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창립 100주년 기념을 202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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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창립 100주년 기념을 2021년에?
  • 양정강
  • 승인 2020.12.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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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지난 7월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TF 구성’을 승인한 제31대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이상훈 이하 치협) 집행부가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를 지난 10월 30일에 개최하면서 사회자의 마무리는 ‘필요하다면 치협 기원에 대한 각종 자료를 회원들에게 홍보하고 공청회 등도 추가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토론시간에 필자가 개진한 내용이 매우 미흡해 추가로 의견을 정리해본다.

공청회는 1981년 4월 치협 경주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한 창립일 ‘1921년 10월 2일’안과 ‘1925년 4월 15일 이후 어느 날 설립한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일로 하자는 두 안을 놓고 진행됐다.

공청회에 딱히 초대받은 바가 없음에도 토론에 참여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반도에서 활동하던 일본 치과의사들의 주도하에 적은 수의 한국인 치과의사를 포함하여 출범‧소멸되기까지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초대부터 7대까지(1921~1945) 회장을 지낸 단체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대한이라는 이름이 갖는 정체성을 떠올리면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치협이 1982년 3월 25일 발행한 ‘대한치과의사협회사’ 29쪽 서론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가 창립되고 회장에 함석태가 선임되었다. 이에 앞서 한국 내에는 일본인(日本人)들이 1909년 경 경성치과의사회를 조직하였고, 1921년에는 조선치과의사회를 조직하여 전국적인 조직체로 확장하였다. 조선치과의학회도 1920년에 조직하고들 있었다. 1942년 한성치과의사회가 일본인들의 경성치과의사회에 강제 합병되지만 한국인들의 단합은 그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처럼 한성치과의사회를 대한치과의사회의 효시라고 기록을 남긴 치협 집행부에서 토론도 생략한 채 치협의 창립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에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구체적인 날짜는 집행부에 일임하여 결정된 치협 창립일 ‘1921년 10월 2일’은 수용하기 매우 힘들다.

그래서 인가 지난 2005년, 2009년과 2010년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치협 창립일 변경이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각각의 다른 이유로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하였다. 특히 지난 2009년 9월엔 공청회가 열렸고 1921년 유지, 1925년으로 변경, 광복 후 1945년으로 하자는 세 가지 의견으로 진행됐으나 결론 도출은 하지 못하고 10여년 만에 또다시 공청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번 공청회, 치협 이상훈 회장 인사말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1회 졸업생을 주축으로 설립된 1925년 4월 15일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로 하자는 것입니다”라는 대목도 있었다.

치협 홈페이지에서 연혁을 살펴보니 “1921.10.02: 조선치과의사회, 1925.04: 한성치과의사회, 1945.12.09: 조선치과의사회(회장 안종서), 1949.05.29: 대한치과의사회로 개칭, 1952.3.16.: 법정단체 창립총회(안종서), 1959.4.28.: 대한치과의사협회로 개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초대 총무를 지낸 안종서 선생은 성수동 치협 회관에 초대회장으로 사진이 걸려있다.
 
1921년 창립일을 주장하는 내용을 요약해본다.

1. 비록 일본인 주도 하에 시작하고 자국으로 물러갈 때까지 회장을 역임했다고 해도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수용할 수 있다.
2. 단체의 역사는 길수록 바람직하다.
3. 선배들이 나름대로 고민 끝에 결정한 사안이다.

4년 터울을 두고 단체의 역사는 길수록 좋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앙대학교는 유치원 시작이 대학의 시작이며, 성균관대학교의 시작은 1398년 조선초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하버드대학교는 1637년을 시작으로 한다고 했다.

이웃 간호협회 창립년도는 1923년인데 치협 창립일을 1925년으로 하면 그보다 역사가 짧아진다고도 한다.

대학이나 이웃단체와 비교하면서 일본인이 일본인 중심으로 시작한 단체에 거부의사가 없다면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보다 앞서 1909년 일본치과의사들의 친목 모임이나 1912년 경성치과의사회를 시작으로 하는 것이 더 긴 역사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창립일 찾기를 제안하고 나름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선배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후 관련 역사적 사실을 보다 세세히 확인한 후배들의 창립일 변경 주장을 듣고 나면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즉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설립 당시 배경과 일본인 초대회장은 러일전쟁 참전을 위해 조선에 주둔한 한국 주차군 사령부 치과촉탁의 군속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온 인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수행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시작을 확인하는 작업은 분명 구분할 일이다.

토론 자리에서 지난 1981년 총회에 참여한 대의원들 대부분이 일제 식민 지배를 경험했음에도 1921년 창립일을 지지했으며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소수이나 참여했고 별 불이익을 격지도 않았다는 소견을 듣고 나서는, 언듯 인질들이 인질범에 감화돼 동조하는 현상인 소위 ‘스톡홀름 신드롬’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데 지난 11월 30일자 치의신보엔 창립일은 해방 이후인 1945년 12월 조선치과의사회로 삼아야 한다는 특별기고가 있어 주장 하나가 더해졌다. 이처럼 총회에서 결의한 사안이 40년이 지나도록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치협 이상훈 회장은 그간의 논란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인가? 창립 100주년 기념을 2021년 12월? 2025년 4월? 아니면 2045년 12월로 할 것인지 총회에선 매듭을 짓겠다고 하니 이번엔 결말을 보기 원한다.

1897년 조선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변경했다. 역사가 길수록 바람직하다고 하나 조선이 대한으로, 한성이 서울로 시대를 따라 이름도 변하기 마련이다. 대한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단체의 시작은 조선이나 경성보다는 한성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편집자 주)

 

양정강(사람사랑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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