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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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예의
  • 박준영
  • 승인 2021.04.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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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사진출처= MBC)
(사진출처= MBC)

워낙 시청률이 좋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겠지만, 한때 거명조차도 불온 시 됐던 독립투사 김원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그것도 지상파인 MBC에서 말이다. 김원봉은 항일투쟁을 했지만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정권의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김구보다 현상금이 더 높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지만 역사의 전면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라마 기획 당시에는 김원봉의 역할을 유지태가 맡으면서 ‘과연 파란만장한 전설의 풍운아를 영상으로 어떻게 그려 낼까?’하는 기대와 호기심이 컸었다. 『이몽』 이라는 타이틀로 막상 뚜껑을 열었지만 결과는 대 참패. 실제 인물의 깊이와 무게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1920년대 당시 김원봉의 주 활동 공간은 중국과 만주였으나 드라마에선 조선의 거리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협객으로 분해 종로 한복판에서 격투와 총격전을 수시로 벌이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름만 김원봉을 가져왔을 뿐 역사적 기본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연출된 셈이다. 드라마에선 창작과 상상력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산적들과 싸우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적 소재를 드라마나 영화화 함에 있어 어디까지 창작이 허용되는가 하는 부분은 사실 해묵은 논쟁이다. 필자 역시 영화를 소재로 역사 강의하는 일을 꽤 오래 해왔고 관련된 책을 두 권이나 쓴 마당에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나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설강화』의 역사왜곡 논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역사왜곡 논란이 어디 이 작품 뿐이랴. 관객 600만 명을 동원했던 손예진 주연의 『덕혜옹주』는 영화 한편을 온전히 판타지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던가?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는 독립운동을 가열차게 하는 투사로 변모했고 그녀의 오빠들(의친왕, 영친왕)은 망명정부를 세우기 위해 수 차례 궁궐 탈출을 시도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는 내용에 이르면 어린 학생들에게 이 허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만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역사 관련 영상물은 훨씬 임팩트 있게 청소년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역사의 창작이 허용될 수 있을까? 관련 논문을 다 뒤져봤지만 시원한 정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근사치의 답을 도출해 봤다. 바로 대중의 기초적인 역사적 상식을 크게 배반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창작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상상력의 나래를 편다면 큰 낭패를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고 접근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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