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이 실험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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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이 실험대상인가?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4.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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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 유치를 둘러싼 공방

올 하반기 의료계의 최대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둘러싼 공방이라 할 수 있다. 개정안의 정기국회 상정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통과될 수 있을 것인가의 관건은 역시 찬반 양쪽 주장의 논리적 정당성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청년의사'가 서울대병원 이건희홀에서 주최한 '경제자유구역(이하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 유치가 국내 의료에 끼칠 영향은?'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는 찬반 양쪽 주장의 논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재경부 경제특구기획단 오갑원 단장의 기조발제와 재경부 경제특구기획단 지역총괄과 송준상 과장,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최회주 과장, 연세대 정형선 교수, 의협 신성철 기획연구실장, 병협 송건용 연구원, 의료연대회의 우석균 정책위원,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이 참여한 가운데 4시간여의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그날 이뤄진 열띤 공방을 몇가지 쟁점 사항을 중심으로 요약해 본다.                                       편집자

 

개정안의 쟁점과 의료계의 입장

이날 토론회 기조발제에 나선 재경부 경제특구기획단 오갑원 단장은 "재경부가 이번 개정안에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사실 간단하다. 내국인진료 허용과 영리법인 설립 허용 문제 두 가지"라고 밝혔다. 또한 토론과정에서 송준상 과장은 국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이에 대해 병협을 제외한 의료계 각 단체들은 모두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병협은 '역차별'을 강조하며, 경제특구 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 영리법인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외국인 병원에만 영리법인을 허용할 경우에는 병협 역시 '반대'의 입장을 피력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지부의 입장이다.

최회주 과장은 "우리 의료계의 두가지 과제는 공공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공동성 강화를 위해 공공의료확충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효율성에 대해 "어떻게 하면 전체적인 보건의료산업이 효율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개방이 아니라 먼저 '개혁'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자본참여 활성화 방안이나, 의료광고규제 완화, 의료기관의 부대수익사업 증대 등에 대해 종합적인 플랜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제특구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 허용에 대해서도 "아주 극히 예외적이고,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므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복지부는 "일정정도의 공공성 확충을 전제로 의료시장화 정책을 추진"할 것과 "재경부의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 허용 추진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이날 토론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선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각각 입장이 조금씩 틀리지만, 의협이 제시한 입장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이라 판단된다.

의협 신성철 기획연구실장은 "처음에는 외국기업 환경과 근로자의 생활환경을 외국의 그것과 같이 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정됐는데, 지금은 외국인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의 고급의료수요를 흡수하는 것으로 방향이 전환됐다"며 "여기에서 3가지 문제점이 도출된다"고 밝혔다.

그 3가지 문제점이란 ▲동북아 의료허브가 외국의 유수 병원 한두 개 유치로 가능한가와 ▲국내 의료와 국민복지에 어떤 순기능을 할 것인가 ▲현행 실정법과 외국 병원과 약속한 사항과의 괴리문제 이다.

이에 대해 신성철 실장은 "의료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병원 한두 개 유치로 동북 의료허브를 달성할 수 없고, 역차별과 의료주권상실 문제가 발생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위한 의료허브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히고, 또한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유치되는 것인데, 일이 진행돼가면서 외국병원 유치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의료시장에 미치는 영향들

▲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단 지역총괄과 송준상 과장
재경부 송준상 과장은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이 허용돼 외국병원 유치에 성공했을 경우 "1조원에 달하는 해외 의료소비 유출을 막을 수 있으며, 유수 외국병원 유치로 국내 의료진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고, "국내 의료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이지 의료시장개방이 아니며, 국내 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등의 우려는 과장된 노파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부 유출에 대해 의료연대회의 우석균 정책위원은 "1조원 나간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고, "외국 원정진료는 세계 초일류 병원에 특정부분 때문에 가는 것인데, 초일류병원의 일류부분만 딱 모아놓은 그런 병원을 유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또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원정출산의 경우 경제특구에서 애 낳으면 미국 국적 주나"라고 반박했다.
또한 브랜드만 빌려주고 수익금의 20∼30%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리법인화 해서 과실 송금하는데, 1조원이 외국으로 나가지 그게 한국에 남겠나"라는 우석균 위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국내 의료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우석균 위원은 "재경부가 유펜과 체결한 MOU를 국가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그 규모가 1,000병상이다, 500병상이다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경제특구 내 외국인은 기껏해야 1만명 정도가 될 것인데, 이런 규모의 외국병원이 유치된다면 서울 시내 이른바 '빅4' 병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국 의료시장 개방과 동일한 효과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500병상의 병원을 유치하려면 50만명 정도의 배후인구가 필요하고 1,000병상은 150만 명의 배후인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수가가 외국에 비해 5∼6배 정도 낮은 상황에서 외국병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의료비 상승이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이며, 병협 등이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영리법인 허용 목소리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즉, 경제특구법이 개정되면, 국내 의료에 시장개방과 동일한 수준의 영향이 미치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현실성 없는 실험일 뿐

▲ 의료연대회의 우석균 정책위원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내국인 진료와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상당한 특혜를 준다고 해서 외국병원의 유치와 동북아 의료허브가 가능한가 이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는 "재경부의 논리는 상당수는 환상이고 외국병원이 와서 경쟁하면 뭔가 좋은 것이 있지 않겠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기 힘든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전혀 다른 시스템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정형선 교수가 말하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란 "외국인이라도 국내에 3개월 이상 거주하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등 갖가지 제도적 제약을 일컫는다.
재경부쪽에서는 건강보험을 적용시키지 않고, 1·2차를 제외한 3차 병원급만을 허용하며, 국내 의료자본도 경제특구 내에 1·2차 의료기관은 설립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외국인들이 건강보험금을 내고도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국내 의료보다 5∼6배나 비싼 외국병원을 이용하겠으며, 3차 기관을 이용할 만큼의 질병을 가진 외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모순 뿐만 아니라, 재경부가 외국병원 유치가 단순한 편의시설을 위한 것인지 허브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개념 정리도 아직 못하고 있으며, 정확한 수요예측 등에 대한 근거 자료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석균 위원은 "재경부는 경제특구에 외국병원 오면 좋고 안 오면 그만이고, 하다가 망하면 그걸로 끝이고 나중에 바꿔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는데, 국민건강이 무슨 '실험대상'인가"라며, "의료나 교육체계는 국가의 기간이 되는 체계다. 국가의 경제를 책임지는 재경부 과장의 입에서 망하면 그걸로 끝이고 나중에 조금씩 고쳐 나가자는 말이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번 청년의사 토론회에서 오고간 수많은 공방의 결과, 외국병원 유치로 인한 긍정적 영향은 허구에 불과하고, 악영향은 우려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 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재경부의 확신과 논리에도 수많은 헛점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헛점 투성이의 논리를 바탕으로 굳이 이번 정기국회에 경제특구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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