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 살던 대구 남산동…그의 이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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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살던 대구 남산동…그의 이름이 걸렸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0.11.13 17: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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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태일의 친구들, 열사 생거지 매입‧문패 달기 행사 진행…기념관 조성 계획도
전태삼 씨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며 자신을 태운 그 근원‧시초가 된 바로 그곳”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전태일 열사와 그 가족이 지난 1963년 2년 간 살았던 생거지에 전태일 열사의 명패가 달렸다.
전태일 문패 달기 행사에서 참석자 대표가 문패를 달고 있다. (왼쪽부터) 시민대표 서춘희 씨, (사)전태일의친구들 이재동 이사장,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 ‘전태일’ 이름의 명패가 걸렸다.

이곳은 1970년 11월 13일, 5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태웠던 전태일 열사와 그 여섯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 1963년 방 두 칸을 빌려 살았던 곳이다. 전태일 열사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강당 부지)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전태일 열사의 생거지를 알게 된 시민들은, 2018년 개발로 이 집의 담장과 대문이 허물어져 버리기 전에 시민의 힘으로 이 집을 지키고 기억을 미래로 만들기 위해 지난 2019년 3월 (사)전태일의친구들(이사장 이재동)을 창립하고, 같은 해 5월부터 본격적인 시민 모금에 돌입했다. 

이재동 이사장

전태일과친구들은 전국 각지에서 3천여 명의 시민과 500여개의 단체, 지역 예술가들의 재능기부로 모인 수익금 등 4억3천만으로 이 집을 매입하고, 지난 12일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하루 앞두고 문패달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인 전태삼 씨와 당시 청옥고등공민학교 선생님이었던 이희규 선생, 전태일 열사의 동지인 최종인 씨,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 울산 현대자동차노동조합 배상윤 수석지부장,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안정섭 위원장, 시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동 이사장은 “부당하고 참혹한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 50년 전 자신을 희생한 열사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돼 많은 사람들을 일어나게 했고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다”면서 “우리 대구 지역에서 열사의 삶을 추적하고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선 결과, 그의 짧은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이 집에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걸 수 있어 기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도 축사에 나서 “이 집이 지금까지 보존돼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를 알고 순수함 마음으로 이 집을 위해 모금하고, 매입해 전태일의 문패를 달고자한 그것이 전태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제 전태일은 서울만의, 대구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와 고난당하는 모든 영혼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더 많은 곳에 전태일의 집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전태일 열사의 친구 4명의 구술 자료를 엮은 책을 전달했다.

전태일이 걸었던 길. 전태일의 삶과 생각이 형성되었던 곳.
유년의 기억.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남산동 골목을 돌아 
옛집 지붕이 낮아 마당이 훤히 보이던 전태일이 살았던 집
남산동 좁은 길을 걸어 그를 만나고 싶다.

-황규관 시인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 씨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남산동 2178-1번지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씨는 “이 주인집 바로 옆 조그만 판자집에서 우리 식구 여섯이 살았는데, 생필품은 모두 다락에 올려놓았고 미싱 2대로 아버지와 형이 옷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공간이었다”며 “형이 공부하겠다고 서울로 올라갔다 내려온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나와 형, 순덕이가 대책 없이 굶고 있을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이 마루로 우리를 데려와 밥을 챙겨주셨다. 그런 날들이 가슴에 남아 있어 이 마루에 앉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여섯 식구, 15살의 전태일의 운명이 결정되던 시기에 살았던 집이라 나중에라도 보존할 수 있을까 싶어 가끔 와 봤는데, 옛날에 살던 담장, 드나들던 쪽문, 문설주에 박힌 못도, 닳고 닳아진 청대문, 보로꼬 담장을 넘어간 앵두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며 “형이 돌아가기로 결단했던 삼각산 기도원 자문 밖 길은 발갛게 익은 앵두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에 오고가던 길에 봤던 발갛게 익은 앵두가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특히 전 씨는 “1970년 11월 13일, 금요일 분신하기 3일 전 형은 청옥고등공민학교 당시 부반장 김예옥 씨를 종로에서 만나 자신이 3일 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대구에 내려와 이 집과 항학열을 불태우며 꿈을 키웠던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둘러보고 평화시장으로 올라갔다”며 “그 날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을 태운 그 근원, 시초가 바로 이 곳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난 50년 간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그 내용의 시초가 이 집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라며 “기회가 되는대로 시간 나는 대로 추억을 건져 올려 나누며, 이후 세대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왼쪽) 전태삼 씨와 (오른쪽) 이희규 선생이 행사 내내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기계임을 거부하며 제 몸에 불을 붙인 한 청년은
중음신으로 50년을 살았습니다. (…) 
죽어서도 차마 죽지 못했습니다.

깃발로 살아온 50년입니다. 
고공농성으로 펄럭인 50년입니다.

(…) 전태일…영원한 오막살이입니다.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우리의 거대한 시작입니다.

- 조기현 시인

이어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삼봉 교수가 연대사에 나서 전태일 열사가 1960년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구의 아들로, 민주운동으로부터 꼭 10년 뒤 자신을 태워 경제적인 노동자의 해방과 경제정의를 불러일으킨 인물이라고 평했다.

김삼봉 교수
김삼봉 교수

김 교수는 “대구에서 2‧28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후 이데올로기적인 좌우대립으로 1959년 8월 31일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사법살인을 당하며 이 나라에서 어떤 저항의 몸짓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선언이 떨어지고 꼭 반 년 만에, 이승만 정권의 억압에 저항해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라며 “이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대중적이고 시민적인, 아래로부터의 연대에 의한 저항을 가능케 했고, 그것이 부마항쟁, 광주를 거쳐 6월 항쟁으로, 최근의 촛불혁명으로 까지 이어져 왔다. 60년전 대구의 학생들이 한국사회를 억압으로부터 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로부터 딱 10년 뒤 전태일 열사의 희생은 근대적 국민국가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경제적인 노동자의 해방과 경제정의를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킨 역사가 됐다”며 “오랫동안 대구는 전태일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전태일의 부활로 대구가 한국사회의 진보, 민주주의 역사, 경제적 노동해방 역사의 선구적 역할을 해 온 것처럼, 오늘 이 자리, 이 시간으로부터 다시 시작될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이 자리를 정말로 소중한 이 집을, 그냥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이날 행사에서는 ▲대구 지역 음악인들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슬로건으로 30일 간 릴레이 콘서트를 통해 모금한 돈을 국악밴드 나릿의 김수경 씨가 ▲협동조합 다문(바보주막) 홍창영 이사장이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전시회를 연 50인의 작가를 대표해 김병호 화가가 ▲계명대학교 민주동문회 최종태 회장이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안정섭 위원장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배상윤 수석 부지부장이 대표로 현장에서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외에도 이번 행사에서는 전태일의친구들 이재동 이사장, 시민대표 서춘희 씨,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이 대표로 명패를 달았으며, 이어 열사 자취 걷기 ‘태일아 학교가자’ 행사를 진행했다.

한편, 전태일의 친구들은 시민 의견 수렴을 거쳐 이 집을 기념관으로 꾸며 열사의 어머니 故이소선 여사의 10주기인 내년 9월 문을 열기로 했다.

전태일 문패달기 행사 참석자 일동
전태일 열사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판자집이 있던 곳
전태일 열사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판자집이 있던 곳
전태일 열사가 생전 살았던 집
전태일 열사가 생전 살았던 집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살았떤 집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살았던 집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집 복원도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집 복원도
대구 전태일의 집 매입에 참여한 시민·단체의 명단
대구 전태일의 집 매입에 참여한 시민·단체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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