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차별 책임을 개인·가족에게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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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차별 책임을 개인·가족에게 전가”
  • 이인문 기자
  • 승인 2022.05.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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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세넷 등,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차별 없는 의료 실현’ 촉구
건세넷 등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연대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불평등·의료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수립을 촉구했다.(사진제공= 건세넷)
건세넷 등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연대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불평등·의료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수립을 촉구했다.(사진제공= 건세넷)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연대단체들이 지난 25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자들에게 “지방선거에서 실종된 공공의료와 의료불평등·의료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활동가의 사회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박주석 간사는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아동과 함께 숨졌고 인천에서는 30년 동안 간병하던 자녀를 살해한 사연도 전해졌다”며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에 벌어진 참사이자 그렇게 국가가 지원체계를 방치하는 동안 모든 책임이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때도 국가의 방임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났다. 장애인의 경우 치명률이 20배에 다다른다고 하는데 이는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이 항상 후순위로 밀려나는 등 공공의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의료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제한 결과였다”면서 “장애인의 건강검진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50%대에 불과하는 등 장애인들을 위한 공공의료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간사는 “전장연은 코로나19 초창기 때부터 장애인을 위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해왔는데 최근 중수본과 서울시 시민건강국 등 의료부처들과 논의하는 자리가 드디어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를 통해 반드시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포괄적 재난대응체계가 구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장연 박주석 간사(사진제공= 건세넷)
전장연 박주석 간사(사진제공= 건세넷)

HIV/AIDS 인권활동가네트워크 상훈 활동가는 “HIV 감염인도 차별 걱정 없이 병원에 가고 싶다”면서 “병원에서는 HIV 감염인의 진료를 기피하기 위해 격리치료실이 없다, 1인실이 없다, 일회용 의료도구가 없다, 아직 수술할 때가 아니다, 좀 더 지켜봐도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치료가 어렵다 등 갖가지 이유를 대지만 HIV는 격리가 필요하지도 않고 반드시 일회용 의료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며 “국가가 나서서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HIV 감염인과 이주/난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홈리스 등 건강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소수자들에게 국가차원의 공공의료를 제공, 건강불평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홈리스행동 주장욱 집행위원은 최근 서울시가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 계획을 통해 공공의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병원 한두 개 더 짓는다고 해서 홈리스들이 겪는 차별적인 의료이용 경험이 일시에 해소되지는 않는다”며 “지정된 공공병원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최근 한시적으로나마 허용한 민간의료기관을 홈리스들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보호자가 없거나, 간병비를 부담할 수 없는 홈리스들도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같은 지원서비스의 확대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김보영 사무국장은 “지난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해 '낙태죄'가 최종적으로 폐지됐지만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특히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임신중지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면서 이번 6·1 지방선거에 나서는 지자체 후보자들에게 “누구나 차별없이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별 거점 플랫폼을 마련하고 소수자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의료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요청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동참한 서울특별시 진보정당 단일후보인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에서부터 돌봄과 의료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며 “이주민·홈리스·장애인·HIV감염인 등 의료취약계층들에 대한 공공의료예산을 확충해 진정으로 차별없는 의료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및 의료노동자의 처우 개선 ▲건강검진 사각지대 개선 및 생애주기별 건강불평등 해소 등을 약속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리스행동,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이 함께했다.

다음은 이날 이들 단체들이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공공의료 확충하고, 의료차별 해소하라!

지난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며 일상 속 실천방역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면서 사실상 코로나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허나, 이주/난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홈리스 등 기존의 의료 불평등과 코로나19의 불평등한 방역 체계를 겪은 우리는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일상은 HIV 감염인이 비과학과 근거 없는 믿음에 따른 의료진의 낙인을 피해 다니며, 노숙인은 얼마 되지도 않는 노숙인진료시설에 메달려야 하는 일상이다.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가입에 제한이 생기고, 불합리하게 보험료가 측정되는 일상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건강관리를 받지 못하고 시설에서 사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거나 아예 병원을 갈 수 없어 병을 키우는 일상이다. 받아주는 의료기관이 없어 전전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죽게 되는 일상이다.

2021년부터 ‘낙태죄’가 폐지되었지만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없는 여성의 일상도 여전하다.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마다 임신중지 비용은 천차만별이고, 유산유도제의 도입 과정 또한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피임을 위한 수단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특히 청소년은 피임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피임 관련 시술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피임에 대한 비용 부담이 크다.

거대 양당의 무책임한 정치 속에서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기에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은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는 듯 그들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부정당하기 일쑤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책 패러다임은 여성을 포함한 시민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인구 조절의 차원에서 성과 재생산을 통제한다.

정부가 나와서 자화자찬하는 K-방역은 우리에게 차별과 배제의 과정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의료공공성 부족으로 진료거부, 의료접근성 부재, 의료비 부담 등 의료에서의 차별을 경험하던 이들에 대해 정부는 이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역대응을 이루어나갔다. 지자체 차원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은 항상 차별적이며 배제적인 행정명령이 이루어졌다. 사업장에 고용된 외국인들에게만 의무적으로 진단검사를 받도록 하거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예방적 코호트 격리"조치가 이루어져 거주인들에게만 출입이 통제되었다.

지난 12월 22일 코로나 전담 병상을 만들기 위해 시행된 국립의료원 소개 조치는 저소득층, 홈리스, 이주노동자를 내쫓았다. 국가는 민간의 소유권을 존중해주기 위해, 우리에게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윤과 생명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가는 이윤을 선택하였다. 판데믹이 잠시 조용해진 지금, 이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의료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지난 5월 6일 서울시는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 계획을 발표하였다. 공공병원을 짓고 종합병원으로 작동하지 못 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진료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허나, 기존에 의료취약계층이 자주 이용하던 공공병원을 아예 특화병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이 사람들은 이 병원만 이용하라’는 차별적인 방식이다. 심지어 그 안에는 민간의료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가치 인정은 건강보험에서 나온다. 사회보장체계에 따라 수익을 창출하는 의료기관이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그 의무에 인센티브를 줄 이유는 없다.

‘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patient’는 ‘참고 기다리는’ 뜻이다. 근대 의료체계는 환자를 의사의 판단과 결정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 자로 만들었다. 코로나19 판데믹에 대한 대응은 정부 중심의 방역 주도하에 국민들을 항상 참고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였다. 불평등만이 강화된 채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 우린 이제 더 이상 참고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확충하고, 의료차별을 종식하기 위해 직접 나설 것이다. 우린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실종된 공공의료와 의료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요구한다.

2022. 5. 25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리스행동,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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