다. BTS의 인기가 이곳에서도 뜨겁다. (제공=김해완)
우리는 쿠바를 잘 모르지만, 쿠바의 젊은 층은 한류의 물결을 타고 있다. BTS의 인기가 이곳에서도 뜨겁다. (제공=김해완)

 

선진국들의 리그를 벗어나면 대답은 180도 뒤집힌다. 제3세계, 이곳은 전 세계 인구의 80%가 살고 있는 ‘사각지대’다. 이 세계에 발 딛는 순간 쿠바 의료의 존재감은 급부상한다. 브라질 아마존의 산골짜기 마을에 사는 주민들부터 앙골라 수도 루안다에서 열병을 앓는 아이들까지, 쿠바를 알고 또 쿠바 의사들을 안다. 이 앎은 삶의 굳건한 경험에서 나온다. 이들은 쿠바 의사에게 치료받은 적이 있다. 이것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자 진실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평생 의사를 구경하지도 못했거나, 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에 배제되었거나, 자국 의사의 실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앞에 실제로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건낼 가능성이 가장 큰 의사는 바로 파견 나온 쿠바 의사들이다. 수도에서 의대 공부를 마친 자국의 의사나, 생명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선진국 의사가 아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어느 나라의 의료 기술이 최고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무용지물이다. 환자에게는 국적과 학벌과 상관없이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무조건 최고다.

쿠바 의사들은 저 먼 곳까지 가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쿠바는 치명적으로 고립되었지만 쿠바 의사들은 항상 글로벌하게 움직인다. 극도의 고립과 드넓은 오지랖을 연결하는 고리는 바로 미션(Mission)이다. 메디컬 인터내셔널리즘(Medical Internationalism)이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혁명 정부의 주도하에 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의료 사정이 열악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국에 저렴한 비용을 받고 쿠바 의료계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때가 혁명의 시기였으니 목표도 거창하고 원대했다. 의료를 매개로 전 세계에 휴머니즘, 반식민주의, 혁명의 씨앗을 뿌릴 것!

이 목표가 먼 타지에서 정말로 달성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의료 기술의 파급력만큼은 확실했다. 모든 의사들이 도망가기 바쁜 척박한 오지에, 갑자기 흰 가운을 입고 구수한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스캔들이었다. 세계가 놀란 거대한 재난 현장에도 늘 쿠바 의사들이 있었다. 1960년부터 2000년대까지 통계를 내보면, 총 6만 7천 명의 쿠바 의료계 봉사자들이 90개가 넘는 국가에서 일했다. (현재는 60개가 넘는 국가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1을 망라하는 숫자다.) 같은 기간 동안 G8 국가가 제3세계에 파견한 의료 인력을 다 합쳐도 이보다 많지 않다. 쿠바만큼 일관되게 의료 미션에 헌신하는 조직은 아마도 종교 단체 뿐일 것이다.

쿠바 의료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세기이지만, 의료 교육의 토대는 19세기부터 튼튼하게 다져졌다. 황열병의 메커니즘을 알아낸 까마구에이 출신 까를로스 후안 핀래이(Carlos Juan Finlay)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대표적인 의사였다. (제공=김해완)
쿠바 의료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세기이지만, 의료 교육의 토대는 19세기부터 튼튼하게 다져졌다. 황열병의 메커니즘을 알아낸 까마구에이 출신 까를로스 후안 핀래이(Carlos Juan Finlay)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대표적인 의사였다. (제공=김해완)

반세기의 미션을 통해서 쿠바는 빛나는 명예를 얻었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는 이유였다. 이제는 UN마저도 국제 의료 구호 팀을 꾸릴 때 쿠바를 먼저 찾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든 구호 활동은 쿠바 자신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서울시보다 적은 인구와 한반도만한 사이즈, 그리고 섬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떠안고도 쿠바가 미국의 경제 봉쇄 속에서 질식사하지 않은 것은 오롯이 의료의 힘이었다. 내부에서 가족주치의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국민 건강을 챙기는 동안, 미션을 떠난 의사들은 쿠바와 외부 사이의 최소한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쿠바는 미국의 서슬 퍼런 협박에도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밥벌이의 가능성이었다. 현재 의료 미션은 쿠바에 외화를 공급하는 수입원 1위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로 쿠바는 지금까지 의약품 및 필요한 공산품들을 수입해왔다.

창조경제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궁지에 몰릴 때마다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참으로 쿠바다운 해결법이다. 외교·경제·이념이 삼박자로 맞물려 함께 움직이는 이런 대외정책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까지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좋은 예시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그러나 늘 호의적인 시선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에서는 쿠바의 의료 미션이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과대포장된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 공개적으로 쿠바의 미션 활동을 비판했던 것은 마이애미 표심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비판의 첫 번째 요지는 쿠바의 의료 미션이 상대국의 ‘건강 주권(Health Sovereignty)’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국민 보건 시스템이 망가진 개발도상국들이 주로 쿠바의 의료 서비스를 의뢰하는데, 이들은 그 사이에 보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쿠바 의료진에 습관적으로 의존한다. 후자가 더 싸고 편하기 때문이다.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아이티 같은 경우는 국민의 90%의 건강이 쿠바 의사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두 번째 비판은 쿠바 의사들이 인권 탄압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바 의사들이 타국의 의사들과 사뭇 다른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쿠바 정부에 속한 일꾼으로 여겨지며, 정부가 정한 규칙 하에서 공동으로 생활한다. 인력 유출에 민감하기 때문에 여행도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월급 또한 100%를 다 받지 못한다. 정해진 금액의 3분의 1에서 4분의 1만을 받으며, 나머지 차액은 쿠바 정부로 원천 징수 된다. 그래서 누구는 쿠바 의사가 정부의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비꼰다. 쿠바 정부는 모든 의사들이 자유의지로 계약서에 서명한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이 계약서는 오로지 쿠바 정부에 의해 쓰인 것이다. 의사들은 계약 조항에 손댈 수 없다.

