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기원, 1921년 VS 1925년 '치열한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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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기원, 1921년 VS 1925년 '치열한 설전'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0.11.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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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치협 창립일 공청회서 갑론을박…1981 총회 결정 존중 vs 조선인이 세운 단체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달 30일 서울 송정동 치과의사회관에서 열렸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달 30일 서울 송정동 치과의사회관에서 열렸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달 30일 송정동 치과의사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지난 1981년 4월 제30차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의결된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을 기원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치과계 내부 이견이 있어, 회원 의견 수렴을 통해 창립일을 재논의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특히 이날 공청회에서는 기존 총회 의결을 유지해 2021년을 100주년으로 할 것인지 혹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1회 졸업생 등 7인의 조선인 치과의사가 1925년 4월 15일에 세운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을 새로운 기원일로 삼아야 할지를 치열하게 논의했다.

1981년 총회 결의사항 존중해야

먼저 발제에 나선 치협 협회사편찬위원회 변영남 자문위원은 기존 논의대로 1921년을 창립 기념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변 위원은 “1974년부터 기원일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921년으로 유지하자는 의견과 1925년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못하고 1921년으로 유지하게 됐다”며 “창립 기원일에 관한 소모적 논쟁이 오늘로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변 위원은 1921년을 창립기념일로 유지해도 되는 이유로 ▲조선치과의사회는 1921년 한반도에 최초로 생긴 전국단위 치과의사 단체 ▲조선치과의사회는 법정단체가 아닌 친목단체로 입치사들과의 분쟁에 대처, 치과의사 시험제도의 필요성에 기인 ▲조선치과의사회의 전신은 경성치과의사회로, 여기에 한국인 치과의사 4명(함석태, 한동찬, 김창규, 이희창) 이 참여한 기록과 개연성 존재 ▲조선치과의사회 임원으로 한국인이 활동한 기록 ▲한성치과의사회는 창립일에 대한 기록도 없고 전국단위 단체가 아님 등을 꼽았다.

그는 “일본인이 설립했다는 역사적 아픔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해서도 안된다”면서 “그런 논리라면 서울대 치대의 전신인 경성치과의학교도 일본인에 의해 총독부에서 만든 학교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며 1981년 총회 결의를 존중할 것을 강조했다.

조선인만으로 만든 ‘한성치과의사회’를 기원으로

반면 치협 협회사편찬위원회 권훈 위원은 1925년 설립된 한성치과의사회를 치협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타국 사람이 회장을 한 단체를 기원으로 삼고 있지 않다”면서 “조선인만으로 조직된 한성치과의사회는 조선 최초의 치과의사인 함석태 선생을 회장으로 한 단체였다”고 밝혔다.

권 위원은 치협 초대 회장인 안종서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조선치과의사회를 치협의 기원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에 따르면 안종서 선생은 “옛날 치과의사회로서는 최초이던 한성치과의사회는 1920년경에 창설됐고, 당시 초대 회장은 함석태였다”며 “한국인만으로서의 치과의사회로 태평양전쟁 초기까지 운영되다 일시 중단되고 8‧15 후에 다시 결성되더니 이제 다시 이른바 오늘날의 치협이라는 법정단체가 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아울러 권 위원은 함석태 선생의 행적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조선치과의사회를 치협의 기원으로 삼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인 치과의사들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던 조선인 치과의사 7명이 한성치과의사회를 만들고, 매년 독자적으로 구강위생강연회와 충치료진료사업 등을 진행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권 위원은 “치협 기원에는 한국인 치과의사의 철학과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하며, 진실된 치의학의 역사가 시작점이 돼야 미래 치과의사들에게도 자랑스러운 단체가 될 수 있다”며 “조선치과의사회는 기록하고 기억돼야 할 것이지 기념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1925년이 치협의 기원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달 30일 서울 송정동 치과의사회관에서 열렸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달 30일 서울 송정동 치과의사회관에서 열렸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청중들 사이에서의 설전도 치열했다. 김정균 전 협회장은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선배들이 논의를 거쳐 결정한 1981년 의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양정강 회원은 “서울대 치대 전신과 창립일을 논하는 건 부적절하고, 일본 사람이 주축이 돼 세운 단체를 우리 창립일로 삼는 것은 반대”라고 밝혔다.

강원지부 변웅래 회장도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를 기원으로 삼는다면, 초대 회장이었던 나라자키 도오요오부터 7명의 일본인 치과의사를 치협 회장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가?”라고 지적하며 “1981년 총회 결의도 그렇고 결정과정이 부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광식 명예교수는 “결정과정을 설렁설렁했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고생한 선배들의 고민과 논의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부분 협회들이 그 기원을 올리는 관행에 따라서, 1921년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찾아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재규 전 협회장도 이에 동조하면서 “역사를 축소하기 보다는 이 땅에서 치의학 교육을 시키려했던 그 정신과 한반도에 치과의사단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조선인만으로 한 걸 시작으로 보는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종열 명예교수는 “의협, 한의협 등 유관단체 창립기념일 연원 제정 과정을 보면, 대한제국 당시 이미 한국인 출신 양의사들이 많이 배출돼 있었고 이들이 주축이 된 단체는 의료단체가 아닌 독립운동의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선배의 역사로 남았다”며 “회원들이 내가 속한 단체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초대 회장이 일본인이라는 것은 말이 안되고,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만든 단체가 전국적 규모는 아니었을지라도 대표성을 가진 선배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 좌장을 맡은 치협 장재완 부회장은 “필요하다면 추후 논의자리를 만들거나, 기원에 관한 각종 자료를 회원에게 홍보하거나 기고를 게재하는 등의 방식도 고려해 볼 것”이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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