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맬더스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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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맬더스의 유령
  • 편집국
  • 승인 2007.01.1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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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그 기세가 자못 살기등등하다. 서민들을 괴롭히는 이른바 '부동산 오적'을 향해서일까? 아니다. 역시 만만한 가난한 이들을 향해서다.

보건복지부는 빈곤층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1000원 내지 2000원을 내게 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병의원도 제한하며, 별도의 플라스틱카드를 만들어 관리하겠다고 한다. 또한 빈곤층 노인들의 애용품인 파스는 혜택에서 제외하겠다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공고했다.

낭비는 줄여야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이는 돈은 한 푼이라도 아껴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낭비를 줄이려면 건강보험, 공급자, 복지부문의 책임성을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불방식과 전달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낭비도 못줄이면서 가난한 이들만 괴롭히는 정책이다.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이들이 진료비로 인해 소득이 감소하면 어차피 정부는 이들 다시 보상해주어야 한다. 더욱이, 이들 정책을 강행하더라도 유장관이 좋아하는 '시장'은 더욱 약삭빠르게 '본인부담금 면제'로 이들 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빈곤층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하고 남는 돈을 가지라는 건강생활유지비 정책은 빈곤층이 "아파도 참고 병원에 안가야" 성공하는 정책이다.

혹시 이번 정책으로 인해 진료비가 일부 줄어든다면 그것은 낭비가 줄어서가 아니라 아픈 이들이 돈 때문에 의료이용을 못해서라는 이야기다.

또한 무엇보다 정책의 내용이 가난한 이들에겐 모욕적이다.

정책에 품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 정책은 참으로 저급한 정책이다. 더욱이 이번 정책은 "빈곤층의 혜택을 일반국민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지난 30년간의 정책목표를 바꾸는 사건이기에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빈곤층의 차별과 낙인을 우려해 건강보험증과 동일한 모양의 의료급여증을 만들어 주던 과거의 '따뜻한 정책'을 포기하는 일이다.

또한, 오랜 가난이 남긴 관절염의 통증을 잠시라도 달래보려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그 몇 장의 파스마저 빼앗으려는 '나쁜 정책'으로 돌아가려는 일이다.

이러한 큰 정책적 전환 뒤에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있다.

그는 최근 의료급여관련 대국민보고서에서, 일반국민과 달리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의 일부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저는 이것이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관련 회의석상에서는 "빈곤층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표현이 경제부처 장관도 아닌 보건복지부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삶에 지친 가난한 이들은 더욱 슬프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대중의 빈곤은 신의 섭리이며, 자비심은 재앙을 부른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맬더스의 목소리를 닮아있다.

당시 맬더스는 빈곤층을 황폐화시키는 질병퇴치에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상류층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어김없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차별의 '미화'로 쉽게 전화한다.

맬더스가 죽은 직후 1845년 아일랜드 기근 때가 그러했고, 1930년대 독일이 그러했다. '복지'라는 말이 낙인이 되어버린 현재의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오늘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수장의 '선언'과 그 선언에 박수치는 이들에게 가지는 우려가 바로 이것이다.

이 겨울, 양극화의 한파를 몰고 다니는 것은 500조원이 넘는다는 투기성 자본만이 아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 '맬더스의 유령'이 다시 배회하기 시작했다.

우연일까? 유 장관은 그 자신의 책에서 맬더스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계급적 편향성은 천재의 눈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언제나 맬더스를 좋아한다."


 

신영전(의료연대회의 정책위원장, 한양의대 예방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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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사 2007-01-17 01:11:38
니체가 말하길 '곱사의 등에서 혹을 떼면 영혼을 빼앗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바른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잘 하는' 인간이 유시민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평상복 입고 의원 선서하려던 그 싸가지에서 유시민의 영혼을 봤다.

그런데 장관 자리 하나 해먹을 셈으로 머리에 무스 바르고 정장차림으로 임명동의 청탁하러 다닐 때부터 그 싸가지는 영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참여정부의 뿌리 없는 신자유주의 선봉에 서서 너무도 급작스럽게 날뛰니 오히려 파시즘의 반동을 불러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한 때 사랑했던 영혼, 삶의 예지를 잃어버린 싸가지는 우리 곁으로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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