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의 기원과 역사
상태바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의 기원과 역사
  • 서경건치
  • 승인 2021.07.16 16:40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순언의 또 다른 야구이야기 2.

1. 들어가는 말

  타자가 세 개의 스트라이크를 먹으면 아웃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야구의 기본 규칙이다 (3 strike rule) .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1루가 비어 있거나, 투아웃인 상황에서는 포수가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땅에 닿기 전에 잡지 못할 경우, 타자는 주자가 되어 1루로 달려가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회생의 기회를 얻는다 (missed 3rd strike rule) . 투수는 세 개의 스트라이크를 먹인 것이므로 기록상 탈삼진이 추가되지만, 타자가 당장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으로 표기한다.  

  이 오묘하고도 이상한 규칙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오늘은 여기에 얽힌 스토리를 야구 규칙의 진화과정과 함께 풀어 보고자 한다.

 

                                                                19세기 야구 모습
                                                                19세기 야구 모습

2. 책으로 출간된 야구의 원형, 구츠무츠의 저술

  이 규칙의 역사적 맥락을 야구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집트 왕족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에 방망이와 공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는 등의 고리타분한 논의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천년 동안 행해졌던 방망이와 공을 갖고 놀았던 민속놀이(bat and ball game) 의 증거들은 논외로 하고, 근대야구와 직접적 관련이 있고 책으로 출판된 야구의 원형에 관한 서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796년 독일의 교육학자인 구츠무츠가 저술한 <Games for the exercise and recreation and body and spirit for the youth and his educator and all friends in innocent joys of youth> 라는 책이 있다. 청소년기에 있어서 체육활동의 중요성을 옹호한 교육자였던 그는 1793년에 <Gymnastics for Youth> 라는 제목의 체육교과서를 출간한 바 있었는데, 1796년의 책은 범위를 넓혀 단체경기의 영역도 포함한 것이었다. 

 

                                 J-C-F-GutsMuths
                                 J-C-F-GutsMuths

  이 책의 ‘Ball with Free Station, or English Base-ball' 라는 챕터에서 바로 야구의 원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경기에 참가하는 멤버들은 수비팀과 공격팀으로 번갈아 나뉘며, 수비팀이 타자에게 공을 토스해주고 타자는 공을 타격한 후 베이스를 순서대로 한 바퀴 돌아서 득점을 시도한다. 수비수들은 주자가 베이스를 도는 동안 그를 아웃시키려 한다’ 는 등의 기본 틀은 근대야구와 비슷하다.

  근대야구와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확연히 다른 점은, 주자가 베이스에 도달하기 전에 공을 주자에게 맞추어 아웃시켰다는 점과 볼넷과 삼진이 없었다는 점이다. 구츠무츠 시대에는 또한, 타자 뒤에서 공을 받아주는 포수라는 포지션이 없었다. 투수들은 불과 타자 5,6보 앞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공을 토스해 주었는데 치기 좋은 곳으로 던지든 치기 어려운 곳으로 던지든 이익이나 불이익이 없었고, 타자도 치기 좋은 공에 스윙을 하든 안하든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타자의 기량이 떨어져서 토스해 준 공을 전혀 맞추어 내지 못하면 경기가 한없이 늘어지게 되므로, 스윙기회를 세 번으로 제한하는 규칙을 추가했다. 하지만, 세 번째의 스윙이 헛스윙이 되더라도 타자는 바로 아웃이 되는 것이 아니라 1루로 달려가서 삶을 도모할 수 있게 했다. 타격이 성공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이 있는 야수인 투수가 헛스윙된 공을 집어 들고서 타자를 맞추어 아웃시키면 되었다. 말하자면, 배트에 타격되어 페어지역에 날아간 공이나 세 번째로 헛친 공이나 동등하게 ‘페어볼’로 취급되었던 셈이다. 
 
  이 해결책은 세 번의 기회에서 타격에 실패한 타자들에게도 당장 아웃시키기 보다는 베이스를 향해 달리는 재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포용적이고, 상대편 실수에 의해서만 이득을 얻지 않고 수비수들의 노력도 추가해야 되게끔 했다는 점에서는 교육적인 조치임이 분명하다. 다만, 세 번의 스윙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제대로 쳐내지 못한 타자들은 타격의 성공으로 공을 멀리 날려 보냈을 때에 비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야수인 투수가 던진 공을 몸에 맞아 아웃될 수도 있는 페널티는 감수해야 했다. 물론, 지금의 야구공보다는 작고 물렁물렁한 공이었기에 가능했을 터... 

