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는 아직도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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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는 아직도 유효”
  • 김기태
  • 승인 2022.05.02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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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간병시민연대 강주성 활동가

지난 1999년 백혈병 발병 이후 치료제인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하면서 한국백혈병환우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을 창립, 의료를 이용할 권리를 가로막는 모든 차별에 맞서는 건강권 운동을 펼쳐온 간병시민연대 강주성 활동가 최근 자가면역질환 증상으로 시각과 청각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했다. 현재 그는 사람이나 사물이 1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각이 악화된 상태로 신장까지 망가져 1주일에 3번 투석을 받아야만 하는 신장장애인이자 시각장애인이다. 이 인터뷰는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김기태 사무국장이 병원에서 퇴원한 강주성 활동가를 만나 그의 최근 현황을 보내온 것이다.

- 편집자 주

강주성 활동가
강주성 활동가

"내게 새로운 영감을 줄 책인데 글자가 보이질 않아 읽지를 못한다. 하지만 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목차를 보기만 해도 새로운 생각이 꿈틀거리게 한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과 노력들이 정리되고 있다." 

이 인터뷰의 시작은 어느 날 올라온 그의 페이스북 글이었다. 책을 함께 만든 사람으로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독자의 하소연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가 보고 싶어 한 책은 바로 방문의료 이야기를 담은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강주성은 보건의료 활동가다. 지난 1999년 만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는 투병 과정에서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 한국백혈병환우회를 창립했다. 그후 그는 건강할 권리, 의료를 이용할 권리를 가로막는 모든 차별과 배제에 맞서는 보건의료운동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를 창립하고 '건강권' 운동을 벌여왔다.

"의료계의 어떤 인사는 내 면전에서 책을 집어 던지며 환자와 의사를 이간질시키는 나쁜 책"이라고 했다던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의 지은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간병시민연대 활동가로 간병의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먼저 휴대용 가습기를 틀어 코와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인터뷰내내 인공눈물을 수시로 사용해야 했다.   

"이렇게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그랬는데 지금 말하는 것은 좀 나아졌어요. 신장이 망가져 1주일에 3번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신장장애인이자 시각장애인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장애고 이제 청각장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혈병 후유증인가 하는 질문에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라고 말하는 그는, 예의 그 활동가다운 얘기를 꺼냈다.

"골수이식한 지가 이십여 년 됐으니까 완치라고 봐야 하는데 백혈병은 그 완치라는 개념이 없죠. 해외에선 골수이식 환자가 그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보고 내부장애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 인정을 해주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기준이 없어 장애 인정을 받을 수가 없어요.“

지금 그의 시력은 안 좋다. 컴퓨터도 보기 힘들고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 울퉁불퉁한 흙길은 다니기가 어렵고 감으로만 다녀야 하는 그는 포장된 길만 다닐 수 있다. 카카오톡은 '다크모드'로 해놓고 가까이 다가가야 볼 수가 있을 정도이다. 

"투석을 하니까 먹는 것도 불편하죠. 물기가 있는 음식은 모두 경계대상이고 짠 음식과 매운 음식은 입이 헐어 못 먹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낙담하거나 절망하거나 한탄하거나 뭐 그러진 않아요. 그냥 내 삶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거지, 그리고 그런 거에 대해 훈련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그냥 산다'고 했다. 

그가 한동안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아픈 몸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바로 간병시민연대 활동이다.

"지난 2020년 11월 페이스북에서 간병시민연대를 만들었죠. 인터넷에서 총회하고 정관 만들고 후원계좌도 열고 싸움박질도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회원이 250명 정도 됩니다."

그는 조만간 한 번도 만나지 못 한 회원들과 함께 모여 조직의 이름과 활동방향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여러가지 돌봄 중에서 '간병 돌봄'을 간판으로 내세운 것은 대선과정에서 초점이 흐려지지 않게 위한 것이었습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간병 문제를 제도권에서 풀겠다라는 게 모든 후보의 공약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봄연대' 같은 이름으로 바꾸고 국가 차원의 사회적 돌봄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변화를 줄 계획입니다."

사회적 돌봄을 위한 재원은 이렇게 마련한다.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만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요양보험이 '노인'자를 떼고 '전국민장기요양보험'으로 가야 합니다. 연령이 어떻게 됐든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 이 시스템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죠."

백혈병환우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간병시민연대로 이어지고 있는 그의 활동은 최근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건강벗'이 그것으로 현장 중심의 구체적인 모델 개발과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시민단체 등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모여 정책이 아닌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 예를 들면 방문간호스테이션의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단순 돌봄을 위해서는 요양보호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맡아서 하면 되지만 질병이 있는 상태라고 하면 간호사가 필요합니다. 간호협회도 지역별로 있으니 시범사업처럼 해보고 전국적으로 확대해 보면 좋겠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간호법으로 넘어갔다. "제가 원래 협회 같은 곳에서 주장하는 것에 찬성하거나 도와주지는 않은데, 지금 간호법에는 성명서에 이름도 올리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간호법의 핵심은 간호사가 의료 현장을 지역사회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로 이어지는 업무 계통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은 책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은 지난 2007년 초판을 낸 후 2015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개정판 서문에서 그는 “8년 전에 출간됐던 이 책이 다시 개정판의 이름을 빌어 재출간된다는 것은 사실 사회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책의 내용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와 시민들이 처한 보건의료환경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아직도 개정판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유효한지…

"의료환경은 더 안 좋아졌죠. 보장성은 답보, 아니 줄었다고 봐아죠. 문재인 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률이 65% 정도라고 하는데, 여기에 간병비를 포함하면 보장률은 더 떨어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병비로 고통을 받는데 말이죠. 보장률이 80% 이상이 되면 민간보험은 보조수단으로만 남게 됩니다. 지금은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양대축으로 움직입니다. 민간보험은 철저하게 통제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이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모든 분야에서 시장우선주의를 표방한,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보건의료분야에서도 민간병원 확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공정책수가를 통해 민간병원의 의료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말은 좋지만 코로나19 상황때도 봤지만 민간병원들이 잘 통제가 될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형병원들이 지역에 분원을 만드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처음엔 좋겠지만 결국은 병원이 국민을 잡아먹게 됩니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건강보험의 영역을 떠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암 같은 중증질환과 희귀질환을 보는 3차 병원들입니다. 갈수록 상업화되고 민간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한국에서 이들이 제주녹지병원처럼 건강보험 영역에서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없으면 치료를 못 받게 되고 보험자본은 득세할 것이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약화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지금 당장 보건의료분야에서 시급한 문제를 요청했다. "무엇보다 양적으로 적은 공공병원과 의료인의 수를 늘려야 합니다. 일단 자원이 있어야 뭔가를 도모해볼 수 있을텐데, 코로나19 상황이 준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실현해내지 못 한 게 안타깝습니다."

보건의료분야의 많은 이들이 강주성의 투병소식에 응원의 힘을 보탰다. 퇴원은 했지만 치료와 관리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네요. 환자 교육이나 ‘의료기관 제대로 이용하기’ 같은 강의를 하고 싶네요, 소개해 주세요.“

김기태(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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