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면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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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면에 닿기를…
  • 정회인
  • 승인 2022.05.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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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건강시민연대 특별기고⑨] 연세대학교 예방치과학교실 정회인 교수

제3기 건강형평성 확보를 위한 치아건강시민연대(이하 치아건강시민연대)가 지난 2월 26일 공식 출범했다. 새롭게 출범한 제3기 치아건강시민연대에서는 지난 2018년 모든 지역에서 수불사업이 중단된 상태에서 매년 4월 9일 불소의 날 기념식 행사 등 아동뿐아니라 장애인, 어르신들의 충치예방에 꼭 필요한 수불사업과 불소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줄여나가기 위해 우선은 불소치약 등 불소를 활용한 다양한 충치예방운동들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제3기 치아건강시민연대와 함께 총 10회에 걸쳐 약 2주 간격으로 불소를 활용한 다양한 충치예방법들과 관련한 글들을 연재하기로 했다.

- 편집자 주

지난 2005년 1월 저는 본격적인 병원 실습을 눈 앞에 둔 예비 본과 3학년이었습니다. 곧 학생 진료를 시작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마지막 방학이었고,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 장기요양서비스 연구에 조사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연구는 『장기요양 서비스를 누가, 얼마나, 얼마에 원하고 있는가? - 장기요양 서비스의 욕구와 결정요인 및 지불의사금액』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습니다.

연구대상은 2005년 당시 아산시의 1개 읍, 6개 동, 10개 면 중 도시 지역에 해당하는 온양 4동과 농촌지역에 해당하는 도고면에 거주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 2,379명 중 67∼74세 연령군, 75∼84세 연령군, 85세 이상 연령군 중 각 100명씩 읍면지역 300명과 도시지역 300명, 도합 6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한 노인과 그 보호자였습니다. 조사원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치과대학 재학생 30인 정도로 구성됐고, 우리는 조사자 훈련을 거쳐 2주간 아산 지역의 한 호텔에 숙박하며 가가호호 방문에 나섰습니다.

지역·나이에 따라 요구하는 장기요양서비스[단위: 명(%)]
지역·나이에 따라 요구하는 장기요양서비스[단위: 명(%)]

조사원들이 친분을 통해서 구인된 것이라 거의 모두 이미 친구이자 친한 선후배 사이여서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당시 할머니가 85세이셔서 살짝 쇠약해지고 계셨기 때문에 한국판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Mini-Mental State Examination), 인지장애검사, 한국형 일상생활 측정도구(K-ADL: Korea Activities of Daily Living Scale)검사, 일상활동평가(S-IASL: Seoul-Instr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신경정신행동검사(NPI: Neuropsychiatric Inventory-Questionaire), 문제행동조사 등을 배우면서 재미있었습니다.

학생 수준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인건비까지 생기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에 5개 가정을 방문해서 조사를 완료하면 된다니 크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라서 특히 읍면지역에서 지도만 보고 집을 못 찾아가면 어쩌나, 부재 중이시면 어쩌나, 문전박대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2주간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습니다. 노트북, 학교 심볼이 새겨진 흰색 가운, 천안시 보건소의 이름이 인쇄된 이름표와 함께 가니 대부분의 대상자께서는 오히려 반가워하며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걱정했던 문전박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가정 방문이 사실은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충분히 따뜻하게 난방을 하고 계신 댁이 10곳 중 1곳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50만 원만 되어도 집에서 이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계시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 혼자 살고 계신 댁이 꽤 많았습니다. 저희 집처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살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한 댁은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대상자셨고, 할머니가 함께 사셔서 저를 안내해주셨습니다. 추운 방에서 한 켠에 누워계신 할아버지께 부지런히 조사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쟁반에 귤을 가져다 주셔서 손도 시리고 시간도 촉박했지만 귤을 까 먹으며 잠시 쉬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자녀 분들이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시며 격하게 불만을 쏟아내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너무 속이 상하신 모양이었습니다. 몇 번 제지 끝에 할아버지의 말을 끊으시면서 우리가 못 가르쳐서 아이들이 바쁘고 여기에 내려올 시간이 없는 거라고, 그래도 몇 째 자녀분께서 이렇게 귤이라도 보내주니 귤을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어떤 집은 마당에 못 쓰게 된 가구, 먼지가 쌓인 농기계 같은 것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이 곳에 누군가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었지만 대상자분 성함을 부르며 들어갔더니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나와서 할머니께 데려다주었는데 알고보니 귀가 잘 안들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조사를 하다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가서 벽시계를 흘깃 보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엉엉 울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할머니가 청력이 안 좋으셔서 그런지 아이가 말을 잘 못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벽시계 밑 옷걸이에 걸어놓은 제 외투를 보는 줄 알았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자 아이의 부모가 연락이 되지 않은 지 몇 년이라 항상 할머니랑만 있는데, 젊은 여자가 오니 집에 엄마가 온 것 같아서 좋았는데, 제가 옷을 입으면 나갈 것 같아서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전달해주셨습니다. 

저희 집처럼 아드님 가족과 함께 살고 계신 할머니 대상자가 계셨습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과 할머님만 계셨습니다. 보건소에서 왔다니 문은 열어주셨지만 제가 이것 저것 여쭙자 경계를 하시며 모든 검사에 모른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렵게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다행히 며느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며느님께서 오시는 순간 할머니께서 표정에 여유가 생기고 눈가에 생기가 돌더니 인지검사와 일상생활 측정도구에 높은 점수를 얻으셨습니다. 중간 중간 아드님께서 하시는 과수원 자랑도 실컷 들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온 식구가 출근하고 혼자 계실 때와 모두 귀가해 한 공간에 모였을 때가 이렇게 다르실까 생각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 중 슬며시 보이는 입 안에서 괜찮아 보이는 구강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히 치과로 모셔야 할 것 같았지만 치과에 한 번 가보시라는 말씀을 드려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사정이 어려우신 분들을 배정받았던 것일까 생각했는데, 다른 조사원들도 비슷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초등학교 교사이신 저희 집은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딱 평균적인 형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일단 치과에 와서 치료 받으셔야 하는 노인이 매우 많지만, 그 중에 치과에 오셔서 유니트 체어에 앉으실 수 있는 분은 극히 소수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 경험이 예방치과에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만큼, 항상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특히 노인의 구강에 치과적 치료와 관리, 그리고 돌봄이 어떻게 닿을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매일 사용하는 수돗물과 치약에 들어있는 불소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불소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황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쉽게 자연스럽게 치아에 닿아서 구강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민자치센터를 통한 노인 구강건강증진사업이 더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비대면 구강관리의 가능성은 다양하게 제시돼왔고, ICT를 이용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여기에 구강관리도 포함시키고 노인들의 구강질환 조기발견 및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치과의료 접근성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스스로 거동하셔서 검진일정에 맞춰 검진 버스에 방문할 수 있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인만 구강검진에 참여할 수 있는 국민건강영양조사가 보완돼 거동이 불편하고 의존적인 노인의 구강상태도 모니터링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요양보험제도 및 건강보험제도의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술의 발전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여전히 구강관리와 치과치료가 필요한 노인들이 필요한 만큼 치과에 오시는 것도, 치과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는 것도 어려운 일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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