 

3. 근대야구의 시초, 니커보커 규칙

  근대야구는 1845년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라는 뉴욕의 은행원이 주변의 상인, 변호사, 보험사 직원 등을 규합하여 니커보커스 라는 야구클럽을 창단하고, 야구규칙 20조항을 제정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니커보커스 야구클럽
                 니커보커스 야구클럽

  구츠무츠 시대 이후 50년이 지난 그 즈음, 유럽이 아닌 신대륙에서 행해졌던 게임의 공은 좀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이에 따라 니커보커 규칙 13조는 주자를 공으로 맞추어 아웃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주자를 태그하여 아웃시키도록 하였다.

  니커보커 규칙 9조는, 투구시 손이 엉덩이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언더핸드 피치 규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플레이트에서 투구라인까지의 거리가 55ft.(15.76m)로 더 멀어져서 투구궤적은 큰 포물선을 그리기 보다는 직선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로써 구츠무츠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타자를 지나친 공을 받아줄 수비수인 포수가 필요해졌다. 현대야구의 포수들은 머리부터 발끝, 심지어 낭심까지 보호할 수 있는 온갖 장구들을 착용하여 타자 바로 뒤에서 쪼그려 앉아 있지만, 당시에는 맨몸과 맨손으로 공을 받아내야만 했기에 홈베이스에서 멀찍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언더핸드피치
                     언더핸드피치

  니커보커 규칙 11조에는 'Three balls being struck at and missed and the last one caught, is a hand out; if not caught is considered fair, and the striker bound to run.' 라고 적혀있다. 3개의 공을 휘두르고 헛쳤을 때 마지막 공이  잡히면 타자는 아웃이 되고, 잡히지 않았을 경우엔 페어볼로 간주되어 타자는 1루로 달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츠무츠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세 번의 스윙이 허공을 가르더라도 회생의 길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포수에게 보호장구가 전혀 없이 맨몸 맨손으로 플레이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엉뚱한 와일드 피치가 아니라면 원바운드된 공을 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세 번의 헛스윙은 대체로 아웃을 의미하게 되었다. 

  니커보커 규칙 12조는 페어볼을 수비수들이 노바운드나 원바운드로 잡아도 아웃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세 번째로 헛스윙된 공이 페어볼로 간주된다면 노바운드나 원바운드로  잡혀도 타자는 아웃이게 된다.

 

 4. 규칙의 변화, 진화하는 야구의 합리성 

  구츠무츠의 서술에도 니커보커 규칙에도 헛스윙만 스트라이크로 인정되었고 파울 스트라이크나 루킹 스트라이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볼의 개념도 없었다. 타자에게는 세 번의 스윙기회를 부여했는데, 이기고 있는 팀의 타자가 해가 질 때까지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고의로 경기를 지연시켜도 되는 문제가 노출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1858년의 called strike rule 이다.  타자가 원하는 공이 들어 왔는데도 스윙을 하지 않으면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헛스윙만 스트라이크로 간주되었는데, 이제는 치기 적당한 공을 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를 먹어야 되게 된 것이었다. 참고로 파울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게 된 것은 이 보다 한참 후인 20세기에 들어선 1901년부터이다.

  called strike rule은 당연히 투수에게 유리한 규칙으로 작용하였고 타자들은 웬만한 공에는 배트를 휘둘러야했는데, 이번엔 스윙하기 어려운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도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863년에 제정된 것이 이른바 called ball rule 로서 세 번 볼을 던지면 투수에게 경고를 주었고 경고를 세 번 받으면 타자는 1루로 걸어 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이 base on balls 의 시초가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최초에는 볼이 9개인 셈이고, 1882년엔 7개, 1884년엔 6개, 1886년에 다시 7개, 1887년엔 5개로 점차 줄어들다가 1889년 이후 4개로 정착되어 오늘날의 볼넷으로 이어지고 있다.

  1857년, 뉴욕근처의 12개 야구팀은 규칙을 개정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전국야구선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Base Ball Players)를 결성하였다. 협회의 초대회장이 된 하버드 의대출신의 다니엘 아담스는 타구를 원바운드로 잡아도 아웃이 되는 원바운드 룰을 폐지하자고 주창하였다. 수년간의 논란 끝에 1864년에 페어볼에 한해서 노바운드 캐치만 아웃이 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파울볼의 원바운드 캐치는 여전히 아웃인 것으로 남겨두었다.

