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수신(修身)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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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수신(修身)을 위한 기도
  • 송필경
  • 승인 2020.04.2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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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인가?』- 세번째 이야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50주기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열사가 살던 옛집이 남아 있는 대구에서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경지부 등 대구시민사회단체들이 오는 11월 13일 열사의 분신 50주기를 맞아 대구전태일기념관 개관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본지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첫 출발점이자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중의 한 분인 전태일 열사의 분신 5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이 우리 역사에 남긴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대경건치 회원으로 오래 전부터 열사의 삶의 족적을 쫒아온 송필경 논설위원의 『왜 전태일인가?』를 연재한다. 송필경 논설위원의 『왜 전태일인가?』는 오는 8월까지 1달에 2-3회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전태일은 22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친구와 동료, 이웃, 그리고 가족들에게 그들이 눈 감을 때까지 도저히 잊지 못할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한 지성인이었고, 모두에게 익숙해진  불합리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실천가였고, 불의에 맞서기 위해 예수에게 진실한 믿음을 구한 참다운 신앙인이었다.

어린 시절을 거의 비렁뱅이로 보냈다. 때로는 어머니의 걸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고, 냇물에 떠내려 온 야채 조각을 건져 씻은 다음 고춧가루를 뿌린 것을 맛있는 반찬으로 알았다. 청년 시절은 청계천 평화시장이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자로 일했지만 자신에게 닥친 엄혹한 환경, 부당한 삶에 불평하기에 앞서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지녔다.

자신과 가족의 처지가 비참하였음에도 이웃의 비참함에 더 괴로워하며 그들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이웃의 인생이 왜 이다지 힘들고 짐스러운지를 설명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그들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들어주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 혼자서 고민했다. 이 세상은 자기 혼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태일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포착한 곳은 청계천 평화시장이었다. 14∼5세 어린 여공이 하루 15시간 이상, 한 달에 2일만 쉬는 노동에 시달렸다. 업주들은 어린 여공들의 연약한 근육에서 빨아들일 수 있는 노동을 수단과 방법이 허용하는 한 다 빨아들였다.

여공들이 일하는 컴컴한 작업장에는 실 먼저 펄펄 날리는데도 환기창 하나 없었다.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일하느라 피를 토하는 일이 잦았다. 한창 자랄 예민한 사춘기에 혹독한 노동에다가 굶기가 다반사였다.

영양실조, 위장병, 전신쇠약, 호흡기 질환, 눈병, 신경통, 생리불순 같은 만성질환을 어린 나이에 얻었다. 주일도 없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이야말로 예수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가엾고 불행한 양들이었다.

1966년 전태일은 평화시장에 발을 디뎠다. 봉제 공장 재단 보조로 취직하면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에 연민을 보냈다.(사진제공= 송필경)
1966년 전태일은 평화시장에 발을 디뎠다. 봉제 공장 재단 보조로 취직하면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에 연민을 보냈다.(사진제공= 송필경)

전태일은 대구에서 어릴 때 잠시 교회에 다녔으나 18세 때인 1966년 중반부터 제대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공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만방으로 노력했지만 일개 노동자의 호소에 세상은 냉담했다. 그럴수록 전태일의 신앙심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열정적인 기도에 매달렸고 이 기도를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종교적 신념이 점점 무르익었다.

전태일의 인간으로서 진정한 위엄은 자신에게만은 대단히 엄격했다는 사실이다. 날마다 자신의 소명을 점검하고 지난 하루를 반성하는 기도를 올렸다. 일상에서 먼지 한 톨이라도 영혼에 묻지 않게 애썼다. 어떤 숭고한 무게감이 기도하는 전태일의 정신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전태일은 침착하고 확신에 찬 인간으로 변모했다.

평화시장 옥상에서 고뇌하는 전태일, 1966년.(사진제공= 송필경)
평화시장 옥상에서 고뇌하는 전태일, 1966년.(사진제공= 송필경)

전태일은 최후의 결단을 내리기 전에 자기 훈련을 위해 실천해야 할 여러 구체적인 항목을 골라놓고 스스로 물었다.

선한 삶, 진지한 삶, 지혜로운 삶. 새로운 삶에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가꾸기 위해서였다.
(아래 여러 항목들은 재미 사학자 최재영 목사의 자료 『전태일 실록에서 인용)

1. 나는 어떠한 일에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2. 나는 인생의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3. 친구나 동료, 윗사람에 대하여 성실하고 솔직한가?
4. 나는 도덕적으로 결백한가?
5. 나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자기 수양에 노력하고 있는가?
6. 장래를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하여 연구를 게을리 하고 있지 않는가?

