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의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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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의 이상과 현실
  • 송필경
  • 승인 2021.06.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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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사마천이 쓴 53만여 자 130 권의 『사기』는 지금까지 2.200여 년이 넘는 동안 역사서 가운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지녀왔다. 그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친 책은 70여 권으로 된 『사기열전』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사마천은 역사에서 도덕과 윤리를 으뜸으로 삼은 역사가였다.

『사기열전』의 첫째 편인 ‘백이열전’에서 백이와 숙제는 이 세상을 올바르지 못한 악의 세계로, 타협할 여지조차 없는 타락한 세계로 보았다. 그런 현세에 절망한 나머지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신념을 굳게 지키면서 죽은 행위를 순수한 이상주의로 숭상하며 『사기열전』의 첫 장을 열었다.

『사기열전』의 마지막 편인 '화식열전'은 상공업으로 재산을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다. 화식(貨殖)은 돈 버는 방법을 말한다. 이 열전에서는 물질의 중요성, 즉 경제생활을 중시하는 현실주의를 논했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이상주의자인 ‘백이와 숙제’를 가장 먼저 언급한 후, 현실주의자인 ‘돈 번 상공인’을 가장 나중에 언급했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사마천은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였다. 철학의 이상과 생활 현실 사이의 틈에서 생기는 모순을 포착하는 일을 역사가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사마천은 도덕적 이상을 존중하면서도 물질이 가진 현실적인 힘을 알았기 때문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인간의 윤리적 도리와 인간의 경제적 이기심은 현실 역사에서 언제나 대립했다. 명분과 이익이 때로는 정의와 불의로 변질되면서 역사가 굴러갔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정치에서 윤리적 도리를 으뜸으로 삼아야 하지만 때로는 정치적 이기심을 도외시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내년 대선, 이른바 ‘정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에게 일편단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누가 더 유력한 후보가 될지를 가늠하며 눈치 보기에 열중하는 사람도 있다.

유력 후보에게 줄서기를 하는 지지 세력은 다양하다. 그 유력 후보의 정치 성향이 자신의 도덕적 잣대와 맞아 지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직 유력 후보에 줄을 서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력 후보를 지지하는 여러 세력 가운데 한 세력에 줄을 섰다가, 좀 더 강력한 세력이 생겼다 싶으면 그 쪽 줄로 바꿔 타려는 사람이 많다. 누가 옳은 사람인가? 자신이 판단한 세력을 따라 묵묵히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더 유력한 세력이 나타났다고 판단하면 재빨리 변신하는 사람인가?

사마천을 다시 태어나게 해 묵묵한 사람과 재빠른 변신을 한 사람 가운데서 누가 옳은 사람인지 고르게 한다면, 사마천은 이상과 현실의 난감한 정치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까? 애초 자질 부족한 정치인을 선택해 놓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면, 보기에 답답해서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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