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공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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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공에 대한 이야기
  • 김용진
  • 승인 2022.03.0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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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⑩] 한국산업구강보건원 김용진 총무이사

본지는 구강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연구하고, 노동자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해 활동해 온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사장 전성원 이하 산구원)과 공동기획으로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을 지난 2016년 8월부터 연재해왔다. 산구원 제9대 전성원 이사장 체제를 맞아 본지는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 연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편집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000로 이사를 왔고, 너무 가난해 남들 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000은 000공단의 공장에서 소년공으로서 삶을 살았다. 

첫 직장은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이었고, 2번째 직장은 붕산으로 땜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떼였다. 3번째 공장에서는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혔는데 파편이 아직 박혀 있다고 한다.

4번째 직장 땐 날카로운 함석에 찔려 흉터가 많다. 작업반장의 구타로 인해 난청과 부분적 청각장애도 얻었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기에 왼쪽 손목 바깥쪽이 끼어 손목 관절이 으깨어지는 골절을 입었으나 당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해 본격적인 치료는 받지 않았다.

당시 작업반장이 고졸인 것을 알고 '나도 고졸이 되면 작업반장이 될 수 있나보다'하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락카실을 자원했는데, 락카질은 먼지 하나 없는 밀폐 구역을 만들어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근무시간에도 허락없이 열리지 않는 이중문 안쪽에서 혼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할당량을 서둘러 끝낸 뒤 숨어서 몰래 책을 봤다고 한다. 벤젠과 아세톤 냄새를 너무 맡아 후각을 상실했으며 코가 비뚤어졌다고.

우울증과 장애로 너무 힘든 나머지 17살 때 자살을 시도했다. 첫 시도 때는 연탄불이 저절로 꺼졌고, 2번째 때는 둘째 형인 000이 구해줬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지막 시도 땐 다량의 수면제를 구하러 갔다가 눈치 챈 의사가 소화제를 대신 줘 죽지 못했다.”

이 글은 지난 1970~80년대 전형적인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온 가난한 가족, 학업 대신 저임금으로 공장에 다니고 급여를 떼이고 직장내 폭행피해, 산업재해와 다양한 직업병을 앓고 자살시도까지 하는 10대의 소년 노동자.

어린 시절의 이재명 후보(오른쪽).
어린 시절의 이재명 후보(오른쪽).

지금은 50대 후반에서 60대가 됐을 이 세대는 정치권에서 과거엔 ‘386’이라 불렸던 세대에 가려진, 소위 ‘산업역군’이라고 추켜세우지만 현실에선 ‘공돌이’라 불리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공고를 다녔거나 전문기술이 있으면 대우를 받았고 기술을 배워 독립해서 작은 가게나 회사를 차려 부의 축적이나 신분상승을 이루기도 했으나 가방끈 짧고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계속 일용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기업도, 정부도 심지어 노동자도 매우 인식이 낮았다. 손목 관절의 골절에도 이 노동자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고 할 정도였다. ‘먼지 하나 없는 밀폐 구역’에서 락카칠을 해서 ‘후각을 상실’했다고 하는데 환기가 안되는 조건에서 벤젠에 의한 지속적인 노출은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힘든 삶은 살던 10대 소년공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위 글은 ‘나무위키’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에 실린 ‘이재명’에 대한 글 일부를 갖고 온 것이다. 대통령 후보이고 찬반 논란이 있는 정치인이지만, 그의 소년공 시절의 삶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의무교육, 무상교육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까지는 무상교육이다. 가난해서 초등학교까지만 다니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다음은 미성년자 노동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은 ‘예술 공연’을 제외하고는 근로기준법에 따라서 15세 미만이면 노동자로 사용할 수 없으며, 예외적으로 취직인허증을 가진 사람을 노동자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15세 이상 18세 미만이라도 1일 7시간, 1주 35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심야시간과 공휴일에는 노동을 시킬 수 없다. 

직장내 폭력피해, 산업재해, 직업병 문제는 당시보다 제도적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개별 노동자로는 아직도 매우 힘든 상황이다. 직접적인 폭력은 줄어든 것 같지만 ‘말’로 인한 폭력, 성추행이나 성폭력, 왕따 등이 여전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치열하고 오랜 투쟁 끝에 산업안전이나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에 대한 법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최상위권의 산재국가는 면치 못하고 있으며, 직업병 인정은 삼성전자의 예에서 보듯 여전히 받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소년공 이재명은 그 개인의 ‘좋은 머리’와 장학금, 생활비까지 보태준 대학 덕분에 변호사가 되고 정치인이 돼 시장과 도지사를 거쳐 이젠 ‘대통령’ 후보까지 됐다.  

그러나 그가 겪었던 소년공 시절의 어려움은 지금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겪고 있으며 아프고, 또 죽고 있다.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이번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과연 올 수 있을까?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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