1. 두뇌의 능률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체적 에네르기의 사용을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육체적인 약점이 없는가?
2. 신장에 비하여 체중이 보통인가, 어떤가?
3. 음식은 충분한가, 과식은 하지 않는가?
4. 매일 밤잠은 잘 자는가?
5. 운동은 충분한가, 운동이 과하지는 않는가?
6.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끼칠 좋지 못한 습관은 없는가?

1. 나는 쉽사리 낙담하지 않는가?
2. 생활상의 파란으로 극단적으로 낙관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않는가?
3. 실망, 낙담했을 때에도 일을 평상시와 같이 계속 할 수 있는가?
4. 맡은 일에 대해 정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가?
5. 어제 그릇된 일 때문에 오늘의 일에 방해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는가?
6. 결단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가?
7. 확신 있는 해답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문제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가?
8. 동료나 윗사람에 대하여 정직한가?
9.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기략이 있고 친절한가 어떤가?
10. 딴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딴 사람의 의견만을 좇는 일이 있는가 없었는가?
11. 나는 일에 대하여 빈틈이 없고 또한 일하는 태도가 훌륭하다고 볼 수 있는가?
12. 수입의 몇 할을 저축하고 있는가?
13. 나의 교양과 지위 향상에 준비를 위해서 수입의 몇 할을 정해서 쓰고 있는가?
14. 기술과 집중력, 결단성, 인내력, 깊은 생각, 믿음성 등에서 현재의 내 지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5, 나는 이러한 성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16. 현재의 일은 나의 일생의 목적에 대하여 얼마만한 의지를 가졌는가?
17. 현재의 일은 일생의 사업으로써 희망성이 있는가, 없는가?
18. 그러한 희망이 없다고 하면 일생을 걸만한 사업으로써 따로 나에게 적당한 사업이 있겠는가? 없는가.
19. 나는 어찌하여 위의 말한 각 조목의 물음에 답하였는가?
20. 나는 나의 일생의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만한 인물인가?

불과 20세 남짓한 노동자가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한 마음 자세의 품격이 어찌 이렇게 엄격하면서 정갈할 수 있겠는가?

자기 능력의 한계를 물은 까닭은 자신의 판단을 올바르게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도덕적으로 바른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걸었다.

나는 전태일의 자기 다짐을 담은 위의 자료를 읽으면서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 가운데 유교 사상의 핵심 이론이 담긴 중용(中庸), 그 중용 철학의 가장 핵심인 ‘신독(愼獨)’ 사상이 떠올랐다.

중용1장 3절은 내용은 이렇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조심하고 두려워한다. 숨은 곳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는 것이다.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이에 도올은 도올선생중용강의에서 ‘신독’을 이렇게 해석했다.

‘신독’이란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말이다. 아무도 안볼 때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바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신독’이 근세의 기독교 신앙의 ‘기도’ 사상으로 변하여 자리 잡았다. 기도의 본질은 ‘홀로 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서양인의 기도 핵심은 ‘단독자’의 개념이다. 기도는 단독자로서, 다시 말해 홀로 신과 대면하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계의 세속적인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신과 홀로 만나 나의 양심을 지킨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동양인에게는 ‘(신과 대면하는) 단독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인간 존재를 파악하는 방식은 ‘도(道)’라는 개념이다. 도는 나와 우주 만물이 이미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홀로 있을 지라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말과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말이 왜 나오느냐 하면, 도에서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삶, 그러한 삶은 남이 보든 안 보든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이 보는데서 하는 행위보다는 보지 않는데서 하는 행위야말로 이 문명을 개혁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문명의 진실이다.

내 행위가 남에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런 행위가 전체의 도에 항상 관련이 되어서 남에게 언젠가는 혜택을 주리라는 믿음, 이 보이지 않는 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없이는 군자의 삶은 성립할 수 없다.

‘신독’은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자아수양이고, 이를 통해 자아실현에 이른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소홀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철학이다.

도올 선생의 또 다른 책  중용한글역주에서는 신독과 비교해 기도를 이렇게 해설했다.

마태복음(10;26-27)에 있는 말이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귓속말을 듣는 것을 옥상 위에서 선포하라”

숨은 것처럼 잘 드러남이 없고, 미세함처럼 잘 나타남이 없다. 따라서 구태여 드러날 필요가 없고 나타날 필요가 없다. 숨어 있고, 미세한 곳에서 인간 본래 모습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인간의 구원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수 믿음”의 구체적 일상적 의미가 기술되어야 한다. 그 의미가 기술되고 실천될 때만이 그 믿음은 검증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하고 하늘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우주의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보지 않을 때, 은밀한 디테일이 다 수도(修道)의 대상이 될 때, 그 때를 삼가야 하는 것이다. 삼감은 신중함이다. 삼감은 자기절제이며, 자기 발견이며, 자기 주체의 심화과정이다.

