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주인은 생산물을 일구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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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주인은 생산물을 일구는 ‘노동자’
  • 송필경
  • 승인 2021.06.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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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지난 1991년 말 소비에트가 해체되자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졸지에 벼락 맞은 듯했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고난의 행군’을 겪었듯이 쿠바는 ‘평화 시의 특별기간(El período especial en tiempos de paz)’이란 국가비상사태를 겪으며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1959년 혁명 후 30여 년간 쿠바가 이룩한 괄목할만한 여러 성과는 소비에트에 의존한 신기루 유토피아였을까?

1992년 피델 카스트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쌀은 이미 바닥이 났고, 콩은 50%, 식물성 기름은 16%, 라드 7%, 연유 11%, 버터 47%, 분유는 22%밖에 남지 않았다."

1992년에는 수입액이 80% 급락하고 실질 경제는 60% 이상 추락했다. 이때 쿠바가 상실한 무역량 80%는 식료품과 의약품이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 등 테러국가로 간주한 나라들에게 경제봉쇄를 취했지만, 의약품과 식료품 같은 물자에 대해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예외를 뒀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쿠바는 도시 유기농법을 개발했다. 살충제와 비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살충제는 허브와 같이 해충에 천적인 식물을 키워 해충을 방지하고, 여러 퇴비 특히 지렁이 분변을 이용해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도 않으면서 생산을 시작했다.

쿠바는 1999년에 도시농업으로 전체 쌀의 65%, 채소의 46%를 생산했다. 그리하여 식량자급률이 1990년 43%에 불과했던 것을 2002년에는 95%로 끌어 올렸다.

근교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관광호텔에도 납품한다. 사회주의 나라답게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은 우선적으로 인근 학교와 병원에 제공한다. 알라마르 같은 농장이 도시 유기농업으로 이룩한 성과는 쿠바가 인류에게 자랑할만한 또 하나의 혁명임을 입증했다.

지난 2018년 7월, 나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교에 있는 알라마르 농장을 견학했다. 넓이는 17ha(약 5만2천여 평)로 다섯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2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동농장은 친환경농법인 유기농 생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천적보다 좋은 농약은 없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천적연구소’의 검증을 거쳐 작물별로 확인한 천적을 받아 배양한 후 적절히 활용한다. 예를 들면 토마토와 상추를 함께 심는다든가, 상추와 고추를 함께 심는다. 담배와 석회를 섞어 살충제를 만든다. 주로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고, 야채 부산물로 퇴비를 만들어 쓴다.

생산품은 상추와 허브, 배추, 정원수 묘목 등 20여 종에 이른다. 쿠바에서는 이런 조합을 설립하면 국가 소유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이런 곳을 농업생산 기초단위조합(UBPC; Union Basic Product Corperation)이라 한다.

조합의 땅은 국가 소유이지만 생산과 판매 수익의 주인은 조합원 노동자이다. 쿠바 농업부 장관의 월급이 700페소 정도인데 비해, 조합원 노동자의 1인당 배당금은 장관 월급의 2배가 넘는 약 1,500 페소라 한다.(2010년도 추정)

‘일한 자가 생산물의 진정한 주인’인 사회주의의 부러운 한 모습이었다. 모든 땅을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쿠바와 땅을 가진 자의 투기 대상으로만 삼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지 않는가.

돈이 없어도 생계가 가능한 유토피아를 보면서 풍요롭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를 나는 절박하게 묻고 또 묻었다. 진정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물질적 가난보다 타락한 물질적 풍요가 선사하는 정신적 해이가 아닐까?

토지공개념!
우리가 반드시 도입해야 할 참으로 부러운 제도다.

**
나는 지난 2018년 쿠바를 다녀왔다. 수박 겉핥기가 아니라 수박 겉보기에도 못 미치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유기농업 등을 이룩한 쿠바의 혁명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지난 2018〜2019년 사이에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왜 체게바라인가』의 원고를 썼다. 작년 그러니까 2020년도에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하느라 원고 정리를 마감하지 못했다.

올 2월 ‘우수문화콘텐츠’ 사업에 선발되면 출판사에 6백만 원, 저자에 3백만원 지원하는 원고 모집이 있었다. 선발은 지난 5월 말이었다. 좀 덜 다듬은 원고 『왜 체게바인가』를 보냈다. 아직 연락이 없으니, 당연 탈락!

지난 1863년, 파리살롱전에서 탈락한 이들이 탈락자 전시회를 열었다. 심사위원들에게 항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거칠은 선과 원색적인 색, 과장한 구도 등으로 당시 심사위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그림들이었다.

이 패배자들의 탈락전은 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의 시작을 알렸다. 이전 미술과 다른 혁신적이고 신선한 새로운 사조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 입상자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탈락자인 마네와 모네 등을 미술사의 우뚝한 거인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나는 루쉰의 ‘정신 승리법’에 따라 내 원고 『왜 체 게바라인가』가 후세에 우리나라 교육과 의료와 농업 혁명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어쨌든 책으로 남겨서 현세에서 인정받기는 글렀더라도 마네와 모네처럼 후세에 기대를 해보겠다.

쿠바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정말 많다. 쿠바 혁명을 거칠고 과장스런 몸짓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체 게바라가 인류에 던진 주옥같은 메시지는 인류 미래에 등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그리고 ‘토지공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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