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아닌 제약회사들을 위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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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아닌 제약회사들을 위한 제도”
  • 이인문 기자
  • 승인 2021.08.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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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세넷 등, 온라인 감담회 ‘의약품 시판허가제도’… 환자접근성 강화 위한 대안책 모색
건약 이동근 사무국장(왼쪽)과 보사연 박실비아 박사.
건약 이동근 사무국장(왼쪽)과 보사연 박실비아 박사.

의약품은 허가당국의 시판허가를 통해 판매가 가능해진다. 시판허가제도는 의약품 개발과정을 관리하고 국가 내에서의 시판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써 ‘어떤 약을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약을 개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다.

이러한 시판허가제도는 의약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십 년 동안 발전과 변화를 겪어왔다. 우리나라의 의약품 시판허가제도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구축·운영해온 시판허가제도를 참고로 마련됐고, 또한 새로 도입되는 제도들도 국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을 참고해 설계된다.

미국과 유럽의 경험을 쫓아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의약품 신속심사제도와 희귀의약품 지정제도는 과연 정부의 뜻대로 희귀난치질환자들이나 암환자 등의 의약품 접근성을 향상시켰을까?

건강세상네트워크(공동대표 현정희 조선남 이하 건세넷)가 지난 5일 더 나은 의약품생산체제를 위한 시민사회연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민중건강운동 등의 단체들과 함께 온라인 기획간담회 ‘제약사가 코로나19 치료제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 신청하려던 이유’를 개최해 한국에서 신속심사제도와 희귀의약품지정 제도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박실비아 박사
박실비아 박사

건세넷 김재천 운영위원의 사회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주발제자로 나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실비아 박사는 “한국에서 신속심사제도는 그동안 식약처 고시에서 규정돼 시행되다가 지난 2019년 제정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올해 제정된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 그리고 올해 개정된 「약사법」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체계화될 시점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첨단재생바이오법에 포함된 신속심사제도는 맞춤형 심사,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라면서 “이러한 신속심사제도의 목적은 신약의 시장진입을 빠르게 하는 것이고, 내용상으로도 개발과정에서의 활발한 사전상담,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 요건의 완화, 허가심사의 신속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신속심사제도 대상으로 개발 및 허가된 신약들이 그렇지 않은 신약에 비해 반드시 혁신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외국의 의료기술평가조직에서 치료적 가치(therapeutic value)를 평가한 결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높은 치료적 가치(high value)를 인정받은 약은 분석 대상 신약의 1/3에 그쳤다”며 “신속심사제도가 확대되면서 안전성과 유효성의 근거가 불충분한 채로 시판되는 의약품이 증가하고 있다. 신속심사제도가 유전자치료제, 재생의학 등 최근 의약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확대되는 시점에서 이 제도가 의약품 개발과 접근성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희귀의약품지정 제도와 관련해서도 그는 “민간 제약사가 수익성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개발하지 않는 의약품의 개발을 촉진해 희귀질환자들도 의약품 접근권에서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면서도 “희귀의약품은 다른 신약에 비해 더 긴 시장독점기간이 보장되고 매우 고가로 판매되는 등 부작용도 있는 만큼 도입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추가 지정시 독점기간을 낮추고 공급 불안정 또는 고가로 인한 환자 접근성이 문제가 될 시 독점권을 박탈하는 등의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동근 사무국장
이동근 사무국장

이어 지정토론자로 나선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사무국장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초기에 한 제약회사가 코로나19 치료제를 미국에서 희귀의약품 지정에 대한 조건인 환자 수 20만 명이 넘어서기 전에 희귀의약품 지정을 시도하려다 각국 시민사회 등의 반대에 직면해 지정신청을 자진 철회한 적이 있다”면서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환자가 아니라 오히려 제약회사를 위한 제도로 변질될 수 있으며, 강화된 독점권으로 환자들의 접근성이 저해되는 모순된 상황을 겪을 수 있음을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2년 이후로 국내에서 허가받은 의약품 6개 중 4개 의약품이 조건부로 허가를 받았으며 4가지 의약품 모두 확증임상시험 자료를 아직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형 신속심사제도의 취지 자체가 환자의 접근성을 위함인지, 기업의 특혜를 제공하기 위함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오히려 이 제도들은 국내 제약회사의 특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외국 제약회사도 똑같은 특혜를 제공해야 하는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사무국장은 희귀의약품지정 제도와 관련해서도 “기업들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조건부 허가 등으로 신약 개발에 대한 비용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얻지만 희귀의약품 지정에 따른 개발비용 절감이 의약품 가격 절감에는 효과가 없었다”면서 “희귀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기업들은 평균 제약기업 이익률인 16%에 비해 5배나 높은 80%의 이익률을 남긴다. 희귀의약품 분야가 제약기업에게는 새로운 블록버스터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에서 신속심사제도 및 희귀의약품지정 제도는 오로지 국내 제약기업의 육성정책으로 전락되고 말았다”며 “이러한 육성책으로 인해 오히려 부실한 허가심사를 부추겼고 국민들은 규제당국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어렵게 됐다”면서 “최근 몇 년간 수익성 등의 이유로 치료에 필수적인 약에 대한 공급중단 문제를 여러차례 격어왔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해본다면, 실제 국내기업들이 신약을 개발해 치료접근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보다는 공급중단 우려가 높은 의약품의 동등한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거나 생물의약품의 동등성 평가를 유연하게 하는 정책 등 공급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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