군자는 위기의 상황에서 홀로 두려움이 없으며, 세상을 등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답답함이 없다.

자신의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의 지향성을 바르게 갖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감정을 기만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악취를 싫어하듯 악을 미워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듯 선을 사랑하는 그 진정성을 보지(保持)하는 것을 의미한다.

‘홀로 있을 때의 감정을 신중히 한다’는 신독은 개인의 내면적 상태이므로 사회적 결과에 의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일체의 공리주의 윤리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기 수련의 근본은 신독에 있다. 신독은 내면적 주체성의 심화이며 그것은 신비주의적 해후가 아닌 인간의 삶의 일상성과 관련이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는 속담이 있다. 요즈음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많이 쓴다. 어떤 일을 할 때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사항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의 속담이다. 대충 보면 쉽게 보이는 일도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쏟아 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디테일(detail)이 중용에서 나오는 ‘은미(隱微;숨어 있는 미세한 것)’의 뜻과 매우 닮았다.

세상을 맑게 보려면 자신의 눈에 있는 때를 먼저 벗겨야 한다. 정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치열한 삶에는 치밀한 정신의 준비를 뒷받침해야 했다. 전태일은 자기 정신에서 한 톨의 ‘은미(디테일)’한 부분도 철저하게 점검했다. 전태일은 자기 수련서에 적은 대로 자신에게 진실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했다. 전태일은 20살 갓 된 젊은 노동자였지만 이 세상의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 알았다.

평화시장 업주들은 배가 불렀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화시장에서 업주는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었고 어린 여공은 노예 노동자에 불과했다. 그런 세상을 본 전태일의 가슴 반(半)에는 배고픈 노예에 대한 연민, 다른 반은 배부른 주인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전태일의 심장은 연민과 분노를 함께 담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장이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봉제 업소에서 타고난 뛰어난 기술로 재단 보조에서 시작하여 이름난 재단사로 급성장했다. 좀 더 자신의 이익에 밝았다면 자신의 처지에서는 앞길이 탄탄했다.

전태일은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기보다 여공들이 부당하게 노예가 된 삶을 고귀한 인간의 삶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부당한 세계에서 정당한 권리를 외친다면 편하게 살 수 없다. 전태일은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청계천 봉제공장. 사진 위 왼쪽은 전태일 재단 전시실에 당시 봉제공장을 재현한 모습이고, 나머지 사진 3장은 당시 모습이다.(사진제공= 송필경)
청계천 봉제공장. 사진 위 왼쪽은 전태일 재단 전시실에 당시 봉제공장을 재현한 모습이고, 나머지 사진 3장은 당시 모습이다.(사진제공= 송필경)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이웃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기도를 통해 이웃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신념이 옳다고 확신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누구나 이웃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었으면 하고 전태일은 바랐다.

전태일은 고난의 길을 걸으며 실로 많은 글을 남겼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고 비렁뱅이로 밑바닥 노동자로 보냈지만, 글 솜씨는 전문가도 경탄을 자아낼 수준과 품격을 나타냈다. 논리에 앞선 타고난 영감으로 글을 썼다. 모차르트가 5살에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작곡했다는 사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기적이었다.

일기와 수기, 사업계획서, 시, 독후감, 미완성 소설, 탄원서, 유서…

일기와 수기는 진솔했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사업체를 창업하려고 구상한 사업계획서는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기능공처럼 치밀했다. 가장 탁월했던 글쓰기는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였다. 노동 해방을 위한 소설은 아무래도 미숙한 점이 있는 미완성 작품이었다. 서울 시청, 노동청, 언론에 보낸 탄원서는 반박할 수 없는 명확한 논리를 담았다.

‘대통령께 보내는 탄원서’를 불편하게 읽은 박정희는 ‘젊은이가 예의는 있군!’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전태일이 남긴 유서와 죽음을 결단한 수기에 이르면 어떤 문학가도 표현할 수 없는 엄숙함이 가득 차 있다.

전태일의 모범업체 설립 계획서와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사진제공= 송필경)
전태일의 모범업체 설립 계획서와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사진제공= 송필경)

많이 배워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전태일에게 배워야 할 점은 그의 글에는 화장이나 포장 같은 어떤 위선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삶과 글이 완벽하고 품위 있게 일치했다.

나는 전태일의 자신을 수신·정화하는 다짐의 글에서 세상의 때를 묻히지 않은 참다운 선비의 꼿꼿함, 또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맹렬히 기도하는 수도사의 엄격한 기운을 느꼈다.

전태일의 친필 일기(사진제공= 송필경)
전태일의 친필 일기(사진제공= 송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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