  니커보커 규칙 11조에서는 위에서 보듯이 “세 번째로 헛스윙된 공은 페어로 간주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세 번째 헛스윙한 공이 페어볼이라면 원바운드로 잡더라도 아웃이 안되어야 논리적이다. 그런데, 11조의 이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내버려둔 채, 세 번째로 헛스윙한 공은 베이스라인 뒤에서 바운드되게 되므로 파울볼이다 라는 논리로 원바운드로 잡았더라도 여전히 아웃으로 판정하였다. 이 모호한 상항은 1868년이 되어서야 ‘세 번째 헛스윙된 공은 페어로 간주한다’는 문장을 없애고 원바운드 이내로 잡히지 않는다면 1루로 달려갈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궁극적으로 파울볼과 세 번째 스트라이크에도 원바운드 캐치를 아웃으로 인정하지 않도록 개정된 것은 1879년에 이르러서이다. 그러나, 시행 1년 만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원상복귀되었다가, 내셔널 리그에서는 1883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는 1885년이 되어서 다시 폐기되어 1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편, 1860년대 초반에 포수들부터 점차적으로 손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대야구의 포수미트를 상상하진 마시라... 손가락이 열려 있는 얇은 가죽쪼가리일 뿐이었다. 1876년에는 펜싱 마스크를 본 뜬 포수마스크가 등장했고, 1885년엔 패딩을 껴넣은 장갑이 등장했다. 보호장구들이 등장하면서 포수들은 점점 홈베이스 가까이로 다가서게 되었다. 포수들이 좀더 앞으로 나올수록, 1루에 주자가 있을 때 제3스트라이크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1루주자를 2루에서 아웃시키고, 이어서 타자주자를 1루에서 아웃시키는 더블플레이가 훨씬 쉬워진다. 실제로 당시의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1887년에는 노아웃이거나 원아웃일 경우 주자가 1루에 있으면 제3스트라이크를 포수가 놓쳐도 타자는 1루로 달리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바로 삼진아웃으로 처리되게 되었다. 

 

                         한참 뒤에 서있는 포수
                         한참 뒤에 서있는 포수

  여기에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실수를 가장한 수비측의 지능적인 더블플레이로부터 공격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와 유사한 조치가 몇 년후 또 있었는데, 1895년에 제정된 ‘인필드 플라이 룰’이 그것이다.

 

5. 요약 : 본말이 전도된 인식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구츠무츠시절에는 오로지 배트로 공을 맞추어야만 게임이 이루어지게 설계되었고, base on balls 이나 strike out 개념이 없어서 볼카운트를 둘러싼 투수와 타자간의 수싸움은 야구의 요소가 아니었다. 타자에게는 세 번의 스윙기회를 주었고 세 번 헛스윙(3 strike)을 하더라도 페어볼과 동등하게 취급되어 1루로 달려가 살 수 있는 길 (not out)이 열려 있었다. 결국은 모든 타석이 페어볼로 간주되어서 모두가 낫아웃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근대야구의 시초가 되는 니커보커 규칙이 제정된 시절에는 타자를 지나친 공을 받아주는 포수라는 포지션이 생겨났다. 이 때도 포수가 세 번째로 헛스윙한 공을 원바운드 이내로 잡으면 아웃이 되지만, 잡지 못하면 페어볼로 간주되어 삶의 길을 부여하는 구츠무츠 게임의 정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포수들은 대체로 원바운드 이내로 잡는 경우가 많아졌고, 보호장비가 도입되어 포수들이 점점 홈베이스 가까이 다가서게 됨으로써, 오히려 이를 놓치는 경우가 예외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또한, called strikecalled ball 이 도입되면서 부터는 strike outbase on balls 가 야구 경기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 이후 투수들은 커브라는 변화구를 발견하고 이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헛스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편, 숙련된 포수들이 제3스트라이크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더블플레이를 시도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이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missed 3rd strike rule 은 1루가 비었을 때나 투아웃 상황에서만 적용되도록 더욱 정교해졌다. 

  현대야구를 접해온 우리의 의식에는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은 스트라이크 아웃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 역사적인 맥락은 낫아웃이 먼저였고, 그 이후에 스트라이크 아웃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현대의 야구는 19세기중반의 니커보커 규칙이 반세기 이상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면서 진화된 산물이다. 

  복잡한 규칙을 수록한 룰북만 해도 수백 페이지에 이르고,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불문율이라는 숨겨진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야구라는 스포츠는 그 기원과 역사를 들여다 보면 볼수록 참 오묘하다.

 

            고순언 원장 (하남 고치과의원)
            고순언 원장 (하남 고치과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구준회 2021-07-26 12:18:17
야구 볼때마다 저건 왜 있는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글 잘읽었습니다... 근데 진짜 정독해야 되는 글이네요...ㅋ

김의동 2021-07-16 17:30:49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은 포수의 변천사와 관련이 크군요....하긴 그럴수밖에 없겠지만요.....완전 전문가 수준의 야구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엔 어느팀 팬이신지도 알려주시면 재미있겠네요.....ㅎㅎ

전양호 2021-07-16 17:16:10
아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에 이렇게 심오한 역사가...이걸로 상대편이 출루하고 득점하면 이것만큼 약 오르는 것도 없는데 말이죠 ㅎㅎ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