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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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든 것
  • 박준영
  • 승인 2021.07.05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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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서른 한 번째 이야기: 『고령가소년살인사건』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고령가소년살인사건』 이라는 제목만 보고 추리극이나 범죄 수사물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영화는 한 소년의 삶을 통해 불안과 격정과 좌절을 마치 관찰자의 시점에서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내 관객은 소년의 마음에 감정이입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1991년에 만들어졌으니 아주 클래식한 영화도 아니다. 당시 이 영화는 대만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영화로 한국에 소개됐다. 선전 홍보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대만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서민의 생활과 애환, 현대 도시인의 우울이나 불안 등을 살피고 한 가족이나 개인이 전쟁 이후에 겪게 되는 아픔을 대만의 젊은 영화인들이 감지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뉴웨이브 선두주자였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였고 유수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터라 필사적으로 이 영화를 구해 보았다. VHS테이프가 원본이어서 여러 번 복사를 뜨다 보니 영어로 된 자막조차 화면에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런닝타임은 무려 4시간에 육박한다.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했다. 이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한 걸로 다시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1960년, 대만 사회는 국공내전 이후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인해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 혼란은 당시 청소년들이 아노미 현상을 겪으며 폭력에 의존케 했지만 어른이나 학교나 젊은이들에게까지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의도치 않게 이런 혼란에 휘말린 소년 샤오쓰(장첸)는 친구, 가족 그리고 좋아하는 소녀 밍(양정의)과 갈등을 빚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만큼 순탄하지 않다.

대만 역사에서 미성년자가 저지른 최초의 살인사건이었던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이 영화는 특히 아름다운 미쟝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한 컷 한 컷을 정지하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돼 완벽한 구도를 만든다. 사물을 걸고 찍거나 카메라를 고정하고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은 임권택 감독의 연출을 연상케 한다.

인간의 삶 속에 오묘하게 숨어 있는 비밀들을 끈기를 가지고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있어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한 컷도 놓칠 수가 없다. 1960년대 격동의 대만을 엿보고 싶거나 대만 영화의 정수를 한번 느끼길 원한다면 이 영화에 한 번 도전해 보시라.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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