바라대로 해변가에 걸린 쿠바 깃발. 외국에 설치된 쿠바 의사들의 미션 기지에도 작은 쿠바 깃발이 걸려있다고 한다. 먼 타국에서도 쿠바를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다. (제공=김해완)
바라대로 해변가에 걸린 쿠바 깃발. 외국에 설치된 쿠바 의사들의 미션 기지에도 작은 쿠바 깃발이 걸려있다고 한다. 먼 타국에서도 쿠바를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다. (제공=김해완)

 

여기서 어느 쪽 입장이 참이냐고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쿠바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미국이나 어떻게든 살 길을 뚫어야 하는 쿠바나, 스스로의 입장을 홍보하는 ‘프로파간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의 거품을 걷어내고 현실을 보면 그곳에는 최선도 최악도 없다. 미화할 것도 왜곡할 것도 없다. 그저 밥을 벌어먹어야 하고 병의 고통을 덜어내야 하는 생활이 있다. 이것은 쿠바 의사부터 아이티의 환자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생명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 역동적인 현장에는 명(明)과 암(暗)이 사방으로 교차하면서 일렁인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국의 망가진 의료 체계는 깊은 어둠이다. 그러나 대책 없이 병들어가는 사람들 앞에 쿠바 의사들은 빛이 되어 나타난다. 쿠바 의사들의 값싼 노동력은 개발도상국들의 부패한 의료 정책을 유지시키니, 이는 어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빈 틈 덕분에 쿠바가 밥벌이를 할 수 있고 수많은 쿠바인들이 생활을 꾸릴 수 있으니, 이는 또한 빛이다. 가족과 헤어져서 험난한 타지에서 생활하는 쿠바 의사들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다. 국가의 원천징수 비율이 50%로 낮아지기만 해도 좋겠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쿠바에 있을 때보다 월급의 절대 액수가 올라간 점은 만족스러워 하고, 다양한 대륙에서 다양한 신체를 공부할 수 있는 건 의사로서 최고의 행운이라며 또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다. 이처럼 쿠바와 세계는 생존 조건을 공유한다. 그리고 동맹으로 단단히 엮인 공통의 생활의 지층 위로, 정치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헌신과 애정이 흐른다.

섬나라인 쿠바에서는 어디를 가든 바다와 만나게 된다. 감상하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경제봉쇄를 견디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바다를 건너 가는 해외 의료 미션은 이런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제공=김해완)
섬나라인 쿠바에서는 어디를 가든 바다와 만나게 된다. 감상하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경제봉쇄를 견디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바다를 건너 가는 해외 의료 미션은 이런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제공=김해완)

 

빛이 있는 곳에는 늘 그림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피해 열심히 빛을 쫓는다. 빛이 드는 양지에 서서, 좀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 구석구석에 빛이 들지만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진 파라다이스를 상상한다. (그림자 없는 빛은 빛 없는 그림자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인 지구에 살고 있고, 빛이 그림자를 만드는 이 땅에서 양자택일은 중요하지 않다. 명암이 뒤섞인 생존을 ‘함께 그리고 동시에’ 도모하는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눈길도 손길도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빛이 없으니 무엇이 어둠인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곳’을 응시하는 순간, 사각지대는 더 이상 사각지대가 아니게 된다. 빛과 어둠이 함께 들이칠지언정, 우리는 살기 위해 연결되어야만 한다. 이 사실은 쿠바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쿠바는 세계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는 중이다.

쿠바가 걸어온 길은 불완전하다. 순수한 동기로 진행된 길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쉰이 말했듯이 길이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걸어가다 보니 길이 되기도 한다. 이 특별한 실험이 계속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게 인류애를 쥐꼬리만큼이라도 실천하는 길이다. 소외된 곳에서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결국 소외된 쿠바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쿠바 의료가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의료의 수준을 기계가 아니라 ‘손길’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그들은 최고다. 세계의 가장자리마다 그들의 손길이 가닿고 있다. 손과 손이 만나지 않는다면 뛰어난 의료 기기도 고철로 남는다.

멕시코에서 건너온 교수가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 교재 판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쿠바는 의료 미션 뿐만 아니라 의학계와 관련해서도 해외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제공=김해완)
멕시코에서 건너온 교수가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 교재 판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쿠바는 의료 미션 뿐만 아니라 의학계와 관련해서도 해외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제공=김해완)

 

 

김해완(쿠바 아바나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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