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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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
  • 박준영
  • 승인 2021.01.25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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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 영화 『벌새』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다음영화)
(출처= 다음영화)

요즘 아이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어떻게 기억될까?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에 겪어낸 팬데믹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상처로 남겨질까? 특히 불운했던 지난해 대학 신입생들은 동기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신입생 환영회도, 봄날의 축제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2020년은 어쩌면 그저 잃어버린 1년이었으리라. 

청년기의 1년은 성인의 그것보다 열 배의 추억과 기억으로 간직된다. 이렇듯 영화 『벌새』는 한 소녀의 보잘 것 없지만 보편적이며 순간적이었지만 찬란했던 기억의 저편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스웨덴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얼핏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 역시 열두 살 소년 잉마르의 성장기와 그 과정의 아픔을 치유해 내는 영화였다. 다만 『벌새』가 이 영화와 다른 점은 굳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시간을 감내하며 흐르기를 기다려낸다. 그런 톤의 분위기라면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과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름의 명작들과 『벌새』를 대등하게 비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는 일단 수상 실적으로도 변명이 된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 수상을 포함해 국내 백상, 대종상 등 총 25개의 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시각적 쾌감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벌새』는 충족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멍 때리기 위한 영화이니까.

(출처= 다음영화)
(출처= 다음영화)

벌새는 1초에 적게는 19번, 많게는 90번 날갯짓하는 몸집이 자그마한 새다. 지난 1994년은 큰 사건이 많았다. 김일성이 사망했고, 유례없는 폭염이 있었고, 그리고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는 이 시절을 ‘90번 날개 짓’하면서 살아낸다. 

죽일 듯 싸우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는 부모님,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수험생 오빠, 겁 없이 남자친구를 방에 데리고 와 재워주는 언니의 ‘비행’ 속에 혼란스럽지만 단짝 친구와 남자친구,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가 있어 삶은 여전히 소소한 행복들로 이어진다.

주인공 은희의 눈에 비친 1994년의 서울과 대한민국 풍경은 지금 보면 낯설기도 혹은 친근 하기도 하다. 은희는 어느 날 문득 무너져버린 성수대교를 한강 변에서 지켜보면서 자신의 멘토였던 학원 선생님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

(출처= 다음영화)
(출처= 다음영화)
(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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