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와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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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와 윤상원
  • 송필경
  • 승인 2021.05.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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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나는 197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1970년대는 유신이 시작해 종말을 고했던 시기이다. 아직 철없던 때였지만 사회 분위기가 무언가에 꽉 죄이는 느낌이었다. 민주주의에 목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제법 들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은 가장 가까운 부하에게 총을 맞았다. 우리 사회를 꽉 조였던 억압이 풀려지려나 생각했다. 곧이어 12·12 사태가 일어나 무언가 찜찜했다.

1980년 개학하자마자 이른바 ‘서울의 봄’이 찾아온 듯 싶었다. 대학교 교정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은 점차 거리로 확산했다.

5월 15일 거리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시청 광장에 이르기까지 서울시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해 거리를 메운 인원이 거의 1백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백만의 함성은 시청광장에서 멈추었고,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채 시위대가 해산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위 지도부의 변절이 해산을 불러일으켰다.

5월 16일 자정 무렵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당연히 휴교령이 떨어졌다. 서울 시위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누나 집에 거주했기에 대구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다. 대학생이니 함부로 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친구 하숙집을 찾아다녔다. 서울 거리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는 어떤 공포가 숨어있는 듯했다. 5월 20일부터 광주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5월 24일, 친구 하숙방에서 광주에서 전해 온 호소문을 읽다가 너무나 섬칫했다. 둘은 그만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머지를 읽었다. 무자비한 살육의 육성이었고 우리는 그만 전율했다.

아! 그 섬칫한 기억은 벌써 4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 일만 같다.

1980년 9월 초 개강을 했다. 알음알음으로 광주의 진상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의미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민주주의란 혈관의 진정한 피는 광주의 영령들이 목숨으로써 헌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상원의 일기(1960〜1979)』 표지 중 일부.
『윤상원의 일기(1960〜1979)』 표지 중 일부.

오늘 우리 혈관에 자신의 모든, 한 방울의 피까지 헌혈한 분을 새로운 책으로 꼭 소개하고 싶다.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
도청의 마지막 사수자,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5월 광주의 거룩한 이름. 

광주항쟁의 막바지 5월 26일에 윤상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의 일기(1960〜1979)』가 출판됐다.

윤상원기념사업회 기획
인문연구원 동고송 진행
황광우 편(글통 2021.05.18.)

더불어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 일기(1988〜2007)』도 함께 출판됐다.

『윤석동 일기(1988〜2007)』 표지 중 일부.
『윤석동 일기(1988〜2007)』 표지 중 일부.

미리 인문연구원 동고송에 예약했더니 어제 책이 도착했다.
책을 받는 순간 41년 전 그 전율이 다시 일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 숭고한 역사 기록에 나는 눈물 없이 읽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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